●●●새벽 4시. 낮에 활발히 움직이던 사람이라면 모두가 잠든 밤에 나는 기간 내에 마쳐야 될 일이 있어 밤 도깨비처럼 혼자 거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찾을게 있어 안방에 도둑고양이처럼 들어가 슬그머니 불을 키니까 아내가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앓는 소리 보다 내 주의를 집중시킨 낯선 풍경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는 아내의 양쪽 발뒤꿈치에 무언가 하얀 게 덕지덕지 붙어있던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아 자세히 보니 반창고 같았다. 그런데 그 모양새는 꼭 유치원생 아이가 도화지에 붙여놓은 모자이크 그림처럼 아무렇게나 마구 붙여놓은 것 같았다. 이불도 안 덮은 채, 다른 집 부인처럼 우아한 잠옷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일하던 평상복 그대로 엎드려 끙끙 앓고 자고 있는 아내를 보니 나의 소중한 마누라한테 누더기를 입혀 내팽겨 쳐 놓은 것 같아 측은한 마음에 갑자기 콧잔등이 쌔 해졌다.
그 누더기 반창고가 붙여진 발이 클로즈업 되며 내 눈 앞에 꽉 차올랐다. 요즈음 부쩍 아내가 발뒤꿈치의 아픔을 호소하니까 둘째 딸아이가 피로물질을 배출하는 반창고라며 사다준 것을 잠잘 때 붙여온 모양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전에 그런 말을 들은 게 생각이 난 것이다. 나는 그것을 혼자서 붙이는 마누라를 생각하니 공연히 울고 싶어졌다.
내 아내는 내가 조금만 아파도 모든 시중을 다 들어 준다. 세 끼 내 목구멍에 넘어가는 밥은 물론이려니와 내가 입을 속옷부터 병원 가는 스케줄, 심지어 먹는 약까지 아침 것 저녁 것 하며 일일이 챙겨준다. 그런데 아내는 밤마다 그것을 혼자서 붙이고 자다니…. 더구나 남편이라는 자가 오늘에서야 그 발모양을 알고 충격을 받다니!
팔불출 같은 소리를 좀 하자면 아내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여기자로 활동하던 날씬하고 멋있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눈길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아이 넷을 키우면서도 운동을 좋아하는 나를 따라 탁구, 테니스, 볼링, 라켓볼, 수영, 에어로빅, 심지어 역기운동까지 못하는 것 없이 함께 했다.
뿐만 아니라 운동하러 갈 때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든지 다닐 수 있는 소위 ‘트랜지스터 걸’이었다. 그녀와 단 둘이서 한 달 넘는 해외 배낭여행을, 그것도 몇 차례씩 다녀도 하나 심심하지 않은 여자다. 그런데 나와 함께 산지 43년, 그 동안 이렇게 된 것이다.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요즈음 다리가 부실해져 그 좋아하던 운동을 못하게 되자 아내도 내 뒷바라지에 바빠 집안에 헬스클럽이 있는데도 발을 끊었다. 옛날에는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도 보기 좋았는데 지금은 얼굴을 찡그리고 심지어 때로는 코까지 곤다.
나이가 70인데 가정부도 없이 네 식구 뒷바라지를 하느라 피곤에 젖어 얼굴을 찡그리며 자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지난 43년간 나와 나의 딸들과 함께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행복한 구석도, 힘들었던 구석도…. 나는 그것이 나의 거울이라 생각하며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나는 아내가 깨지 않게 살포시 아내의 발뒤꿈치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어설픈 솜씨지만 단전호흡으로 내 기를 아내의 발뒤꿈치에 열심히 불어 넣고 있었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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