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여건 악화 불구 시황 회복세 지속
해운시황은 2008년 말의 저점을 지나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해운시황의 회복은 시장 수급여건의 개선에 기인된 것은 아니며, 공급과잉 현상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근래의 해운시황 회복은 일반적인 수급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며, 다음과 같은 요인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선사의 시장 안정화노력을 들 수 있다. 근래 운임이 해운원가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에서 결정됨에 따라 해운업계에는 더 이상 운임인하를 용인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사들은 상호간의 과당경쟁을 회피하는 등 시장안정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물론 2008년 10월 이후 EU의 담합행위 금지조치 시행에 따라 선사 간 명시적인 협력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선사들 사이에는 운임수준의 유지 내지 회복이 생존을 위하여 불가피하다는 심리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철광석, 석탄, 유류 등 원자재에 대한 재고투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해운시황 회복에 기여했다. 특히 중국의 철광석 수입량은 2008년 4억 4,250만 톤에서 2009년에는 6억 1,570만 톤으로 39.1%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Clarkson 자료). 이러한 철광석 거래 증가에 따라 제철용 석탄의 거래도 급증하고 있다.
셋째, 철광석, 석탄 등 주요 대량화물의 적·양하항에서 항만체선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건화물선 시황 회복을 견인한 주요 요인이 된다. 특히 케이프사이즈 건화물선의 경우 철광석 및 석탄의 투기적인 거래에 따라 항만체선이 심화되었으며, 그 결과 BDI도 상승추세를 유지했다. 그런데 해운시황이 항만 체선의 변동에 좌우됨에 따라 시장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다. 즉, 2008년 중순에는 케이프사이즈 건화물선 항만체선이 130여 척에 달함으로써 시황이 정점(2008년 5월 6일 BDI 11,689 기록)을 기록했으며, 동년 말에는 체선이 40여 척으로 완화됨에 따라 시황도 급락했다(2008년 12월 5일 BDI 1663 기록).
넷째, 선주의 다양한 공급조절 노력도 해운시황 회복에 일조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선주는 신조선 인도지연, 계선, 감속운항 등으로 시황침체에 대응하고 있는바, 이러한 선주의 공급조절 노력은 제한적이나마 시황회복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가장 취약한 부문은 건화물선시장
근래 시황회복세가 가장 현저한 부문은 건화물선 시장이다. 2009년 12월 말 기준 BDI는 3,000 내외를 기록하고 있는바, 이는 시황의 본격적인 회복 이전인 1985~2002년 중 해당 지수가 대체로 1,000~2,000에서 움직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높은 수치이다. BDI를 기준으로 할 때 건화물선 시황은 불황극복을 넘어 오히려 호황기에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음 표에서 보면 건화물선시장의 톤·마일 기준 수급지표(톤·마일/DWT)는 2006년 이후 악화추세를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BDI는 2007년까지 급속하게 상승했다. 이와 같이 수급지표와 BDI가 반대로 움직인 것은 물동량 증가에 따라 항만체선이 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항만 표준처리능력은 일종의 임계치(critical value)로 작용함으로써 BDI의 급등락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만약 물동량이 임계치인 표준처리능력을 조금이라도 초과하면 바로 체선현상이 나타나며, 임계치를 초과하는 범위에서는 물동량 증가에 따라 체선현상이 급격히 가중된다. 이 경우 BDI가 급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물동량이 임계치를 조금이라도 하회하면 체선현상은 일시에 해소됨으로써 선복의 초과공급현상이 나타나고, 그 결과 BDI는 급락하게 된다.
즉, 건화물선 시황은 호주 및 브라질의 철광석·석탄 선적항과 중국 양하항의 시설능력과 물동량의 균형 여부에 따라 언제라도 급변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건화물선 시장의 수급상황은 2010년에도 악화추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러한 건화물선 시장의 구조적인 수급 문제는 철광석과 석탄 적·양하항의 항만체선으로 인하여 은폐되고 있다.
한편, 건화물시장의 항만체선 현상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며, 따라서 건화물선 시장의 미래는 매우 불안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항만 체선현상이 일시에 해소된다면 건화물선 부문은 다시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와 같이 철광석 및 석탄 적·양하항의 항만체선 현상은 건화물선 시황을 지지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동시에, 해당 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 이유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철광석, 석탄 등 주요 원자재의 경우 실수요보다는 투기적인 재고증감 요인에 의한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바, 이에 따라 운송수요의 변화가 크게 나타난다. 만약, 세계경제의 더블딥(double dip) 가능성 등 회복에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면 해당 화물에 대한 해상운송 수요가 일시적으로 급감할 수 있다.
둘째, 항만체선 현상을 유발하는 철광석, 석탄 등 주요 원자재는 투기적인 재고투자에 의하여 운송수요가 크게 변화한다. 그런데 항만 체선현상은 운송수요가 위에서 언급된 임계치를 중심으로 조금만 변화해도 급속하게 가중되거나 해소될 수 있다.
셋째, 건화물선 시장의 수급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특히 건화물선 부문은 다른 부문과는 달리 시황이 호조를 지속함에 따라 건화물선 신조 인도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2010년의 건화물선 시장 수급지표는 과거 어느 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적인 수급불균형이 항만체선 현상에 의하여 은폐되고 있으며, 선주들은 이와 같은 왜곡된 시장정보를 바탕으로 신조선 추가 투입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은 적극적 시장 안정화 노력 요구
이와 같이 2010년의 해운시황은 시기별로 등락은 있겠으나 소폭의 회복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세는 수급여건의 개선보다는 선사의 시장안정화 노력에 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는 상존 내지 악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불안정한 회복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주요국들에 있어 경기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의 마감과 출구전략의 추진이 이루어질 경우 운송수요의 급격한 감소 가능성도 있다.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분쟁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하기 위한 선사의 주요 경영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복 공급조절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해야 한다. 주요 공급조절 방법으로는 신조인도의 지연, 계선, 폐선, 저속운항 등이 고려될 수 있다. 특히, 건화물선 부문의 경우 일부 선주들은 항만체선으로 인한 시장정보 왜곡으로 신조 투입을 적극 단행하는 사례까지 있는바, 이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과당경쟁의 지양 등 시장안정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선사 간 공식적인 협력은 EU의 경쟁법 적용에 따라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과당경쟁은 지양되어야 하며, 이와 관련된 선사들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철광석, 석탄 등 주요 원자재의 투기적 재고투자에 따른 수송수요 변동에 대응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요 대량화물 물동량이 임계치인 항만 표준처리능력 이하로 감소하게 되면 체선의 해소와 함께 급격한 수급불균형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컨테이너선 시장의 경우 대형선 투입 급증에 따른 공급사슬 체계의 재정비가 요구된다. 2008년 12월 1일 기준 8,000TEU 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잔량은 250여 척이며, 그 중에서 10,000TEU 이상 초대형선은 170여 척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형선의 투입에 있어서는 기항 예정 항만의 시설여건, 집하·배송체계 등에 대한 사전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다섯째, 유조선시장의 경우 단일선체 유조선의 퇴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2011년부터 단일선체 유조선의 입항이 금지된다. 현재 전체 유조선의 약 절반이 단일선체 유조선으로 추정되고 있는바, 이의 퇴출에
따른 시장 수급여건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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