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7 19:28
“국내 조선업계 불황 오면 후유증 크다”
조선 설비 확장 신중한 접근 필요
최근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조선설비 신·증설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7일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의 홍성인 연구위원은 ‘선박 건조설비 신증설에 대한 신중한 접근 필요’란 보고서에서 세계 조선경기 시장이 하강세로 돌아서 선종별 수요가 감소하고 중국의 조선설비 가동이 본격화될 경우 향후 초과공급에 따른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국내 조선업계는 높은 인건비와 환율 하락으로 조선 불황이 찾아 왔을 경우 타격이 클 것이란 전망이다.
2000년 이후 세계 선박 건조수요는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의 선박 건조수요는 단일선체(Single Hull) 탱커의 강제 교체, 해상 물동량 급증에 따른 신규 수요가 맞물려 2000년 이후 급증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로이드 통계에 따르면 세계의 선박 건조수요는 물량기준 과거 최고치인 1975년의 실적을 2003년 3550만GT로 경신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2006년에는 5179만GT를 건조해 사상 초유의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2007년 상반기에도 총수주량이 6900만GT로 전년동기 대비 40% 증가했고, 건조량도 작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선박 수요증가는 주로 해상 물동량 증가에 따른 신규수요, 노후 선박 및 단일선체 탱커의 대체수요, 해양오염 규제강화에 따른 유발수요 등의 증가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경제회복에 따른 해상 물동량의 증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 위한 해운업체들의 선박 대용량화 추세에 따라 신규 건조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또 단일선체 탱커의 의무 교체 및 노후선박의 대체, 세계적으로 해양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로 기준미달 선박에 대한 해체가 늘면서 대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02년 10월에 발생했던 프레스티지호 좌초 사고 이후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기준미달 선박 및 단일선체 탱커의 자국 내 정박을 금지하고 있고, 국제해사기구( IMO)에서도 단일선체 탱커의 퇴출시한을 2015년에서 2010년으로 앞당겼다.
조선 활황세로 설비 확장 과열
세계 조선시장이 계속 활황상태를 보이면서 국내 블록 제작업체 및 수리업체가 설비증설과 함께 신조선 건조 업체로 전환하거나, 조선소를 새로 신설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의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은 블록을 제작해 대형 조선소에 납품하던 업체였으나 2005년부터 신조에 본격 가담하기 시작했고, 2007년 6월말 기준 수주잔량 200만CGT에 육박하는 세계 20위 이내 업체로 성장했다.
서남권의 대한조선은 전남 조선산업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중형급 조선소로 추진됐으나 최근 초대형유조선(VLCC)까지 건조 가능한 조선소를 지향하며 확대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대한조선은 540m급 도크 2기를 증설할 계획이다.
이밖에 지난 7월 고성지역이 특구로 지정되면서 계획 중인 중대형급 조선소의 건설이 예상되는 등 해안지역을 끼고 약 2 0여개 업체가 기존시설의 확장 또는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클락슨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한국조선협회 회원사가 아닌 신증설 조선소 16개사의 수주잔량은 410척, 698만CGT로 전체 물량의 13%에 달하고 있다. 신증설 조선소 가운데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의 비중이 7.1%에 이르고 있고, 21세기 조선 1.0%, 세광중공업 0.9%, 대한조선 0.8% 등으로 나타났다. 신증설 조선소의 비중은 성동조선, SPP조선, 대한조선 등이 중대형급으로 확대되고 계획 중인 신설 투자가 가시화되면 더욱 늘어날 전망.
신증설 조선소의 확대로 인력 및 강재수요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인력의 경우 국내 고용증가로 이어져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기술 및 전문 기능인력은 기존 업체에서 스카우트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인력부족의 확산, 인건비 상승 등의 부작용도 유발되고 있다. 강재 수요도 매년 크게 증가하면서 국내 강재 공급량을 크게 초과하여 해외 수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가격도 상승 추세다. 강재공급은 포스코 240만t, 동국제강 140만t등이 국내에서 조달되고 있으며 일본 160만~170만t, 중국 94만t 등 수입량이 250만~260만t을 차지하고 있다. 올핸 약 30만~ 40만t 정도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3~2006년 초과수요로 대규모 발주
세계 조선산업의 수급 경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초과수요가 계속 존재해 왔고 특히 2003∼2006년 기간에는 대규모의 초과수요가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3∼2006년엔 대규모 초과수요로 인해 선주가 선박 발주를 위해 조선소를 찾아다니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규모가 컸던 시기엔 대량 발주가 이뤄진 반면, 수급이 팽팽했던 시기나 초과공급이 존재했던 시기엔 조선소들의 수주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특히 2002년엔 국내 조선소들끼리 치열한 수주경쟁이 발생해 조정명령이 발동되기도 했다.
MSI 전망에 따르면 향후 4년간 단기적으로 상당 규모의 초과 공급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이 기간은 중국의 대형 조선기지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국내 조선소와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홍연구위원은 이같은 추세를 반영해 세계 조선시장이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중장기 경기순환 현상이 존재하며, 경기하강시 그 영향이 상당히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세가지 사실을 지적했다.
먼저 해운기업은 고도의 경영전략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수요를 결정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요 법칙이 존재하고 수요의 변화 방향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또 선박의 수명이 20∼30년에 달하기 때문에 교체주기가 길고, 수요 변화의 유사성과 맞물려 일정한 주기를 형성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선박의 신규 수요는 경제적 요인에 의해 일시에 다량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수요 사이클의 변화 폭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을 들었다.
세계 조선시장의 경기순환에서 볼 때 현재는 조선호황으로 건조능력을 확대하는 시기로 나타나고 있으나, 이로 인해 선박 공급 과잉 및 운임하락이 발생하고 여기에 세계경제의 둔화조짐이 가중되면 조선불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홍연구위원은 지적했다.
단기적으로 초과수요가 사라지거나 중장기적으로 불황이 시작되면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치열한 수주경쟁을 수반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는 초과수요 발생으로 경쟁력보다 건조능력이 수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상황이 반전되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쟁력, 특히 가격경쟁력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국내 조선소들은 높은 선가, 증가하는 수주물량으로 인해 건조능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으나 인력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원화 환율의 불리한 전개 등은 시장의 국면 전환 시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격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외부 변수 가운데 하나인 환율도 국내 조선업계에 불리한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원화의 절상 속도가 중국의 위안화를 크게 추월하고 있고, 엔화는 오히려 추세적으로 절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공급에 비해 부족해지면서 치열한 수주경쟁이 전개되고 이는 곧 선가 하락으로 연결될 우려도 지적된다. 현재의 선가는 지수기준 2000년 이후 최저치 대비 64.8%가 상승한 상태로 생산요소 가격의 상승(후판, 인건비 등)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불황기에 접어들게 되면 건조량 및 고용은 심각한 수준으로 감소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조선산업의 주도국으로 정점과 저점을 경험했던 일본과 유럽의 경우 세계시장의 수요감소로 건조능력과 건조량이 60∼78% 줄었고, 고용도 70% 가까이 감소했다.
세계시장의 국면 전환시기에는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선주들의 선박인수 지연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다. 선주들의 경우 해운시황이 악화되면 다양한 이유를 들어 인수를 지연시키는 사례가 증가한다. 이럴 경우 신설 조선소들은 경험이 적고 대응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예로 대한조선공사를 들 수 있다. 1983년 대한조선공사는 노르웨이 토발드 클라브니스사 및 하브톨사로부터 3만7천t급 다목적 화물선(PROBO선) 6척을 수주했다. 당시 조선업계는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지속된 경기 침체로 선가는 하락하고 경쟁은 치열한 상황이었다.
결국 납기시기인 1985년께 선주가 해치커버 실(Hatch Cover Seal)의 유밀성(油密性) 문제와 조종성 이유로 인도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대한조선공사는 이에 따른 손실과다가 원인이 돼 1987 4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홍연구위원은 따라서 선박 건조설비의 신증설은 초과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지만 리스크 관리를 전제할 때 면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중대형 설비 신증설에서 많이 모색되는 건조도크 확충은 효율화 시점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 기회를 놓칠 수 가능성이 높다. 또 투자기간을 최대한 단축시켜 활용할 수 있는 플로팅도크는 시장이 호황일 때 단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설비이지만 건조단위당 비용은 높다는 단점이 있다.
홍연구위원은 신설 조선소들이 세계 조선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선 시장내 유사한 선종 및 선형을 건조하는 1차경쟁상대 뿐 아니라 시장내 모든 조선소들인 2차 경쟁상대들과 비교해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생 조선소는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내수시장이 빈약하고, 기존 조선소들에 비해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신설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차 경쟁상대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 대형 조선소들의 건조선형 대상 범위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설 조선소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는 선종 전문화 전략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력 선형인 파나막스, 수에즈막스, 케이프사이즈 등을 벗어나 선주의 요구에 맞는 선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쓰네이시 조선의 경우 벌크 캐리어 선형을 특화해 이른바 ‘쓰네이시 경제적 표준선형모델’(TESS)을 개발해 전문화를 모색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TESS 52, 유로 TESS, 캄사막스 82BC 등이 그것인데 표준화를 통해 기존 선형보다 비용을 절감하고 선주들의 가장 큰 니즈를 사전에 표준설계에 반영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특히 선급기준을 LRS로 바꾸고 화물손상, 밸러스트 탱크 및 파이프의 방식사양, 거주구 등을 업그레이드했다.
또 시장 상황이 반전되면 건조능력이 아닌 제반 경쟁력, 특히 가격 경쟁력이 중요하게 되는 점을 감안할 때 생산성, 비용 및 시간관리능력향상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이에 더해 기술 경쟁력도 갖출 때 선주들에 대한 질적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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