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과 동등한 물류정책 펴야”
나는 1965년 육상운송 회사에 입사하면서 이 업계에 입문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던 시기로, 일차산업의 원료 및 제품인 원면 등이 조금씩 부산항으로 수입되고 있었으며 마카오밀 무역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물류 개념은 단순 ‘지게꾼’ 정도의 수준이었다. 우마차나 삼륜차, 인력이 일반 물류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5.16 이후 차관을 빌어 산업기계설비 등이 수입되면서 기중기, 지게차, 트럭 등이 도입되던 시기로 현대화된 물류기능이 시작되는 초창기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육상물류 시설은 일제시대 건설한 철도운송이 전부였다. 철도운송의 경우 역과 역 간의 연결이라 역에서 공장까지의 운송은 인력이나 우마차, 삼륜 화물차 등을 이용해야 하는 아주 열악한 형편이었다. 도로운송 또한 일제시대 만들어진 국도를 이용했으며 차량 역시 소형 화물차 밖에 없어서 장거리 도로운송은 극소수였고 대형 화물은 거의 철도운송에 의존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공업과 중공업 발달로 원료와 제품의 생산량이 증가했고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도로운송의 점유율이 높아졌다. 지금은 도로운송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당시와 비교하면 철도와 도로의 점유율이 뒤바뀐 셈이다.
70년대 중반에 외국 선사 대리점이 들어오면서 컨테이너가 도입됐다. 그러나 왕복 2차선의 굴곡이 많은 도로에 10t 이상의 대형 화물차들이 주행하다보니 도로가 견디지 못하고 구덩이가 패여 이로인한 사고가 많았으며, 고속도로의 주행경험이 없는 기사들의 과속으로 인명피해가 속출하기도 했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공장만 건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도로나 항만 등 물류 인프라의 확충이 더불어 필요한 것이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어려운 형편 탓으로 공장만 지었지 도로나 항만 등 물류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프레이트 포워더는 유럽지역에서 지역 국가간 물류운송의 필요에 의해서 발달했다고 들었다. 구라파에선 선박 없는 선사, 항공기 없는 항공사, 트럭 없는 운수회사 개념으로,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자기주도로 운송, 해송, 항공, 하역, 보관, 포장, 통관 등 물류 전반적 기능을 동원해 운송을 담당하는 전문업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선 ‘거간꾼’, ‘중계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1976년 정식 면허취득 이후 현재까지도 해상운송의 경우 수수료(집화보상금)를 책정해 주지 않아서 자식 낳아 놓고 젖 안 주는 격이라 할 수 있다.
80년 후반까지도 정부는 수출제일주의라 하면서 제조업은 100% 지원했지만 정작 제조업의 마지막 마무리 단계인 물류업은 수출단가에 영향이 크다면서 운임 인상도 억제하고 물류 인프라 확충과 육성책은 쓰지 않는 등의 안일함을 보여 왔다. 그 결과로 나타난 후유증의 하나가 현재 국내 물류비용의 증가라 하겠다.
진정한 운송의 목적은 발지에서 착지까지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그리고 저렴하게 총체적인 복합물류인 것이다. 지금 같은 국제화된 사회일수록 더더욱 필요한 업종이며 육성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면허도 화물차, 선박, 창고, 하역, 항공, 철송, 포장, 통관 등을 별도로 보지 말고 종합적인 면에서 구상돼야 할 것이며, 모든 금융, 세제, 인력양성 등의 지원이 제조업과 동등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해양국가 아시아의 물류허브 실현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를 열심히 해서 아무리 많이 팔아도 제 때에 운송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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