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26 16:31
지난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인 한·중 수교를 이루었다. ‘죽의 장막’이 걷힌 지 어언 10년. 이 시간 동안 중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면서 한국의 두 번째 교역 상대국으로 떠올랐고, 한국은 중국의 세 번째 교역 상대국이 되었다. 투자 건수 면에서는 단연 한국의 최대 투자 대상국이 된 중국.
가까이 있지만 멀기만 하였던 이 나라를 바로 옆으로 데려다 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다름아닌 ‘카-훼리(화객선)’였다.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이하여 양국간 물꼬를 트는데 일조한 카훼리를 비롯, 정기선, 복합운송, 화주들의 대 중국 사업을 시리즈로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한·중 수교 물꼬 튼 카-훼리 (上)
지난 7월 29일 오후 3시, 중국 산동(山東)성 영성(榮成)시 석도(石島)진. 40여 개의 애드벌룬과 오색찬란한 꽃술이 하늘을 뒤덮고, 고막을 찢는듯한 중국 특유의 폭죽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지역 시민, 학생, 공무원 5천여 명이 한 자리에 모여 한 판 거하게 벌인 이 축제는 석도와 인천을 잇는 국제여객선 1만 2,659톤 ‘화동명주’호의 취항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인구 16만 명에 불과한 중국의 이 자그마한 소도시는 벌써부터 4천 700만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국 특수’ 기대감에 한껏 고조된 분위기였다.
불과 1990년만 해도 중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아직 국교가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 하지만 먼저 화물이 오가면서 열린 ‘죽의 장막’은 마침내 1990년 9월 15일 대한민국 사람들을 태운 ‘Golden Bridge’호를 받아 들이기에 이르렀다.
"당신들은 돈을 벌고 우리들은 발전한다"
국제여객선 항로가 열린 중국의 도시들은 대개 항로 개설 후 불과 2~3년 만에 급속한 발전을 이룩했다. 짐만을 싣고 오가는 컨테이너선과 달리, 사람과 짐을 함께 실어 나르는 카훼리선의 특성 때문이다. 사람의 왕래로 자연스러운 물량 증가가 따라 오고 그와 함께 도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 것. 한·중 카훼리항로 개설 당시 경제발전이 저조했던 위해, 청도, 대련 등은 카훼리 기항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인천항 역시 카훼리가 기항하면서 인천항 출입 여객이 급증, 지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에 대한 가장 단적인 예가 초기 한·중 항로 개설 당시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하였던 위해(威海)시. 총 면적 5,436K㎡, 총 인구 247만 명의 위해시는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7년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지급시로 승격되었다. 위해시의 무역 규모는 2000년 총 수출입액이 20억달러로 외국인의 투자 또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카훼리 항로 개설 이후 이 지역에 들어가 있는 외국인 투자업체 중 100여 업체가 한국인 업체라는 조사 자료도 있다.
조그마한 어촌에서 발전된 무역항으로
한중 카훼리항로가 개설되기 전인 1989년 중국측 입국자는 연간 1만 9,042명이었으나, 한·중 카훼리 취항 이후 중국인 입국자는 4만 2,516명으로 2.2배 이상 증가하였고 2001년 중국인 입국자는 48만 2,227명으로 수교 후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현재 한 중 항로를 뛰고 있는 카훼리 선사들은 위동항운유한공사(Weidong Ferry), 진천국제객화항운(Jinchon Ferry), 대인훼리(Da-In Ferry), 연태중한윤도유한공사(C&K Ferry), 단동훼리(Dandong Ferry), 동춘항운(Dong Chun Ferry), 한중훼리, 대룡훼리(DaLong Ferry), 화동훼리(Hwadong Ferry) 등 9개사로 총 11개 항로에 취항하고 있다. <그림1, 표1 참고>
한·중간을 운항하는 카훼리 선사는 모두 ‘호혜평등(互惠平等)’의 원칙하에 한·중 합작으로 설립되었으며 이중 한국에 본사를 둔 선사는 진천국제객화항운, 대인훼리, 동춘항운 등 3개사이다. 카훼리 항로가 첫 출발하던 1990년은 아직 한, 중 양국이 미수교 상태로, 한·중 정책 입안자들은 양국이 50:50 합작 투자를 하고 이에 따른 공동이익을 배분 실현하는 상호주의 원칙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투자방식이라고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1992년 8월 24일 한·중 공식수교 및 1993년 5월 27일 한·중 해운협정 체결 후에도 그 원칙은 변함없이 그대로 지켜졌다.
한·중 카훼리 항로의 중국측 기항지는 위해, 청도, 천진, 연태, 대련, 단동, 훈춘, 영성, 석도 등 대부분 동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측 주요 기항지는 인천, 군산, 부산, 속초, 평택 등으로 인천항은 11개 항로 중 7개 항로와 직기항을 하고 있다.
현재 평균 주 2~3 항차로 운항하고 있는 카훼리 항로의 연간 수송능력은 여객 95만 명, 화물 40만TEU로 향후 목포/연운, 인천/진황도, 평택/일조 등 이미 한·중 해운회담에서 추가 개설키로 합의된 항로까지 포함한다면 연간 여객 수송능력은 100만 명, 화물은 50만 TEU 정도 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1990년 9월 15일 역사적인 첫 출항을 한 인천/위해항로가 그 해 9,000명 정도를 실어 날랐던 반면, 2001년에는 총 51만 3,000명을 수송하여 카훼리 항로는 급속한 발전 중에 있으며 특히 인천/위해 항로는 단일 항로로서는 처음으로 여객 수송 150만 명을 올해 돌파하였다. 화물 수송량도 1990년 409TEU에서 2001년 15만 5,105TEU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카훼리선의 빠른 성장 비결은 ‘정시 운항’과 ‘빠른 수송’. 컨테이너선이 중국 기항시 대략 2~4일 정도 걸리는데 비해 카훼리선은 수송 시간이 불과 하루가 채 되지 않으며 선박량 증가로 항만 적체가 발생할 경우에도 여객 수송으로 인해 항만 우선 접안권이 주어진다. 이것은 컨테이너선에 비해 카훼리선이 갖고 있는 경쟁 우위 요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쟁우위를 바탕으로 카훼리선사가 운송하는 컨테이너는 1996년 6만 9,448TEU에서 2001년 15만 5,105TEU로 연평균 약 20%씩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한·중 화객선을 이용하는 화주 중 약 60%는 상시 종업원 50인 이하의 중소기업으로 나타났으며 상시 종업원 301인 이상의 대기업은 전체의 16.7%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물량이 많지 않고 수시 주문에 의해 갑작스러운 납품 기회를 맞게 되는 중소기업의 경우 이들의 수요가 카훼리선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한·중 항로가 열리던 초창기 시절 카훼리를 이용했던 여객은 화교 보따리상 30%, 무역 투자 기업 임직원 30%, 학생 단체 30%, 그 외 10%로 구성되던 것이 1997년 IMF 한파를 맞으면서 대변동을 거치게 된다. ‘정리해고’ 등 갑작스런 경제 어려움으로 늘어난 실업자들에 대해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한중 보따리 무역상’ 교육을 시키기에 이른 것. 교육비는 물론 식비, 용돈까지 주어 가며 교육을 받은 이들 보따리 상인들이 배를 타면서 전체 여객의 90% 이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현재 한·중 카훼리선을 이용하는 대중국 보따리 상인들은 화교를 포함하여 약 2,000여명 정도로 추산되며, 무역 수출 규모는 연간 약 10억 달러로 대 중국 수출액의 약 10% 정도 차지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처음 개설 당시보다 여객 50배, 화물 300배 이상 증가
카훼리 항로의 빠른 성장이 가시화되면서 인천항 컨테이너선 기항 요구가 한·중 해운협의회에서 제기되었다. 한국측은 인천/중국간 컨테이너선의 투입 제한으로 경인지역 물류비용이 증가되고 있다고 역설하며 빠른 시일 내 인천항 컨테이너선 투입을 주장하였다.
인천항 살리기 시민연대는 작년 8월 무역협회 인천지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인천/중국 항로에 컨테이너 선박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응답자의 77%는 ‘매우 필요하다’고, 9%가 ‘필요하다’고 응답하면서 응답 업체의 86%가 항로 개설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시민연대 측은 밝혔다. 또한 이 설문조사에서 물품 수출 시 이용항만은 인천항이 50%로 가장 많았으나 부산항도 33%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 인천/중국간 카훼리선을 이용한 화물 운송료가 부산/중국간 정기 컨테이너선 운송료보다 2~3배 비싸기 때문에 내륙운송료와 운송시간을 추가로 부담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천에서 부산항을 이용하는 업체가 많다고 시민연대 측은 분석하였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여론에 밀린 전임 해양수산부 장관은 “2003년에 카훼리항로를 컨테이너 선사들에게도 전면 개방하겠다”는 공언까지 하였다.
하지만 인천항에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이 들어오면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대부분의 카훼리 선사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데 이들 카훼리 선사들의 위기감이 있다. 컨테이너 선사들은 뒤늦은 시장 진출에 따른 지배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격적인 경영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운임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카훼리선사들의 주장. 또한 인천항 컨테이너선 기항이 결국은 전면적인 한·중 항로 개방으로까지 이어져 ‘제 2의 일·중항로’가 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이들 선사들은 지적했다.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2001년 12월 가입하면서 결국 항로 개방 쪽으로 최종적인 가닥이 잡혀 가겠지만 아직까지 한중간 화물시장이 제대로 무르익지도 않은 상황에서 카훼리와 컨테이너선의 경쟁을 시킨다는 것은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것이 이들 카훼리 선사들의 중론. 이와 함께 카훼리 선사들 내부에서도 항로 개방에 맞추어 단계적인 운임 조정 움직임이 조금씩 포착되고 있다.
경영 악화로 운항 중단 항로 나와
또한 갑자기 증가한 카훼리 항로로 항로 내에서도 공급 과잉 문제가 야기되면서 그나마 고(高)운임을 유지해 왔던 카훼리 선사들이 운임덤핑 사태로 몰리고 있다. 제한된 시장을 서로 차지하려는 움직임은 선사들의 여객 수와 소석률에도 영향을 미쳐 한·중 카훼리선의 평균 승선률은 전체 수용 능력의 53.7%, 화물 소석률은 38.7% 정도 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최근 취항한 한 카훼리 선사의 경우 한 항차당 2,30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항하고 있어 벌써부터 업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또한 군산/연태 카훼리 항로를 맡고 있던 ‘연태중한윤도유한공사’가 오는 9월 1일부터 군산/연태항로 카훼리 운항을 중단키로 발표했다. ‘연태중한윤도유한공사’는 1996년 항로 개설 이후 작년까지 누적적자가 509만 4천 달러에 이르고 올 상반기 적자만 79만 5천달러에 이르는 등 경영압박이 심해 운항 중단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훼리 선사들은 군산/연태 항로 운항 중단을 공급 과잉 상태에 있는 카훼리 항로가 자체 수급 조정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하고 앞으로 유사 사태가 속출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한편, 지난 8월 초 한 중앙 일간지 1면에 ‘다이공 밀무역 커넥션’이란 제목으로 한·중 카훼리 항로가 밀수의 통로인 것처럼 보도되자 한·중간을 오가는 다이공(일명 보따리 상인)들에 대한 세관의 검사는 한층 강화되었다. 2000년부터 휴대품 면세 허용중량을 80Kg에서, 70Kg으로, 그리고 60Kg에서 급기야 50Kg으로 단계적으로 줄여왔던 관세청은 올해 들어 품목별 5Kg으로 그 강도를 한층 더 높이더니 중앙 일간지 언론보도와 함께 8월 14일부로 반입화물은 기탁화물 반입방식으로 50Kg까지만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한국세관의 강경 검색방침에 따라 중국세관측도 오는 9월 1일부터 한국과 동일한 강도로 세관 검색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세관의 발표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바르게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해 왔다’고 자부하던 보통의 보따리 상인들.
일부 꼴뚜기 어물전 망신시켜
8월 22일 오후6시, 중국의 청도에서 막 들어온 상인들은 제 2국제여객터미널 현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중국에서 가지고 온 샘플 재 분류 작업에 한창이었다. 배를 탄 지 8년 되었다고 밝힌 30대 중반의 한 상인은 세관의 검색이 강화되면서 단지 샘플의 수량이 많다는 이유로 ‘샘플이 유치되었다’고 했다. 각 항로 별로 다이공들이 운반하는 제품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배를 타는 청도 항로의 경우 대부분 시급(時急)을 요하는 공산품 위주의 핸드 캐리어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상인은 말했다. 청도에 있는 3,600~3,800여 한국 투자 기업체의 손발 역할을 하는 이들 상인들은 라인 작업에 있어 갑자기 필요한 부속품이나 샘플 등을 적시 적소에 전달하는 작업을 하기에 수출산업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 또한 강했다. 그러기에 언론 보도로 인한 세관의 검색이 강화되자 일부 미꾸라지 같은 상인들로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다고 분개하며 규제 일변도의 세관 검색을 강하게 비판했다. 청도항로의 경우 정기적으로 배를 타는 상인들은 대략 60여 명선. 이들은 자체 상인회가 결성되어 그들 나름대로의 규율에 따라 서로의 생활을 규제한다고. 배를 타는 것이 그들의 생업인 이상 금지품목을 수송하고 탈법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여객터미널에서 만난 또 다른 상인은 말했다. 세관에서 적발되는 것은 곧 (그들이) 배에서 내려야 하고 생업을 떠나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9월부터 세관의 규제 강화로 살길이 막막해진 상인들은 손실을 감수하고도 배를 타야 한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계속>
글·백현숙기자 (hspaek@shipschedule.co.kr)
<미니인터뷰 이종순(李鐘洵) 한중화객선사협의회 회장>
- 1990년 9월 15일 인천/위해 항로가 처음 열린 이래, 한·중 화객 항로도 상당히 많이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운항중인 항로와 개설 예정인 항로는 어떤 곳이 있습니까?
“현재 한중 화객 항로는 총 9개사에서 11개 항로(표1 참조)를 운항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제9차 한·중해운협의회 협의사항에 따라 금년 7월 26일 인천/석도 항로가 개설되었으며, 뒤어어 목포/연운항, 평택/일조, 인천/영구, 인천/진황도 항로도 속속 개설될 예정입니다.”
- 한중 화객항로가 인천항에 집중되면서 인천항 여객부두가 상당히 혼잡해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중 화객선사협의회에서 해양수산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한 사항은 없는지요?
“신규항로의 개설이 계속되고 투입선박이 대형화되어 인천항에 집중되다 보니 항만시설, 여객터미널 협소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한중화객선사협의회의 위동항운을 중심으로 진천항운, 한국관광공사가 각각 6:1:3 비율로 총 공사비 100억을 투자하여 지난 5월 28일 제 2국제여객 터미널을 준공하였습니다. 제 2터미널이 완공됨에 따라 인천/단동, 대련, 연태 항로는 제 1터미널을, 인천/위해, 청도, 천진 항로는 제2터미널을 이용하게 되어 여객터미널 협소의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습니다.”
- 1998년 한중 해운협의회에서 한중 화객항로에 대한 기존 컨테이너 선사의 운항참여를 오는 2003년에 허용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항로 개방 문제와 관련, 화객선사들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한중화객선이 한중간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고 향후로도 화객선의 특성인 신속성, 정시성, 높은 운항빈도를 통한 고품질의 운송서비스는 여전히 한·중 양국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므로 항로 개방의 문제는 매우 신중히 접근하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한·중정기항로의 시장상황을 보면 2001년도 화객선의 평균소석율이 38%, 풀컨선의 평균 소석율은 34%에 이를 정도로 운송수요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선복과잉으로 인한 공멸을 막고 화객항로와 풀컨항로의 균형된 발전을 위해서는 항로의 개방문제는 운송수요가 더욱 증가한 이후 적어도 3년 이후에나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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