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박의 닻을 의미하는 앵커(anchor)가 방송 뉴스 진행자를 일컫는 말이 된 걸까? 고려대 해상법 연구센터 김인현(
사진 앞줄 왼쪽에서 3번째) 소장은 10월14일 자신이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성과보고회에서 그 해답을 알려주는 유익한 시간을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이날 ‘해문(海文)과 지문(地文)의 상호작용’을 주제로 한 기조 강연에서 해상 문화나 제도(해문)가 육상 문화에 끼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바다에서 유래했지만 육상에서 더 많이 쓰이는 용어로 앵커를 들 수 있다.
선박이 조류나 바람에 밀려가지 않도록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도구를 가리키는 앵커는 지금은 뉴스 진행자를 뜻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1950년대 미국 방송계에서 뉴스의 중심을 잡아주는 진행자를 앵커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육상의 용어로 자리 잡았다.
또 바다에서 도선사를 뜻하는 파일럿(Pilot)은 항공 분야로 넘어가 비행기 조종사를 뜻하는 말로 정착됐고 한 기업의 대표적인 상품을 말하는 플래그십(기함)은 원래 함대 지휘관의 깃발을 게양한 선박에서 비롯됐다.
이 밖에 자동차의 길 안내를 도와주는 ‘내비’는 항해의 영어 단어(Navigation)에서 왔고 새로운 사업이나 제품을 내놓는다는 의미로 쓰는 론칭(launching)은 선박을 진수할 때 쓰는 용어였다.
김 교수는 나아가 육상의 과학과 철도 통신은 선박 항해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선박이 망망대해에서 안전하게 항해하려면 무엇보다 위도와 경도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위도는 북극성의 고도를 보고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경도였다.
수백 년 동안 해양 열강은 경도를 구하는 방법을 찾고자 고군분투했고 급기야 법률을 제정하고 포상금을 걸었다. 그러던 와중에 영국의 존 해리슨이 경도 측정이 가능할 만큼 정밀한 ‘크로노미터’ 시계를 개발하면서 선박 항해술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
선장들은 태양이 남중점에 도달하는 정오(오후 12시)에 크로노미터가 몇 시를 가리키는지 확인해 그 시간차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다. 지구가 1시간에 15도를 자전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크로노미터보다 1시간 늦으면 영국 그리니치보다 서쪽으로 15도, 1시간 빠르면 그리니치보다 동쪽으로 15도 지점에 있다고 아는 식이다.
김 교수는 “바다는 인간에게 정확한 위치와 시간을 계산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겨줬고, 인간은 이를 해결하면서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사물을 피고로 재판하는 대물(對物) 소송도 해상에서 유래한 제도다. 17세기 런던항에 도착한 동인도회사 선박의 화물에서 손해가 발생하자 인도에 있는 피고를 법정에 출두시킬 수 없던 런던 법원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선박을 피고로 불러 소송을 진행한 게 시초다.
김 교수는 영국의 해사법원이 일반 소송과 달리 대물 소송을 전담하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조만간 개원할 부산해사법원에도 대물소송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가 하면 대항해시대에 모험사업이었던 해운의 위험을 분산하려고 창안된 해상보험은 오늘날 각종 다양한 보험의 원조가 됐다.
김 교수는 하역을 편리하게 하려고 개발됐다가 해상운송의 혁명을 일으킨 컨테이너나 선박의 안전을 진일보시킨 증기기관과 철판 등은 육상의 문화가 해상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짚었다.
또 국제 간 통신의 99%가 해저케이블을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 육상에서 원격으로 바다의 무인선박을 조정하는 자율운항선박시대가 올 거라고 예상하면서 이들은 지문과 해문이 상호작용하는 예라고 풀이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