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선박 제재에 맞서 중국 정부가 맞불 제재를 도입한 가운데 미국 선사 맷슨이 첫 과세 대상자가 됐다.
중국 교통운수부는 지난 14일 미국 선박에 특별 입항세를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통상대표부(USTR)가 같은 날부터 중국 선박에 입항세를 부과하는 데 대응한 조치다.
입항세 부과 대상은 ▲미국에 국적을 등록한 선박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 ▲미국에서 소유하거나 운항는 선박이다. 미국이 지분을 25% 이상 갖고 있는 기업이나 기관까지 제재 대상이다.
다만 중국 정부는 수수료 부과 당일 중국에서 건조했거나 수리를 목적으로 중국 조선소에 입항하는 선박 등은 과세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생산지를 따지지 않고 미국 관련 선박에 모두 입항세를 물린다고 했던 당초 방침에서 후퇴한 것이다.
10월14일부터 6개월간 적용되는 입항세 요율은 순톤수 1t당 400위안(56달러)이다. 미국의 50달러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다. 수수료는 2028년까지 매년 4월17일마다 240위안(약 33달러)씩 인상된다.
부과 방식은 미국과 같다. 중국 내 첫 번째 기항 항구에서 한 번만 부과되고 연간 부과 횟수는 5회로 제한된다. 중국 정부는 선박이 자국 항구 입항 예정일보다 7일 앞서 선박의 국적과 생산지, 소유주, 운항 선사, 용선 여부, 기항 노선을 통보하고 입항세를 내도록 했다. (
해사물류통계 ‘미국 선박 대상 중국 입항세 요율’ 참고)
짐라인, 중국 입항세 6억弗 예상
이번 조치로 미국 기업인 맷슨(Matson)과 미국 지분이 25% 이상인 이스라엘 선사 짐라인이 입항세를 물게 됐다. 싱가포르 해운 컨설팅 기업인 라이너리티카는 홍콩 시스팬과 그리스 나비오스 코스타마레 글로벌십리스(GSL), 버뮤다 SFL 같은 선주사도 미국 지분이 25% 이상인 기업들이어서 광범위한 선박이 제재 대상에 오를 걸로 분석했다.
이 가운데 짐라인과 시스팬은 미국과 중국 제재에 모두 대상이 되는 불운을 겪게 됐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시스팬과 짐라인 선단 중 중국에 입항세를 내야 하는 선박은 각각 83척 57척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국적을 둔 컨테이너선은 내항선을 포함해 총 82척으로 집계됐다. 베셀즈밸류에 따르면 맷슨과 덴마크 머스크, 프랑스 CMA CGM, 독일 하파크로이트가 미국적 컨테이너선을 운항 중이다.
다만 CMA CGM은 북미 서안과 중국을 연결하는 노선에 미국 선박을 투입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이어서 중국의 입항세 부과를 피할 걸로 보인다.
라이너리티카는 내년 한 해 부과되는 전체 입항세 규모는 중국산 선박이 제외되면서 39억달러에서 23억달러(약 3조2900억원)로 대폭 줄어든다고 관측했다.
짐라인이 가장 많은 6억달러를 물고 머스크와 스위스 MSC가 3억달러대의 입항세를 낼 걸로 예상했다. 하파크로이트와 대만 양밍은 2억달러, CMA CGM과 대만 에버그린은 1억달러를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제재 대상 선박의 평균 운항 비용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300달러 이상 상승할 전망이다. (
해사물류통계 ‘중국 입항세 제재 대상 해운사 현황’ 참고)
맷슨 <마누카이>호 1호제재 선박 ‘유력’
중국 정부의 제재 시행 이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본사를 둔 맷슨이 30억원을 웃도는 입항세를 처음으로 물었다.
트레이드윈즈 등 외신에 따르면 맷슨이 소유한 2378TEU급 선박 <마누카이>(MANUKAI)호가 445만8400위안(약 9억원)의 입항세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순톤수 1만1149t인 선박은 14일 오전 중국 닝보항에 정박해 화물을 하역한 뒤 15일 오전 상하이로 떠났다.
이 선박은 지난 2003년 미국 필라델피아조선소(현 한화필리)에서 건조된 뒤 미국에 국적을 등록한 오리지널 미국 선박이다. 다만 중국 당국은 <마누카이>호에 대한 입항세 부과 여부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맷슨의 또 다른 선박인 4860TEU급 <맷슨와이키키>(Matson Waikiki)호도 미국 선박 제재의 희생자가 됐다. 현지 언론은 이 선박이 14일 오후 6시에 상하이항에 정박해 입항세 부과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맷슨이 독일 선주사인 오펜에서 임차(용선)한 이 선박은 2008년 망갈리아조선소(옛 대우망갈리아)에서 건조돼 라이베리아에 선적을 두고 있다. 순톤수가 3만224t인 점에 미뤄 1209만위안(약 24억원)의 입항세가 부과된 걸로 파악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선사들은 입항세 부과를 회피하려고 중국 기항을 중단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덴마크 머스크와 독일 하파크로이트가 결성한 컨테이너 운항 동맹(얼라이언스)인 제미니는 북미 서안을 운항하는 선박의 중국 기항을 중단했다.
머스크는 북미 서안 노선인 TP7(하파크로이트 WC5)에 취항하는 7300TEU급 <포토맥익스프레스>(Potomac Express)와 6100TEU급 <머스크킨로스>(Maersk Kinloss)호가 닝보를 취항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포토맥익스프레스>는 지난 23일 닝보항 대신 우리나라 광양항을 들른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회항했다. 선박에 실려 있던 닝보행 화물은 부산항에서 다른 선박으로 환적됐다. 두 선박은 지난 2008년 우리나라 HD현대중공업과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에서 나란히 건조됐다. 국적은 모두 미국이다.
머스크는 이 밖에 중국을 기항하지 않는 남아시아-북미 동안 항로에도 미국적 선박을 배선 중인 걸로 알려졌다.
라이너리티카는 선사들이 임차 선박을 중국 항구에서 다른 곳으로 전환 배치하거나 아예 노선을 변경하는 등 입항세 제재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정책을 펴면서 컨테이너선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걸로 내다봤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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