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국제물류산업의 일원화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14일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제물류산업 발전방안 세미나에서 해운물류 분야 전문가들은 분산된 물류 정책과 실행 정책이 산업 발전을 늦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통합 관리가 어려워 영세 업체가 난립하고 과열 경쟁이 벌어진다는 진단이다.
이날 한국국제물류협회(KIFFA)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서 성결대학교 글로벌물류학부 한종길 교수는 “국내 물류기업은 종업원 수 9명 이하의 회사가 너무 많다”면서 “해상 물동량 200만TEU, 항공화물 1만톤(t)이 넘는 화물을 처리하는 메가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가 출현하고 있는 해외 사례와 반대”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세 소규모 업체가 난립하는 가운데 실태 조사와 정책 대응이 미비한 점을 가장 문제로 지적했다. 2023년 기준 일본은 물류주선업체가 554개인 반면 한국은 5221개사에 이른다. 일본보다 10배가량 많은 기업들이 국제물류주선시장에서 경쟁하는 셈이다.
한종길 교수는 “국제물류주선업체를 새로 등록할 때 일본은 중앙부처 허가제, 미국은 중앙부처 등록제를 취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개별 지자체에 등록하면 된다”면서 “정부가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국제 물류와 아무런 관계도 없고 정책 수행 능력도 없는 광역지자체로 등록 권한을 넘기면서 관리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진행하는 ‘운수업통계조사’는 2014년 이후로 국제물류주선업과 관련해 별도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으며, 현재는 산업분류코드에 따라 ‘화물운송 중개(관세사, 화물운송주선업자, 국제물류주선업 등)업’ 전체 조사만 진행되고 있다.
|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제물류산업 발전방안 세미나에 해운물류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
한 교수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급증에 따라 업계 현안으로 떠오른 적하목록 전송료 부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전자무역플랫폼인 케이티넷(KTNET), 케이씨넷(KCNET), 케이엘넷(KLNET) 등의 징수 시스템을 개선하고 플랫폼 이용 요금을 적정화하거나 플랫폼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일본의 NACCS 사례를 들면서 “산업자원부, 관세청 등에 따로 요금을 지불하고, 신고할 게 아니라 모든 주무부처와 연결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범정부차원에서 플랫폼 단일화를 이뤄 통관, 무역, 식품위생, 항만 등의 관리 절차가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되고 있다.
부산대 무역학부 김영주 교수는 국제물류주선업 등록 절차 강화와 관리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그는 “너무 낮은 진입장벽으로 영세 업체가 난립하고 과당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은 개선 권고를 하고 등록을 취소하는 방안, 우수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더불어 김 교수는 “현행 물류 관련 법제 구조가 여러 부처로 분산돼 국제물류산업에 일관적인 지원 정책이 형성되기 어렵고 물류 대란이 발생했을 때 대응체계가 미흡하다”며,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려면 중앙부처 기구나 통합적인 정책 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김인현 명예교수는 상법에 ‘계약운송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포워더의 권리를 넓히고 지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김 교수는 “선박 없이 운송을 주선하는 무선박운송인과 실제로 운송을 해주는 운송인이 있는데 상법상 운송주선인은 운송인이라고만 돼 있다”면서 “이 점 때문에 포워더는 사각지대에서 해양진흥공사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해진공이 지원하는 대상은 해운법, 항만법, 항만운송사업법에 해당하는 주체만 대상이 된다.
| ▲왼쪽부터 국제물류발전자문위원회 김병준 위원장, 성결대 한종길 교수, 고려대 김인현 명예교수 |
‘물류부’에 비견되는 고위급 의사결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제물류발전자문위원회 김병준 위원장은 “업계 관계자 등 민간이 함께하는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 조직을 두거나 최소한 민간위원장과 총리가 공동으로 위원장을 맡는 총리위원회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물류 관련 정책은 기획재정부(관세청),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고 포워딩 업체 관리는 광역자치단체가 담당하는 점을 지적하며, 물류 정책을 상시적으로 협의해 결정하는 조직이 있어야 일관되고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여러 번 지적된 ‘규제 완화에 따른 물류주선업체 난립 문제’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반대 주장이 제기됐다.
기조발표 후 이어진 종합토론에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최나영환 실장은 “등록 기준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덴 공감하지만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무조건 바꾸는 건 현행 업자들에게 과도한 요건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부처 간 협의로 국제물류 관련 신고 플랫폼을 일원화하거나 중개료를 다시 책정하는 등 현실적인 부분을 적극 검토해야다”고 주장했다.
이상일 국민의힘 수석전문위원 또한 “국제운송, 국제물류업체만 자유도가 높은 편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는 있지만 다시 내준 것을 이전으로 되돌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더불어 전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현재 육상, 해운, 항공 모두 물류 부처가 나눠져 있는 상황인데 인프라는 뗄 수 없기 때문에 교통과 물류 부처를 같이 붙여놓는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KIFFA 원제철 회장은 개회사에서 “물류산업 역량은 국가 경쟁력에 중요한 지표”라며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감안하면 국제물류산업과 기업들을 최우선 보호 육성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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