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운송과 관련된 분쟁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으므로 준거법의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 외국적 요소가 있는 계약에서 준거법의 결정은 당사자 자치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즉, 준거법을 결정함에 있어서, 우선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고(국제사법 제45조 제1항), 당사자의 의사가 분명하지 아니하여 준거법을 선택하였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에 의하여야 한다(국제사법 제46조 제1항).
한편, 선하증권상 용선계약을 선하증권에 편입한다고 하면서도, 선하증권의 이면약관에 다시 준거법 등에 관한 약정을 두는 경우가 있다. 이는 소위 선하증권상 지상약관(Clause Paramount)으로 불리는데, 연혁상 면책약관의 일종으로 선주가 일방적으로 정한 면책범위를 제한하고 화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제적인 요구에 따라 선하증권에 선주의 책임 내지 면책에 관하여 국제법규 내지 특정 국가법에 의하도록 함으로써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일반적인 준거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선하증권상 지상약관에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하여 다른 특정 국가의 법으로 정한 경우,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하여 다른 특정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해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는 선하증권상 지상약관의 성질이 저촉법적 지정인지 혹은 실질법적 지정인지 여부, 지상약관에 준거법의 분할이 허용되는지 여부 등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지상약관에 의한 준거법의 지정에 대한 법적 성질을 살펴보자. 이는 당사자가 계약관계를 규율하는 법률을 합의한 경우로 이해하는 저촉법적 지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계약의 내용을 정하는 대신에 특정의 법률 규정에 의하기로 한 경우로 이해하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계약조항을 정함에 있어서 계약관계의 준거법은 별도로 있고, 그 조항은 준거법이 임의법으로 하는 부분에서만 효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실상 전자의 입장에서 이를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의 문제로 보아 저촉법적 지정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18년 3월29일 선고 2014다41469 판결 참조). 일반적인 준거법 조항이 있음에도 운송인의 책임범위에 관하여 국제협약을 입법화한 특정 국가의 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그것이 해당 국가 법률의 적용요건을 구비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인의 책임제한에는 그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은 선하증권 후문상 지상약관을 저촉법적 지정이 아니라 실질법적 지정으로 본다면, 선하증권 전문에 의하여 전체적으로 준거법으로 지정된 영국법의 강행규정에 위반될 수 없고, 그에 따라 책임제한도 미국 해상화물운송법보다 책임제한 한도가 높은 영국법 규정에 의하게 되는데(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따르면 책임제한액은 포장당 혹은 관습적인 운임단위당 미화 500달러로, 포장당 666.67SDR 혹은 2SDR/kg중에서 큰 것을 책임제한액으로 하는 영국법보다 지극히 낮게 산정됨), 선하증권 후문에서 미국 해상화물운송법에 반하는 운송인의 책임의 포기뿐만 아니라 책임의 증가도 부정하면서 선하증권의 다른 어떠한 기재도 이에 위반할 수 없도록 한 규정에 정면으로 위배되어 당사자의 의사와 불일치하게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상기 대법원 2014다41469 사건 판결서 참조).
결론적으로 선하증권상 지상약관에 따른 준거법 결정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해상운송인과 화주의 입장에서는 선하증권상 지상약관의 준거법 결정에 따라 책임제한액의 해석의 분쟁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으므로, 쌍방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하도록 선하증권상 준거법에 관한 약정 등을 작성할 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 경험을 쌓았다. 배에서 내린 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