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운 전문가들이 향후 5년간 해운 시장이 공급 과잉 등 상당한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특히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컨테이너 해운업과 항만 산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라스 얀센 베스푸치 마리타임 대표는 지난달 28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회 부산국제항만콘퍼런스(BIPC)에서 “올해 수요 성장은 굉장히 둔화됐지만 내년 신조선 인도는 더 늘어날 예정”이라며 “결론적으로 선복 증가가 수요 증가 폭을 훨씬 넘어서며 선복 과잉 공급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얀센 대표는 “공급 과잉 여파로 운임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동시에 컨테이너 선사들의 원가 절감 노력이 이어지면서 모든 항만 터미널의 압박도 계속 될 것”이라면서 “다만 해운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탄력적인 공급 조절 노력으로 과거보다 빠른 회복을 할 수 있을 거란 낙관적 전망도 내놓았다.
얀센 대표는 지난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 불황이 9년여 간 지속됐던 사례를 언급했다. 특히 2014년경 선사들이 2만TEU급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며 공급 과잉이 첨예화했다고 평가했다.
팀 파워 드류리 대표는 “항만 간의 협력과 합병은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장 상황을 관리하는 데 유리한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며 “중국의 해안 도시는 도시별로 항만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공급 과잉과 세금 낭비를 우려한 중국 중앙 정부는 각 성 차원에서 통합된 항만 공사를 만들고 관리하도록 해 운영 효율화를 꾀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 시애틀·터코마항과 더불어 홍콩의 여러 항만들도 수익성과 생산성이 떨어지다 보니, 해양 얼라이언스 체제를 구성해 항만을 통합 운영하며 경쟁보다 시너지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소형선을 활용한 근해 피더 사업은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돌 것으로 진단했다. 얀센 대표는 “소형 피더 선박은 대형 선박들과 달리 신규 발주가 저조한 상황”이라며 “향후 피더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 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한국의 중소형 지역 선사들은 대부분 연비가 떨어지는 노령 선박을 활용한 피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유럽연합(EU)에서 탄소세를 적용하기 시작하면 EU에 입출항하는 소형선들은 모두 연비가 높은 최신형 선박들이 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시아 지역의 노후화되고 연비가 떨어진 피더선들은 자연스레 경쟁력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아시아 지역의 소형 선사들이 통합을 점점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얀센 대표
(사진)는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아항에서 인도네시아 지역의 선사를 인수하겠다고 입찰에 나섰다”며 “세계 소형 선사들의 통합 추세가 계속 되면 한국 중소형 선사들의 경쟁 과열이 심해질 수 밖에 없고 향후 5년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았다.
얀센 대표는 팬데믹 이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동북아 환적 허브인 부산항의 영향력도 점차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제조 기지가 중국에서 동남아, 인도 아대륙 등 서쪽으로 점차 이전하면서 부산항과 같은 동북아 환적 중심 항만이 화물 유치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며 “또 최근엔 많은 선사들이 파나마운하 통항 제한 문제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한 항로 노선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항은 북미행 화물의 환적을 더 많이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파나마가 아닌 수에즈 운하를 통한 항로 노선이 늘어나게 되면 부산항의 환적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향후 니어쇼링 증가 추세에 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니어쇼링은 본국과 가까운 근거리 또는 인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본국과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운송비와 시간을 절약하고, 본국의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얀센 대표는 수출입 화물의 가치(금액)에 비해 컨테이너 해상 수송 비용은 아주 미미하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여전히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등 기존의 생산기지에서 생산을 하고 있고, 미래에도 그럴 확률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또 니어쇼링의 경우 기존에 비해 해상 운송 거리가 단축돼 더 친환경적일 것이라는 통념이 있으나, 이 또한 반드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역내 단거리 운송은 중소형 선박을 이용하기 때문에 ‘규모의 비경제’가 발생해 단위 화물당 배출가스량은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얀센 대표는 덴마크 해운조사분석 기관인 씨인텔리전스의 자료를 인용해 “평균 컨테이너 화물 운송 거리가 과거 5개년간 계속 증가했다”며 “이는 니어쇼링이 늘고 있다는 주장에 반하는 데이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류 인프라 투자로 공급망 직접 통제 나서
팬데믹 이후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최근 물류 기업들이 공급망을 직접 통제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공급망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공격적인 항만 인프라 투자를 감행하면서 산업간 경계가 사라지는 소위 빅블러(Big blur)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계가 사라지면서 적극 도입되는 기술이 ‘디지털화’다.
팀 대표는 “최근 부산항 등 세계 주요 항만들은 전통적인 항만의 역할에서 벗어나 훨씬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공급망에서 항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팀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항만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추세는 내륙항을 만들어 공급망 전체에 영향력을 키우고자 하는 거”라며 “일례로 정보기술(IT)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은 항만 연결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철도와 연결되는 복합 수송 해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성도 강조되고 있다. 해운·물류기업들은 안정성 확보를 위해 터미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선사들은 터미널 투자 없이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가 터미널 지분 확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상식 부산컨테이너터미널 대표이사는 “글로벌 하이브리드 운영사들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1년 21%에 불과했으나 2022년 42%까지 급증했다”며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올해 스위스 선사 MSC가 부산신항국제터미널(PNIT)에 지분 20%를 확보한 게 좋은 예시”라고 설명했다.
터미널 자회사를 보유한 주요 선사들을 글로벌 하이브리드 운영사라고 일컫는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인 MSC는 터미널 자회사인 TIL을 보유하고 있고, 덴마크 머스크와 프랑스 CMA CGM도 각각 APMT와 터미널링크를 두고 있다.
“부산항 터미널 운영사 통합 조속히 추진해야”
이날 부산항의 새로운 역할과 성장 전략에 대한 국내 해운·항만 전문가들의 제언이 이어졌다.
이상식 대표는 부산항의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부산 신항 터미널 운영사 축소 또는 운영 통합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북항 터미널 재배치와 신규 터미널 개장이 내년 초부터 시행되는데 공급 과잉에 대한 시장 안정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부산항의 전체 물동량 증대를 위한 정책이나 전략 수립이 필요한 가운데 단기적으로 터미널 간 내부통행로(ITT) 축소 또는 선사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터미널 개발 시에는 글로벌터미널운영사(GTO) 유치보단 실질적으로 물동량을 창출할 수 있는 글로벌 선사의 지분 참여라든가 운영을 통해 구조적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부산항의 글로벌 물류허브 개발 전략이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현재 이원화돼 있는 부산항 기능을 신항 중심으로 조기 일원화를 하고 2030년도 신규 진행 신안 개발과 배후부지 확대, 2030년도에 예정돼 있는 가덕도 신공항 개장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이 대표는 “싱가포르, 두바이에 비해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항공업까지 진출하는 글로벌 선사의 사업 다각화 전략을 아우를 수 있는 항만 개발이 필요하다”며 “특히 신안과 가속도 신공항 거리가 5.5km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항 중심의 글로벌 물류 허브 개발은 부산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부산항 터미널 자동화에 대해선 “이젠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하며 “터미널 자동화를 통해 탄소 배출 감소, 안전사고 감소, 터미널 운영 효율성 개선 및 항만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부산항은 1978년도 허치슨 터미널 개장 이후 신항 6부두 BCT의 국내 최초 암벽 크레인 원격 조정 시행, 내년도 개장 예정인 신항 7부두의 자동이송장비(AGV) 도입 등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며 “지난해 6월 개장한 BCT는 이송 장비 외 모두 완전 자동화로 운영되고 있지만 운영 안정화까진 약 1년 정도 소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동화 장비 신규 인력에 대한 전문 교육이 부족하고 숙련도가 미숙하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다수의 소프트웨어 해외 제작소로부터 사후서비스(AS)를 받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자동화 터미널의 운영 안정화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진단했다.
김근섭 KMI 선임연구위원도 부산항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된 ITT 문제를 해결하려면 터미널 통합이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에 뜻을 같이 했다. 김 연구위원은 “부산항은 크게 신항에선 글로벌 원양 선사들이 집중적으로 기항하고 있고, 북항에선 아시아 역내 중소형 선사들이 주로 기항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며 “큰 선박과 작은 선박이 분리해서 기항하다 보니 연계성이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규모 터미널들이 분리 운영되다 보니, ITT 비율이 굉장히 높아 생산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연계성을 위한 ITT 전용 도로 같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인도로의 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부산항의 서쪽 항로 경쟁력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부산항은 북미로 가는 동쪽 항로에 대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 중심의 서쪽 항로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며 “다행스러운건 현재 부산항만공사가 물류나 해외 투자를 로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서쪽 지역 물류센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항이 단순히 유럽쪽 물류센터 구축에만 그칠게 아니라 터미널 운영까지 직접 개입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항만 영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 홍광의 기자 kehong@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