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당정이 마련한 표준운임제를 두고 국내 컨테이너 운송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컨테이너 운송사들은 화주 처벌조항을 없앤 표준운임제가 본격 도입되면 운송사의 운임 하방압력이 커지고, 화주와 운송사 간 불공정한 계약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수주 산업인 컨테이너화물 운송 시장 특성상 서비스판매자(운수사업자)가 아닌 서비스구매자(화주)의 요구가 가격 결정에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6일 표준운임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표준운임제는 최근 일몰된 안전운임제의 후속작으로, 화물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 수준의 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다. 화물 기사의 과로와 과속, 과적 운행을 막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국내 화물운송업계의 최저임금제라고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기존의 안전운임제와 동일하게 컨테이너, 시멘트 2개 품목에 한정하고 2025년 연말까지 3년 일몰제로 도입된다. 다만 달라진 점은 화주와 운송사 간 운임을 강제하지 않으며, 화물차주의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넘어가면 운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화주는 운송사에 대한 운임 지급의무가 없어지면서 지금보다 더 저렴한 운임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운송사가 차주에게 지급하는 위탁운임 지급의무는 기존과 동일하게 강제하면서 향후 운송사가 벌어들일 수 있는 이윤이 훨씬 적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됐다. 최악의 경우 화주가 최저가 입찰로 위탁운임 전후 수준의 운임을 계속 요구한다면 이윤을 창출해야 할 기업이 원가 보전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게 운송사 측의 주장이다.
운송사들은 수출입 컨테이너 운송에 있어 전문운송사의 업무 처리 없이 운송이 가능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표준운임을 화주에게 강제하지 않으면 화주가 운수사에게 최저가 입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국내 운수사들은 점차 운송전문회사로서의 자격이 축소되고 화물운송시장은 주선·알선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운송사 관계자는 “차주에게 지급하는 위탁운임은 운송사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업비밀”이라며 “운송사 입장에선 영업비밀이 노출되면 결국 원가 경쟁력 약화에 따른 사업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운송업계에 따르면 국내 컨테이너화물 운송시장에서 전체 화물운송운임의 90% 이상은 차주에게 위탁운임형태로 하불되고, 나머지 10% 수준에서 운송사의 몫이 결정된다. 여기서 운송사에게 배분된 10%도 온전히 운송사의 수익이 아니라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들어간 종합운영비용으로 대부분 빠져 나간다.
운송사의 몫은 차주 원가, 차주 소득, 타이어비, 유류비 등 기타 운영 비용과 더불어 운송사 이윤과 원가를 모두 포괄한 개념이다. 안전운임위원회에 따르면 운송사 원가에는 사무실 운영비, 인건비, 각종 인프라 운영비 등이 포함되며, 실질적인 운송사 이윤은 약 1.3%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컨테이너 상하차 장비, 컨테이너 야적장(CY), 섀시, 차량 등 물류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섰던 운송사 입장에선 최소한의 운영원가조차 보존되지 않은 채 극히 적은 수준의 이윤으론 사업을 포기하든지, 축소시켜야 되는 심각한 상황에 놓였다고 하소연했다. 운송사 측은 “사업이 축소되면 중간자 역할을 하는 운송사가 없어지고, 화주/차주가 직접 거래를 해야 하는 빈도가 증가한다”며 “결과적으론 화주의 불편과 비용을 수반하는 관리업무가 추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수출입컨테이너운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운송사들의 사업 축소는 국내 해운업계와 컨테이너 항만과 같이 거대 외국계 자본의 유입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국내 화물운송시장에서 국적 운송사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면 탄탄한 물량과 자본력이 뒷받침이 되는 외국계 선사·물류기업들이 그 자리를 메꿀 수 있다”며 “화물운송시장 정상화가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힘든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운송사 관계자는 “과거 해운업에서 발생했던 한진해운 사태가 국내 화물운송업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국내 화물운송 시장의 구조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국적 운송사들을 궁지로 내몰리게 만드는 표준운임제가 과연 우리나라 수출입 컨테이너 물류시장에 이로울지 정부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컨테이너운송위원회도 최근 “화주 처벌조항을 없앤 표준운임제는 공정성과 형평성이 모두 어긋난 반쪽짜리 운임제도”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위원회 측은 “운송사에게 물량을 의뢰하는 화주가 권고 운임으로 가격 결정권을 돌려주고, 협상력 열세인 컨테이너 운수사에겐 국가에서 정한 가격을 강제하는 식의 선택적 시장경제논리가 작용한다”고 표준운임제를 비판했다.
반면 표준운임제 도입을 적극 찬성하는 화주 측은 경제협력기구(OECD) 주요국 중 화물운송운임을 강제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나라 운송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국무역협회(KITA)는 8일 낸 보도자료에서 OECD 38개국 중 중앙정부 차원에서 화물운송운임을 강제하는 국가는 없다고 발표했다. 협회 측은 “미국과 영국은 운임을 시장 자율에 맡기고 있다”며 “프랑스,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은 화물 운임을 강제성 없는 참고 운임의 형태로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캐나다 호주 등 일부 국가의 지방 정부에선 자체적으로 표준운임제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화주가 아닌 화물운송회사가 지급해야 할 운임의 최저기준을 규정하는 등 국내 제도와는 엄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에 운송업계는 “국내 화물운송시장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화물차 기사들이 대부분 자영업자인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 없는 화주-운송사-차주 형태의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어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게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반박해 새로운 제도를 두고 정부·운송사·화주 간 갈등이 이어질 전망이다.
표준운임제가 포함된 정부의 개편안을 두고 운송사뿐 아니라 화물연대 측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화물연대 측이 반대하는 주된 이유도 앞서 운송사가 주장했던 내용과 궤를 같이 했다. 새롭게 도입된 표준운임제에서 화주와 운송사 간 운임을 강제하지 않고 자율로 두게 되면 향후 운송사가 떠안게 될 운임 하방 압력이 결국 차주에게 전가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화물연대 측은 “표준운임제가 도입되면 다수의 운송사가 경영 위기를 처하게 되며, 결국엔 화물 차주의 임금 환경이 더 열악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 홍광의 기자 keho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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