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사고에 대응하는 보험상품인 선주배상책임보험(P&I보험) 요율이 큰 폭으로 인상돼 선사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선사들은 올해 P&I 보험료가 20% 안팎으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에 따르면 선주배상책임보험 카르텔인 P&I보험조합국제그룹(IG P&I)은 오는 2월20일 이후 적용되는 2022년도 보험료를 10~15% 일괄인상(GI)하는 한편 추가로 재보험요율을 평균 33% 올리기로 결정했다. 선박 대형화로 사고 규모가 커진 데다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재보험시장 환경이 악화한 게 보험료 인상의 배경이 됐다.
IG클럽 재보험요율은 최근 몇 년간 하락세를 띠다 재보험 시장의 환경 악화 등으로, 지난해 1.4% 상승한 뒤 새해 들어 급격히 치솟았다. IG클럽은 이 같은 인상으로 2022년 재보험요율은 2014년 요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상승한다고 말했다.
선종별 재보험료 인상률은 컨테이너선에서 가장 높게 책정됐다. 지난해 3월 수에즈운하에서 2만TEU급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좌초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IG클럽은 2022년 컨테이너선 재보험료를 5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t(총톤)당 재보험료는 기존 0.42달러에서 0.65달러로 0.23달러 인상된다. 또 벌크선과 정유운반선은 각각 40% 오른 0.56달러 0.37달러, 여객선은 18.6% 오른 3.87달러, 원유운반선은 15% 오른 0.65달러가 적용된다. 임차한 탱크선과 벌크선엔 각각 33% 오른 0.29달러 0.14달러의 재보험료가 부과된다.
<골든레이>호 사고 배상액 1조 달해
IG클럽은 해상오염과 화물피해를 담보하는 P&I보험의 배상을 크게 3가지 방식으로 나눠 진행한다.
1000만달러 미만 해상사고는 해당 보험조합에서 자체 부담하고, 1000만달러에서 1억달러 사이의 청구금액은 IG에 가입한 13곳의 회원사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풀클레임 방식으로 대응한다. 또 1억달러를 넘어서는 초대형 클레임은 재보험사에서 배상책임을 인수한다.
지난 몇 년 새 발생한 해난사고 중 재보험료 인상의 원인이 된 배상액 1억달러 이상의 대형사고는 크게 3건 정도다.
2019년 9월 미국 조지아주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7700대급 자동차선 <골든레이>호 전복사고와 2020년 7월 모리셔스 해상에서 일어난 20만t(재화중량톤)급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와카시오> 좌초사고,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에버기븐>호 좌초사고 등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골든레이>호의 손해배상청구(클레임) 금액은 최대 8억4200만달러(약 1조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15억달러의 보험금이 집행된 <코스타콩코르디아> 좌초사고 이후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에버기븐>호의 경우 이집트 수에즈운하청에서 사고 초기 9억1600만달러를 요구했던 배상액을 5억5000만달러(약 6500억원)로 낮췄다. 모리셔스 해상에 1000t의 기름을 유출한 <와카시오>호의 손해배상 청구금액 규모는 4억7800만달러(약 5700억원) 안팎으로 집계된다.
사고 당시 <골든레이>는 영국 노스오브잉글랜드(NOE), <와카시오>는 일본 JP&I, <에버기븐>은 영국 UK P&I에 각각 가입해 있었다.
P&I 보험료가 크게 오르면서 대부분의 선박을 IG클럽에 가입한 국내 대형 선사들의 부담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IG클럽의 국내 해운시장 점유율은 내항선박을 포함해 67%(보험료 기준)에 이른다.
재보험료 인상 폭이 가장 큰 컨테이너선이 주력인 HMM은 올 한 해 20% 정도의 보험료 인상 부담을 떠안게 됐다. 특히 이 회사 전체 선단의 75%를 차지하는 컨테이너선 재보험료는 17억원가량 늘어난다. 최근 인수한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6000TEU급 8척 등 초대형선 시리즈 20척에서 11억원 안팎의 인상분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팬오션은 올해 P&I보험료가 11% 인상되면서 13억원 정도를 추가로 지출하게 됐다. 이 밖에 폴라리스쉬핑과 SK해운도 보험료 인상률이 25%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KP&I는 재보험료 동결
IG클럽은 영국 노스오브잉글랜드 런던P&I 브리태니어 스탠더드 스팀십뮤추얼 십오너스 웨스트오브잉글랜드 UKP&I 8곳, 노르웨이 가르(Gard) 스컬드 2곳을 비롯해 스웨덴 스웨디시클럽, 미국 아메리칸클럽, 일본선주책임상호보험(JP&I) 등 총 13곳의 보험사로 구성돼 있다. 상호보험료(Mutual call) 방식을 채택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올해처럼 조합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반면 고정보험료(Fixed Call) 체계인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은 일괄인상 외에 별도의 재보험료 인상은 실시하지 않는다.
P&I업계 관계자는 “대형사고 3건 중 P&I 배상액만 8억달러 안팎인 <골든레이>호가 이번 보험료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컨테이너선은 <에버기븐>호 사고에서 보듯 대형화로 사고위험이 크게 높아진 게 다른 선종에 비해 재보험료 인상률이 가장 커진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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