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이집트 수에즈운하에서 발생한 2만TEU급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좌초 사고로 갈등을 빚고 있는 수에즈운하청(SCA)과 일본 쇼에이기센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수에즈운하청은 손해배상 비용 청구 소송을 맡은 이집트 이스마일리아 1심 경제법원이 재판 심리를 이달 20일까지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주 측이 제출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운하청 입장이 재판 연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법원 결정을 두고 운하청과 선주사가 합의 협상을 벌일 수 있도록 시간을 준 거란 해석도 나온다. SCA가 재판과 별도로 합의안을 제시한 게 이 같은 해석의 근거다.
SCA는 지난 4월 선박 구조작업 비용 3억달러와 평판훼손비용 3억달러 등 총 9억1600만달러(약 1조400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금액을 선주 측에 청구하는 한편 이집트당국에 요청해 선박을 압류했다.
그러면서 피해 금액을 낮춰 부르면서 합의도 시도하고 있다. 오사마 라비 SCA 청장은 “법정 밖에서 손해배상 금액보다 40% 낮은 5억5000만달러(약 6100억원)에 합의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라비 청장은 사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일부 주장은 일축했다. “선박 운항지휘의 최종 책임은 도선사가 아닌 선장에게 있고 악천후에 선박을 통과 시켜 사고가 났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수에즈운하 항법시스템은 악천후에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며 “사고 당일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SCA는 지난달 28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에버기븐>호 구조 작업 영상을 올리고 선박을 구조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선박의 과실을 부각해 합의 과정에서 우위에 서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영상엔 15척의 예인선과 600명의 인력이 투입돼 뱃머리 부분이 박혀 있던 운하 강변(江邊)을 준설해 이초(좌초에서 벗어남)하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사고 직후 공동해손(GA)을 선언하고 사고 비용 처리를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던 선주사 쇼에이기센이 SCA의 제안을 수락할지는 미지수다.
과거 1만5000TEU급 <머스크호남>호가 2018년 3월6일 싱가포르에서 수에즈로 항해하다 화재가 났을 때 공동해손으로 사고를 처리한 사례가 있다. 최근 싱가포르 선사 익스프레스피더스도 스리랑카 해안에서 발생한 자사 선박 화재사고에 공동해손을 선언했다.
다만 선주사 측이 합의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사고선박의 보험을 담당하고 있는 UK P&I는 지난 3일 SCA가 손해배상 금액을 5억5000만달러로 낮춘 것을 두고 “이 사건 시작부터 선주사와 보험사는 우호적이고 공정하게 문제를 가능한 빨리 종결지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한편으로 사고 원인이 선장 실수 또는 과속에 있다는 운하청 주장엔 “선박 운항의 최종 책임은 선장에게 있지만 운하를 통과할 때 선박 조종과 호송은 도선사와 SCA에서 통제한다”고 재반박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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