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운하 좌초 사고를 낸 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호의 억류 기간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박이 가입한 선주책임보험(P&I) 회사인 영국 UK P&I에 따르면 이집트 이스마일리아 법원은 선박 소유주인 일본 쇼에이기센이 제기한 압류 해제 청구를 기각했다. 이집트 해운당국은 지난달 13일 수에즈운하청(SCA)의 요청을 받아들여 <에버기븐>호를 압류 조치했다.
SCA는 선주인 쇼에이기센과 보험사가 제시한 합의안을 거부하고 피해금액으로 9억1600만달러(약 1조400억원)를 청구했다. 금액엔 선박의 구조작업 성공보수 3억달러와 평판훼손 비용 3억달러가 포함됐다.
선주인 쇼에이기센은 이 같은 요구에 반발했다. “SCA가 충분한 근거 없이 피해액을 산정했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공동해손(GA)을 선언했다. 선박 이초(離礁·좌초에서 벗어남)에 들어간 구조비용은 규정 범위에서 처리하겠다고 맞섰다.
공동해손은 해난 사고를 당한 선박과 화물이 공동으로 피해금액을 분담하는 제도다. 공동해손이 성립하려면 ▲복수의 항해단체가 존재할 것 ▲공동위험이 현실적으로 절박할 것 ▲처분이 공동의 안전을 위하고 합리적이고 고의적인 행위일 것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과거 1만5000TEU급 <머스크호남>호가 2018년 3월6일 싱가포르에서 수에즈로 항해하다 화재가 났을 때 선주가 공동해손을 선언했다.
하지만 화주가 다수인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공동해손 절차가 까다로워 사고를 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에선 공동해손이 받아들여진다면 <에버기븐>호 사고처리를 마무리하는 데 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협상이 결렬되자 SCA는 피해 정산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고선박을 이집트 내에 억류하겠다고 통보하고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쇼에이기센은 같은 달 22일 재판소에 불복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집트 법원은 지난 4일 선주의 불복 신청을 기각하면서 SCA가 청구한 1조원이 넘는 피해금액을 모두 지불해야 선박과 화물을 되돌려줄 수 있다는 당초 명령을 유지했다. 현재 <에버기븐>호엔 인도인 선원 25명이 승선 중이다.
사고선박의 보험을 담당하고 있는 UK P&I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수에즈운하청과 성실히 협상을 계속할 계획”이라며 “이것은 클럽의 우선 사항이고 선박과 그 화물, 선원들이 예정했던 항해를 계속할 수 있도록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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