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0 16:09

더 세월(66)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58. 가족이라는 것


두 가정이 주말을 맞이하여 남이섬으로 캠핑을 나섰다. 서정민 가족과 이순정 가족이다. 캠핑은 그들에게 무척 낯선 일이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자율캠핑의 기회라 아이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중형 SUV에는 서정민과 두 아들 준호 준서가 타고, 소형 벤츠에는 이순정과 조카 홍소라가 탔다. 그들은 북한강 주변 경치를 즐기며 남이섬으로 향했다. 아침 시간인데도 머리 위 드문드문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이 유월의 따뜻한 햇살에 빛났다.

서정민 삼부자는 차 안에서 모처럼 다정한 대화를 나눴다. 운전을 하는 서정민은 두 아들을 룸미러로 보며 그들의 표정을 자상하게 관찰했다. 동생 준서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질문을 던졌다.

“준서는 아직 고2라 다행이구나. 내년에 고3 되면 많이 바쁘겠네.”

“앞으로는 대학입시가 달라진대요. 야외활동이나 가족모임에 적극적이면 내신이 좋아진대요. 대학은 많지만 지원자가 줄어들어 입시도 쉬워지고요.”

“뒤의 말은 필요 없지 않은가. 입시가 쉬워지고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해도 공부는 해둬야 하는 거야. 지금의 학생이 어른들보다 지능지수가 낮다는 거 들어봤지? 이유가 뭘까?” 

“머리를 적게 쓰기 때문이겠지요. 한국은 아니잖아요.” 

“어쨌든 유럽이 그런 경향이야.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 대표도 명문대 들어갔더구나. 즐기며 공부를 했다지.”

대화를 듣기만 하던 준호가 화제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 서정민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준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준호는 대학에서 원자력공학을 배우는 게 맘에 들어?” 

“아직은 교양과목 위주지만 전공과목으로 들어가면 고민 좀 될 것 같아요. 환경 분야가 워낙 까다로워서요.”

“미세먼지 해결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방사능보다 더 심각해. 더러우면 피하면 되는데 미세먼지는 피할 곳이 없다는 게 문제야.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원전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듯한데 지금 원전을 폐쇄한다고 해서 걱정이구나.”

“학내 토론회에선 전기료 충격을 줄이면서 원전을 서서히 줄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어요.”

“원전 해외수출은 권장하고 국내 사용은 중지하면 너희 전공은 무용지물이 되는 거 아냐?”

“아빠의 걱정을 덜 만한 방법이 나올 거예요. 원자력을 더 안전하고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법을 찾아야죠. 그땐 원전을 피할 이유가 없죠.”

“그건 듣기에 나쁘지 않군.”

그러곤 아들들에게 파이팅을 제안했다. 삼부자의 외침에 차는 마치 방지턱을 넘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그 시각 다른 차에 탄 이순정과 조카 홍소라도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모의 눈에는 엄마를 잃고도 씩씩하게 생활하는 조카 소라가 예쁘면서도 때로는 불쌍했다.

“소라는 이모랑 계속 함께 살 수 있지? 가령 이모가 시집간다든지 해도?”

소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진지하게 말했다.

“난 이모와 같이 살 거야. 근데 이몬 시집가는 거야?”

“만약 간다면, 하는 말이지.”

“시집가지 마. 이모가 시집간다면 난 이모 따라 갈 거야.” 

“준호오빠네 아빠 어때? 서 사장님 말야.”

“그 아저씨랑 결혼하는 거야?” “만약에….” 

이순정은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그럴 경우 준호, 준서 오빠완 잘 지낼 수 있겠어?”

“왜 오빠들과 함께 살아야 해?”

이 질문에는 이순정이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을 돌보는 게 자신의 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대답을 머뭇거리자 소라가 말했다.

“그럼 오빠들과 같이 사는 거네. 걱정하지 마. 우린 잘 지낼 수 있어.”

“그래? 알았어. 지금 이야기는 모두 만약, 만약이야. 알았지?”

두 가족은 자주 만나 식사를 하며 서로의 집을 왕래하기도 했지만 캠핑을 함께하는 건 처음이다. 아이들에게 신선한 경험이면서 두 가족이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해 이순정이 아이디어를 냈다.

사고 후 4년의 세월이 지나다 보니 서정민의 아들도 이순애의 딸도 몰라볼 만큼 훌쩍 컸다. 서정민의 장남 준호는 어느새 대학에 들어갔고, 차남 준서는 고2, 이순애의 딸 홍소라는 중3이 됐다. 신체적으로는 소라마저 어른이 된 느낌이다.

대화하는 사이 어느덧 차는 남이섬에 도착했다. 남이섬은 원래 섬이 아니라 높은 구릉이었다. 청평호가 건설되면서 자연스레 북한강 안에 갇힌 섬이 돼버리고 말았다. 일행은 메타세쿼이아 숲을 지나 '겨울연가' 포토존으로 향했다.

서정민과 이순정이 나란히 숲을 거닐 때 뒤에서 찰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남 준호가 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러곤 카톡으로 이순정에게 전송했다. 오붓한 예비부부의 뒷모습 사진을 본 서정민과 이순정은 흡족해 하면서 준호의 재치에 고마워했다.

겨울연가 포토존 앞에서 아이들이 멈춰 섰다. 준서가 소라의 손을 잡으며 함께 찍자고 한다. 오늘만큼은 어린 소라도 어른 배우 같은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소라가 최지우 언니보다 더 예뻐.”

이모 이순정이 칭찬하자 소라는 더 예쁜 포즈를 취한다.

캠핑 텐트를 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준호와 준서가 교회 야외수련회에서 텐트 치는 법을 배웠다고 하면서 나서서 열심히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보아 하니 플라이, 루프, 폴대, 펙을 만지는 게 능수능란하다.

두 개의 텐트가 완성됐다. 완성된 한 텐트 안에서 서정민과 이순정이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 두 가정을 한 가정으로 합치는 것을 의논했다.

둘은 긴 얘기 끝에 가정을 하나로 합치는 게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서정민은 이순애의 딸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의 동생 이순정이 자신의 배우자가 되는 마당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잘살 수 있겠지?” 

두 사람이 커피잔을 들고 있을 때 서정민이 말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이 더 빛난다고 하잖아요.”

“바람을 많이 받은 나무가 뿌리가 깊다고도 하지.”

남자도 예비 신부의 말에 호응했다. 최고의 바이올린 재료는 로키산맥 정상에서 온갖 풍상을 겪은 나무에서 나온다는 말도 했다. 이순정은 급류의 강을 건너는 사람은 어깨에 돌을 메고 간다는 이야기를 예를 들며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다른 텐트에선 아이들 셋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의 관심은 우연히 인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에 모아졌다. 방탄소년단은 결성 5년 만인 지난 5월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로 컴백해 미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쇼케이스를 열었다.

빌보드어워드에서 톱 소셜아티스트 상을 2년 연속 받은 세계 최고의 아이돌그룹은 트로피를 높이 치켜들고 팬클럽인 전 세계 아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LOVE YOURSELF 轉 Tear 앨범이 빌보드200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

동생 준서가 내용을 잘 아는 체했다.

“전 Tear 뜻이 뭐예요?”

소라가 물었다. 설명은 형 준호가 해주었다.

“앞의 두 앨범이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기와 승이었다면 이번 3집은 전이 되는 거야.”

방탄소년단이 성공한 이유는 진정성과 SNS 확산력이었다. N포세대의 열정페이, 수저계급, 청춘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 10대의 시선을 잡았다. 성장하면서 느낀 왕따, 자살 등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한 게 청소년 팬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방탄소년단 뜻이 궁금하지 않아?”

준호가 물었다.

“뭔데?”

소라가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하다.

“편견과 억압의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이래. 멋있지 않아?”

준호가 말하자 준서가 3집에 실린 노래의 의미를 설명했다.

“전(轉)이 구른다는 뜻이잖아. 온 힘을 다해 구르다 넘어져 눈물 흘리고 나 자신은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도 느끼다가 점점 성장해 간다는 의미래.” 

'FAKE LOVE'란 곡처럼 슬퍼도 기쁜 척하면서 뇌와 심장의 잠재력을 발휘할 준비를 하는 젊은이가 돼야 한다고 준호는 대학생답게 동생들에게 곡을 설명해줬다.

이튿날 아침 한 텐트에서 서정민과 두 아들이 나왔고, 다른 텐트에선 이순정과 조카 소라가 나왔다. 쾌속보트를 함께 타본 두 가족은 앞으로 한 집에서 살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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