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5 16:07

더 세월(58)

저자 성용경
50. 진실 공방(2)


자로 교수는 세월호와 잠수함이 충돌했다고 주장해 인터넷에서 파란을 일으켰으나 세월호가 육상에 거치된 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는 인양 전까지 계속해서 SNS에 글을 올리다가 선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활동을 중단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세월호를 똑바로 세워 좌현을 보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것은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해경 무선 기록과 레이더에 찍힌 괴물은 뭔가?”

해군은 반박했다. “당일 잠수함은 없었다. 맹골수도는 평균 수심이 37미터로, 안전 수심 50미터를 훨씬 못 미치기 때문에 잠수함이 이곳을 항행하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외부 충격설이 아니어도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계속됐다.

- 선원들이 승객퇴선 명령을 않고 탈출했나?

- 해경123정은 왜 결정적인 순간 구조를 중지했나?

- 마지막 119 신고전화 기록은 사라진 건가?

- 인천해경이 가장 먼저 사고를 인지했나?

- 승객들에게 선내 대기 방송을 10번 이상 했나?

- 해경 AIS에 뜬 수상한 이동 표시는 뭔가?

- 사고 직후 1항사와 국정원이 통화한 이유는?

- 세월호는 제주 해군 기지 철근을 운반했나?

바닥과 맞닿은 세월호 좌현에는 커다란 파공이 나 있다. 이걸 두고도 논쟁이 벌어졌다. 20여 개의 파공은 인양 과정 때 삽입한 리프팅 빔 사이에 과도한 하중이 가해지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외부 충돌의 근거라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양 과정에서 생긴 파공과 충돌로 인한 파공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법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았다.

“누더기가 된 상태로 인양됐으니 알 수 없죠.”

선체만 보면 짜증이 나서 서정민이 선조위 선배에게 따진 적이 있다.

이렇듯 세월호 침몰 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책임자를 열거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명박과 박근혜를 욕하고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을 욕한들 죽은 자식이 살아오랴. 국회의원에게 수난구호법을 왜 만들었냐고 따진들 무엇 하랴. 그렇다고 오보를 한 언론사에 책임을 묻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실종자 수색작업도 실망스러웠다. 구조 잠수횟수는 1,253회에 이르렀으나 결과는 미약했다. 세월호 격실이 너무 열악했고 조속(潮速)은 4킬로노트(안전 조류 1킬로노트)로, 잠수에 악조건이었다.

주검이 나올 때마다 잠수부는 주검 앞에 “이제 집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예를 갖추곤 했다. 

“이 인사를 받은 주검이 많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유가족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선체 인양 결과 깨진 창문을 막으려고 설치한다던 차단봉과 그물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물망 대신 진흙만이 선체를 뒤덮고 있었다. 유실 대비를 한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부의 방치 속에 얼마나 많은 진실의 조각들이 사라졌을까. 사고 당시 야간 880개 조명탄을 터뜨리고, 수십 척의 오징어 채낚기선이 불을 밝히며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진실은 어두운 바닷속으로 묻혀버렸다.

2014년 4월 15일 저녁 9시 세월호는 출항했다. 인천-제주 간 264해리를 19노트의 속도로 13시간 30분간 항해할 계획이었다. 화물적재는 두 배 이상 초과한 상태. 당시 긴박한 순간에 일어난 주요 상황을 다시 기술해 본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물잔이 쓱 밀려나갔다. 선장도 기어 다녔다. 8시 52분 첫 번째 선내 안내방송이 나갔다. “안전봉을 잡고 가만히 있으라.” 승객들은 119 전화로 구조 요청을 했다. 8시 55분 기관장은 선원이 아닌 기관원 전원 탈출을 지시했다. 8시 58분 해경 본청이 세월호 침몰을 인지했다. 

9시 14분 비상발전기 정지와 동시에 형광등이 꺼지고 비상등이 켜졌다. 9시 17분 목포해경 헬기가 떴다. 9시 19분 YTN 첫 속보가 나갔다. 9시 26분 해경511헬기 도착했다. 선체가 45도 기울었다. 9시 34분 해경123정이 사고해역에 도착했다. 당시 선박 경사는 50도였다. 

“승객들은 갑판으로 다 나오세요!” 해경123정은 대공 마이크나 메가폰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육성으로도 외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이들이 갑판에 다 나와 있는 줄 알았다는 납득하기 힘든 해명이 돌아왔다. 그러고도 9시 39분께 해경은 육상 경찰서에 전부 구조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전행정부가 해경 본청에 전화했다. “구조는 문제없어요?” “인근 배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9시 40분 선체는 55도 기울었다. 선장이 팬티차림으로 탈출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 선장 탈출 후에도 마지막 안내방송은 그렇게 나갔다. 9시 52분 선체는 61도 기울었다. 3층 로비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소리친다. “물이 찬다. 배가 잠기고 있어. 얘들아 조용히 해.” 

9시 58분 해경 간부는 부하 직원에게 선박 점검이 됐는지 은밀하게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사후 책임 추궁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참사라는 것은 모든 게 잘못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졌다면 일어나지 않는다. 세월호는 마치 사고가 꼭 나야만 하는 정황 같았다.

9시 59분 목포해경이 123정에 전화하여 근처 어선이 많으므로 승객들에게 그대로 뛰어내리도록 하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123정은 침몰선 쪽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와류가 심했기 때문이란다. 승객들이 배에서 뛰어내려도 구조해줄 배는 근처에 없었던 셈이다.

헬기에서 항공구조사 4명이 선체에 내려가 있었으나 그들 중 누구도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장비가 없어서였다는 게 훗날 밝혀졌다. 훈련이 몸에 배어 있었더라면 장비를 으레 챙겼을 것이고 장비가 없더라도 배 안으로 들어가 한 사람이라도 구했을 것이다. 학생들은 가만히 있었고 구조대원들은 나오기만 기다렸다. 이 무슨 조화인가. 해경123정에 총 13명. 헬기 3대에 총 16명. 총 30명가량의 해경 공무원이 갔다. 그 중 단 한 명도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어업지도선과 민간어선이 속속 현장에 도착해 구조 현장 인력은 충분했다. 그 시각 배 안에는 400명의 학생과 일반인이 타고 있었다. 10시 6분 선박에 물이 차오른 S1객실 창문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두 명의 해경이 지주봉과 망치로 내려쳤지만 유리를 깨지 못했다. 강화유리는 모서리를 타격하면 쉽게 깨지는데 해경은 그걸 몰랐다. 세월호 선원이 더 큰 망치로 창문을 깼다.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모두 7명이 구조됐다. 배는 73도로 기울었다. 

10시 15분 분당 5도씩 기울던 배는 이제 침몰해 가고 있었다. 10시 17분 배의 마지막 메시지는 “조금 더 기울었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배의 경사는 108도였다. 10시 18분 해경123정은 어선들을 향해 구조를 멈추고 철수하라고 했다. 

해경의 철수 명령에도 민간어선은 세월호에 기어오르다시피 배를 댔다. 세월호 우현 난간에서 10명의 생존자가 나왔다. 아직 잠기지 않은 4층 B9객실 안에서는 누군가 연거푸 사다리를 던졌다. 바깥에선 쇠망치도 있겠다, 로프도 있겠다, 구조요원들이 배 위에 있었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팔짱만 끼고 있단 말인가. 방송으로 구조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한 사람도 피해 없도록 하라.” 국가안보실의 부르짖음만 메아리쳤다.

10시 30분 세월호는 병풍도 북방 3.5마일 해역에서 선수만 남긴 채 가라앉았다. 

정말 골든타임 101분 동안 300여명의 승객들을 살릴 수 없었나? 서정민과 이순정은 정리된 기록을 보며 가슴을 쳤다. 그나마 어버이날 이팔봉 회장의 선언적 결혼 승낙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예식을 올리기 전까지는 같은 침대를 쓰지 않기로 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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