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해상사고에 관한 손해배상청구는 용선계약, 해상물품운송계약, 선하증권계약 등 계약관계에 근거한 계약적 청구와 선박충돌, 유류오염 등 계약관계가 없는 제3자에 대한 비계약적 청구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계약당사자간에도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며 해상운송의 특성상 각종 용선계약의 존재 및 선하증권의 발행, 이전 등이 혼재해 계약당사자인 운송인의 특정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계약적 청구에 있어서도 해상운송인의 면책여부를 논하기 위해는 채무불이행책임 이외에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의 존부 및 요건을 검토해야 한다.
한편, 우리 상법은 민법상의 과실주의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과실의 종류를 상사과실과 항해과실로 구분해 후자의 경우에는 책임을 면제하도록 하고 있으며, 선박화재로 인한 면책 및 해상위험 등의 개별면책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종전에는 항해과실 등의 면책사유로 인해 운송인의 면책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채권자는 민법상의 사용자책임 등 불법행위책임을 주장해 면책을 회피할 여지가 있었으나, 현행상법하에서는 운송인의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하기 위해도 그것이 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법정면책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이론이 없다.
II. 선박화재면책
1. 의의
선박화재는 상법상 그것이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화재가 아닌 한 운송인이 면책되므로(상법 제795조 2항 단서 참조) 해상운송인의 법정면책사유에 해당한다.
선박화재 면책을 인정하는 것은 선박에서의 화재는 거액의 손해를 야기하고 과실의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운송인에게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가혹하다는 데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2. 요건
운송인에게 화재 면책이 인정되기 위해는 1) 화재가 있어야 하고, 2)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사고가 아니어야 하며, 3)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화재가 아니어야 한다.
여기서 화재는 법조문 문언상 선상의 화재로 제한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운송물의 운송에 사용된 선박 안에 발화원인이 있는 화재 또는 직접 그 선박 안에서 발생한 선상의 화재뿐만 아니라 육상이나 인접한 다른 선박 등 외부에서 발화해 당해 선박으로 옮겨 붙은 화재는 물론 육상의 화재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법원도 같은 입장에서 판결한 바 있다(대법원 2002년 12월10일 2002다39364판결).
그러나, 불꽃이 없는 단순한 열이나 폭발은 포함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또한 여기서 화재면책 제외사유인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의 주체인 운송인은 상법이 제795조 제2항 본문에서는 운송인 외에 선장, 해원, 도선사 기타의 선박사용인을 명시해 규정하고, 제795조 제1항 및 제794조에서도 각 자기 또는 선원 기타의 선박사용인을 명시해 규정하고 있는 점과 화재로 인한 손해에 관한 면책제도의 존재이유에 비추어 볼 때, 그 문언대로 운송인 자신 또는 이에 준하는 정도의 직책을 가진자 만을 의미하고 선원 기타 선박사용인 등의 고의 또는 과실은 여기서의 면책 제외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2년 12월10일 2002다39364 판결).
운송인이 법인인 경우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해석론과 마찬가지로 소위 분신이론(alter ego doctrime)에 따라 누가 법인에서 결정권을 가진자(directing mind)였는지를 기준으로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3. 입증책임의 문제
화재면책 제외사유인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의 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에 관해는 입증책임이 운송인에게 있다는 견해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송하인(청구인)에게 있다는 견해가 나뉘며, 후자의 견해에 입각한 하급심 판결이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6년 11월1일 선고 2005가단277219 판결).
법해석론상으로는 위 제외사유가 단서조항으로 규정돼 있으므로 그 적용을 주장하는 송하인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후자의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의 존부는 사안에 따라 모든 사정을 종합해 인정되는 사실관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화재면책은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므로 운송물에 관한 주의의무(상사과실)에 관해 운송인이 무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법해석과의 균형을 고려할 때 이러한 입증책임의 법리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무상으로도 선박화재에 대해 면책이 인정된 예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운송인 자신의 과실(상사과실)이나 감항능력주의의무 위반없이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를 상정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상운송구간에서 운송물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운송물에 관한 주의의무(상사과실)에 대해는 해상운송인이 스스로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운송인에게 부과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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