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은 물에 떠 있는 사람만 구하고 전복된 배 안으로 진입하여 갇혀 있는 승객들은 구하지 않았다.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막 구조되어 해경보트에 오른 서정민은 해경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9.11사태 때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미 소방대원이 있지 않았던가. 승객 구조에 힘이 다 빠져버린 서정민이었지만 해경의 행동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따졌다.
“떠 있는 사람만 건질 게 아니라 배 안으로 들어갔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들은 구조대원이지 잠수대원은 아닙니다.”
해경의 사무적 답변에 서정민의 목소리는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 물불을 가려야겠냐고요?”
“저희들에겐 매뉴얼이 있고, 또 규칙대로 행동했습니다.”
옆에 있는 해경 간부가 대화를 나누는 부하 해경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 승객은 깐깐한 사람 같으니 가만히 있어라’라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간부가 직접 나섰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저희들이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매뉴얼에 없는 행동은 문책의 사유가 됩니다. 고무줄처럼 조절할 수 없는 게 저희들 위칩니다.”
이런 개불알 같은 말이 어디 있어.
서정민은 흥분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따지는 승객의 카멜레온 같은 얼굴빛을 보았는지 해경 간부는 서정민을 조용히 옆으로 불러 설명해 나갔다. 다른 승객이 듣지 않도록. 물론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승객들이 대화에 관심을 둘 리도 없지만.
미국해안경비대(USCG)도 현장에 투입하는 모든 선박마다 다이버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이버가 없는 경우 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게 간부의 설명이다.
서정민은 현장의 위급성을 감안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항공기와 구조선박 도착이 늦은 건 사실이 아닌가요?”
해경 헬기는 사고 30분 후 현장에 도착했고, 경비정은 그로부터 5분 후 도착했다. 빠르다고 할 수 없으니 비판 받을 만하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정작 필요한 해경 122구조대는 전용헬기가 없어 두 시간 뒤 현장에 도착한 걸로 기록됐다. 해경 간부는 이를 의식한 듯 말했다.
“USCG는 선박은 2시간 이내 현장에 도착하도록 하고, 항공기는 30분 내에 이륙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해경도 규정상으로는 위반한 것이 없는 셈이지요.”
“규정이라는 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만든 거 아닙니까. 어떻게 책임회피용으로 말할 수 있나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들 입장이 곤란합니다. 혹시 선생님의 직업이?”
“그건 왜? 해운물류회사 사장이요. 선장을 해본 사람이어서 답답해서 그럽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선장에게 있다는 사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선장이 돌발 상황에 멘붕 상태가 됐어도 그렇게 지휘하는 건 아니죠. 사명감과 책임감을 내팽개쳐서 이런 결과가 된 거 아녀요? 해경도 배 안으로 대원을 진입시켰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고요. 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든 겁니다. 아, 못 참아!”
한국 사람은 목숨 걸고 말한다. 산이 많고 반도로 돼 있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환경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선생님은 조난자십니다. 안정하셔야 합니다.”
서정민이 뒷골을 만지면서 넘어지려하자 해경이 그를 부축했다.
경비정은 불법어선단속, 해상치안유지, 해양오염방지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해경이 수사에 너무 치중한다는 비난을 받지만 수사인력은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
해경의 활동 중에 인명구조도 있다. 특히 세월호의 경우에는 특수훈련을 받고 전문장비를 갖춘 구조대원들이 진입할 필요가 있었다. 육상에서 관광버스가 절벽에 떨어지면 경찰관은 초기 현장에서 부상자를 수습하고, 이후 기중기나 로프 등을 동원한 전문 구조대가 절벽 밑으로 내려가 수습하는 것과 같다.
이런 진입상황을 예측 못하고 평소 훈련과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경비정에서 조난선에 밧줄을 던져 선내 진입을 했더라면 적어도 실종자의 반 이상은 살렸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생각하면 서정민은 솟구치는 울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잠수부가 아니라서 못 들어간다? 구조대원은 무조건 잠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특수대원이지요. 어떤 경우도 생명보다 법이 더 중요할 순 없습니다.”
부축을 받으면서도 서정민은 할 말을 다 했다.
“법이 중요하다는 소크라테스도 있었잖습니까.”
“해경 양반, 아고라 토론방에서 농담하자는 건가?”
서정민은 자신이 너무 흥분하는 것 같아서, “신속히 구조하는 것과 규정을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요.” 톤을 낮췄다.
“구조요원이 선내 진입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해경 간부는 강조하면서 말을 이었다.
“배의 내부구조를 알 수 없고 언제 뒤집힐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미국 9.11사태 때도 무모한 진입 지시로 소방대원 30명 전원이 사망했잖습니까.”
간부는 끝말에서 힘을 주었다. 그는 토론에서 자신이 이긴 것처럼 가슴을 젖히기도 했다. 그러나 서정민이 고스란히 수긍할 사람이 아니다.
“세월호의 경우는 화염에 싸인 빌딩이 아니잖아요. 밧줄을 타고 배 안으로 들어가면 배가 침몰해도 빠져 나오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훈련을 하지 않아 못한 것뿐입니다.”
첫날은 그렇게 구조작업이 마무리됐다. 이튿날 저녁에서야 실종자 수중수색을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됐다.
구조에서 지휘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은 2009년 미국 비행기의 허드슨강 비상착륙의 예에서 잘 나타난다. 기장의 요구대로 번호를 외치며 나온 승객들은 비행기 양 날개로 균형을 맞춰 탈출했다. 사고 접수 후 단 3분 만에 도착한 구조선과 헬기, 한 시간 만에 155명 전원 구조에 성공했다.
지휘자의 사고 대처능력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배짱과 자신감인 ‘이성적 사고’와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인 ‘이상적 자질’이라고 서정민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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