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행되는 세계해사기구(IMO)의 선박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국내 해운산업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제 9회 마리타임코리아포럼에서 한국선급 천강우 그린쉽기자재시험인증센터장은 “환경 규제를 앞두고 외국 정부가 자국선사 보호를 위해 정책적인 해법을 도입하고 각종 금융지원에 힘쓰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해운기업들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천 센터장은 1990년대 교역량 증가로 해운과 조선산업이 동반 급성장하면서 선박 속도 경쟁이 점화됐고 2000년대엔 선박 대형화를 배경으로 하는 규모의 경쟁이 해운업계의 흐름이 됐다면 앞으로는 강화되는 환경 규제 대응이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규모의 경쟁으로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가속화한 해운업계에 환경 규제는 산업 기반을 뒤흔드는 메가톤급 영향력을 발휘할 거란 예상이다.
외국정부, 발빠른 대응으로 자국선사 지원
외국 해운선진국들은 반년 앞으로 다가온 환경 규제에 대응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선사와 정유사 합동으로 저유황유의 안정적인 공급 방안과 운임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스위스는 세계 2위 선사인 자국 MSC를 지원하기 위해 4400억원 가량의 자금 공급을 승인했다. 덴마크와 프랑스 등도 스크러버 설치 비용 부담을 경감하는 각종 금융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황산화물 저감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하는 선사에게 설치비를 저리 대출하는 내용의 친환경 설비 개량 이차보전사업을 도입했다. 선사 16곳, 선박 113척에 스크러버 설치비용 3623억원의 80%를 산업은행과 신한은행을 통해 대출 지원하고 해양수산부가 6년간 2%의 이자를 보전할 예정이다.
현재 가장 선호되는 규제 대응책으로 스크러버와 저유황유 사용이 꼽힌다. 스크러버는 저렴한 고유황유를 계속 쓸 수 있지만 초기 설치 가격이 20억~90억원에 이를 만큼 높은 데다 소형선엔 설치하지 못하고 투자비를 회수하는 기간이 길다는 게 큰 단점이다.
저유황유 사용은 스크러버 설치 여력이 안 되는 선사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공급 부족과 유류비 급상승의 위험이 존재한다. 고속선이나 대형선의 경우 막대한 유류비 지출도 우려된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저유황유 일변도였던 규제 대응책이 다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초 다수의 선사들은 저유황유를 환경 규제의 해법으로 여겼다. 지난해 8월 UBS에비든스랩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8%의 선사들이 황산화물 배출규제에 대응해 저유황유를 사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스크러버를 설치하겠다거나 스크러버를 단 선박으로 교체하겠다는 답은 30%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크러버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억5000만달러였던 전 세계 스크러버 설치 실적은 12월 7억달러 수준으로 3배 가량 늘어났다. 척수로 따져 8개월 새 월 평균 80척 이상 확대됐다고 천 센터장은 설명했다.
천 센터장은 “선사들이 보유한 선박의 종류와 1일 연료 소모량, 운항 항로 등에 맞춘 중장기적인 환경 규제 대응 솔루션이 등장할 것”이라며 “초기 투자비용과 추가 유류비용, 신조 가능성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저유황유나 스크러버, LNG연료선박 등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정부가 현재의 지원책을 유지하면서 추가적인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크러버 설치 지원책으로 교육 훈련 제도 신설이 제시됐다. 담당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장비 활용능력과 설치 효과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많은 선사들이 저유황유 사용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공급 방안을 마련하고 가격 안정화에도 힘을 쏟을 것을 주문했다.
저유황유 공급량 ‘충분’ 높은 가격은 ‘우려’
이대진 IHS마킷 수석연구원은 환경 규제 발효 이후 국내 저유황유 공급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국 상선대의 저유황유 소모량이 연간 11억2100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항에서 3억2700만t, 외국항만에서 7억9400만t을 급유한다는 관측이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환경 규제 발효 이후 1441척의 현존 국적상선대 중 91척만이 스크러버를 달고 나머지 1350척은 저유황유를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원은 전체 선단의 90% 이상이 스크러버를 달지 않으면서 저유황유 수요가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일 거라면서도 이들 물량을 국내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판매뿐 아니라 해마다 막대한 양을 중국이나 싱가포르 호주 지역으로 수출할 만큼 국내 정유업체들의 생산능력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이 연구원은 “현재 t당 200달러 정도인 저유황유와 고유황유의 가격차가 내년 이후 400달러선까지 벌어질 것”으로 관측하면서 “선사들이 스크러버 투자비 회수 기간 등을 따져 어떤 해법을 찾을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김민 팀장은 환경 규제 시행에 맞춰 선박 이행 지침서를 개발해 선사들이 자발적으로 본선에 비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행 지침서엔 연료시스템 개조와 탱크 청소 계획, 연료 저장탱크 용량 점검, 연료 수급계획, 저유황유 전환 계획 등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저유황유 사용에 따른 효율 저하나 윤활기능 저하, 기기 마모 또는 손상, 선박 추진 손실 발생, 연료 안정성 문제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이행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만당국에선 저유황유 공급 불가항만과 이용 불가 보고선박을 IMO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고 항만국통제(PSC) 검사 항목에 황산화물 배출규제 이행 확인 절차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황주홍 위원장과 김성찬 의원이 주최하고, 해양산업총연합회와 선주협회가 주관해 열렸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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