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5 09:01

기고/ 천문항해에서 무인항해로

변호사가 된 마도로스의 세상이야기(16)
성우린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방으로 내려가기 전에 육분의로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고 내려가도록 하게.”

필자가 예전 항해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곤욕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선장님께서 당직 시간이 끝나면 가끔씩 필자에게 육분의로 태양의 수평선과의 각도를 측정하도록 지시한 것이었다.

선박에 최신식 GPS(위성항법장치) 장비가 설치되어 있어 선수(船首)의 방위와 선위(船位)가 전자화면에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위성항법이 발달한 시기에, 평소에 잘 다루지도 않는 육분의로 태양의 방위각을 측정하라고 하니 솔직히 마음 한편에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천문항해는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선박에 설치된 GPS나 자이로 컴파스(Gyro Compass,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하여 만든 나침판) 등 전자장비의 오차를 정기적으로 측정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이 있었으므로, 필자는 손에 익지 않은 육분의를 들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곤 했다.

2019년 새해 첫 날 아침, 아파트 뒤편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불현듯 당시 선박에서 육분의를 들고 태양의 고도를 측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 당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도 같이 있었다.

항해사로서 다시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육분의 너머로 보이는 태양과 두 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없는 그 시절, 과학기술 등의 발달에 따른 시대의 변화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별과 태양을 보면서 선박을 항해하던 시대를 넘어 GPS로 선박을 항해하는 시대, 이제는 선원이 승선하지 않아도 완전자율 운항하는 무인 선박(Unmanned ship)까지도 조만간 현실화될 전망이라고 한다.

무인 선박의 최대 장점으로는 ‘안전성’과 ‘경제성’이 꼽힌다. 전 세계 해양사고의 대부분이 인적과실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무인 선박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최적화된 대응 매뉴얼과 판단을 통해 사고에 신속히 대응하며 잠재적인 해상사고를 저감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해적 공격도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리고 무인 선박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선원의 인건비 및 간접비 절감으로 선사들의 운영비를 줄이고 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선급의 조사에 따르면, 3,000 TEU급 자율운항 컨테이너선을 기준으로 선가는 현재보다 1.5배 비싸지만 운영비는 10%에서 20%까지 절감될 것으로 분석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인 선박의 도입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상 선원이 승선하지 않은 선박의 국제항해를 금지하고 있고, 선원 일자리의 상실에 대한 우려도 있으며, 무인 선박의 안전성도 완벽하게 규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다만 필자는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생각을 해본다. 향후 도입되는 무인 선박에 승선하는 선원이, 필자가 육분의를 이용하여 최신식 전자장비의 고장을 대비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비슷한 감정을 나중에 느끼게 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의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경험을 쌓았다. 하선한 이후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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