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마을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흉악범 일당에 맞서 외롭게 홀로 싸워서 마을의 평화와 주민의 안전을 다시 지켜내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보안관의 이야기를 밀도있게 그려, 너무나 유명한 주제곡과 함께 요란하고 떠들석하지 않은 대표적 서부 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영화 ‘하이 눈(High Noon)’. 이 영화의 소개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아꼈다가 필자가 영화 연재를 시작한 지 100번째 작품으로 이를 선택했음을 밝힌다.
1870년, 서부의 작은 마을 하이드리빌의 조용한 주일날 아침이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악당으로 보이는 세명의 총잡이가 평원에서 만나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서 무언가 심상찮은 불안감을 느낀다. 5년간의 보안관 임기를 무사히 마친 ‘윌 케인(게리 쿠퍼:Gary Cooper)’은 그의 사무실에서 아름다운 아가씨 ‘에이미(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와 결혼식을 올린다. 케인은 보안관 생활을 끝내고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살아가려던 평소의 꿈을 이룬 찰나다.
식을 마친 케인은 신부와 함께 새로운 삶의 터전 캘리포니아로 떠날 참이다. 그러나 이때 5년 전에 자신이 살인범으로 체포하여 감옥에 보낸 무법자 ‘프랭크 밀러(이안 맥도날드:Ian MacDonald)’가 보석으로 출감되어 케인에게 보복을 하러 정오쯤 마을에 도착한다는 전보 한통이 날아든다.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다니는 밀러의 심복(리 밴 클리프:Lee Van Cleef) 등 부하 세명은 기차역에서 그가 도착하면 합세하여 케인을 공격하러 들어닥칠 위급한 상황이다. 마을 사람들은 케인 때문에 자신들까지 피해를 입을까 걱정돼 전전긍긍하며 보안관 배지를 내놓고 빨리 신혼여행을 떠나라고 종용한다.
총격으로 가족을 잃고 집총을 거부하는 퀘이커 교도가 된 신부 에이미도 남편이 악당들과 다시 대결하는 것은 무모하며 보안관직을 떠난 입장에서 맞설 이유조차 없다며 빨리 떠나자고 독촉이다. 그러나 신임 보안관은 다음날 업무를 이을 계획으로 공석이라 케인은 다시 업무에 복귀한다. 당장 떠난다 해도 악당들의 추격에 항상 불안할테고 자기가 5년동안이나 지켜온 마을을 내버리고 도망가듯 떠난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케인은 에이미만 혼자 떠나 보내고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해 온 마을을 폭력과 공포를 떨게 했던 그 일당들과 싸우기로 결심을 굳힌다.
보안관보 하베이(론 챠니:Lon Chaney)는 한때 밀러의 정부였던 헬렌과 사귀고 있는데 케인의 사임으로 보안관 자리를 노리지만 그를 후임으로 추천해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결투를 앞두고도 보안관보 자리를 물러나고 만다. 악당들과 싸울 대원을 모아보려 하지만 보복이 두려워 아무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교회를 찾아가 예배 중인 목사와 교인들에게도 도움을 청해 보지만 허사다. 그간 오랫동안 마을을 위해 봉사를 했으나 정작 필요한 때에 누구 하나 도움을 주지 않아 결국 혼자서 맞서야 할 고립무원의 입장에 처한다. 케인의 친구인 마을의 시장 토마스 미첼, 지방판사 오토 그루거 조차도 케인이 떠나가기만을 강요하며 등을 돌린다.
드디어 케인은 사무실에 유언장을 써 놓고 그들이 나타날 시각, 하이 눈, 정오가 되기를 기다린다. 밀러의 도착을 알리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리고, 기차에서 내리는 밀러와 일당을 플랫폼에서 보게 된 에이미는 기차 타고 떠나는 걸 포기하고 마을로 되돌아온다. 악당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텅 빈 거리를 초조하게 혼자 거니는 케인의 모습은 정오가 임박한 시계침과 교차되며 결투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예고한다. 시계가 정오를 알리자 악당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정오가 다가오고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사람들, 술집안 사람들의 말없이 긴장된 표정들과 불길하게 똑딱소리를 내는 시계 바늘은 관중에게 긴장과 초조감을 더해준다. 드디어 부하들 영접을 받으며 프랭크 밀러가 마을에 당도하여 네명으로 늘어난 이들 악당들은 케인과 목숨을 건 일대 결전에 돌입한다.
마을에 밀러 일당이 숨어들면 그들과 맞서 싸우되 자신을 은폐시켜 매복했다가 한명씩 차례로 처리하겠다는 게 케인의 작전이다. 급기야 총성이 울리며 결투가 시작되고 화면은 숨막히는 긴장과 서스펜스로 스릴을 돋운다. 케인이 정오가 다가옴에 따라 느끼는 긴장과 두려움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박진감을 더한다. 불이 붙은 마구간에서 말들과 함께 빠져 나온 케인이 말에서 떨어지고 간신히 집안에 숨어들 때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겨우 유지하며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네명의 무법자와 대치하던 케인은 먼저 두명을 처치한 뒤 프랭크 밀러와 또 한 명을 두고 2대 1로 대치하게 된다. 폭력 반대 종교 퀘이커 교도인 신부 에이미도 어느새 건물 뒤에 숨어 있다가 밀러의 마지막 남은 한 명 부하의 등 뒤에 총을 겨눠 단번에 쓰러뜨린다. 그리고는 밀러에게 붙잡힌다. 마지막으로 남은 밀러는 에이미를 인질로 삼아 그녀를 죽이겠다며 케인을 협박한다. 그러나 케인이 밖으로 나온 순간 에이미가 계속 반항하며 도망치려고 몸을 빼는 찰나, 그 시간을 틈 탄 케인의 총격으로 밀러는 최후의 순간을 맞고 숨진다. 총격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 에이미가 마지막에 자기의 남편을 위해 악당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고 인상적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도움 없이 결국은 케인과 에이미 부부가 합심하여 악당들을 해치우고 마을의 안전을 찾는 쾌거를 이룬다. 폭풍이 가시자 케인은 자신의 앞에 몰려들어 얼굴을 내미는 마을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보안관 배지를 떼어 땅바닥에 던져 버린다. 무법이 난무하는 황야에서 어떻게 질서와 정의를 수호할 것인가의 책무를 진 고독한 보안관 케인의 가슴에 단 별이 이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이 그 기능이 정지되는 순간이다.
자신을 배반했던 비겁한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케인과 에이미는 마차를 타고 다시 신혼 여행길에 오른다. 자기가 사는 마을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마을 주민들과 달리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고독한 영웅 케인의 모습이 더욱 돋보이는 감격적인 장면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후임들에게 꼭 보도록 권유했고 특히 클린튼과 아이젠하워가 백악관에 재임 당시 수십번에 걸쳐 감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촬영 당시 부인과의 이혼문제와 좌골 신경통, 출혈성 위궤양 등으로 심신의 어려움을 겪던 터라 게리 쿠퍼의 수척한 표정이 그의 연기를 더욱 실감나게 도왔다는 후문도 있다. 원작은 ‘존 커닝햄(John Cunningham)’의 잡지 소설, ‘양철별(The Tin Star/1947)’로 알려지고 있다. 주인공을 맡은 게리 쿠퍼는 ‘요크 상사(Sergeant York, 1941)’에 이어 두번째로 1953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고 아카데미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도 받았다.
유태인으로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명감독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의 러닝타임은 85분이다. 영화 속의 상황 전개 경과 시간과 실제 영화 상영시간이 동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하이눈은 주제가만으로도 웨스턴 무비의 전설이 된 영화다. 케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직접 전하는 언질은 없지만 컨트리 명가수 ‘텍스 리터(Tex Ritter)가 부르는 노래는 윌 케인의 심정을 대변하듯 전편에 끊임없이 흐르는 테마음악 ‘나를 버리지 마오, 사랑하는 그대(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가 음반으로 발매되어 히트하면서 영화 못잖게 크게 인기를 모으며 널리 유행하자 주제곡에 힘입어 영화도 성공적으로 흥행하게 됐고 필자 역시 지금까지도 이 곡을 가끔 부르며 영화속 게리 쿠퍼의 연기 장면들을 회상하곤 한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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