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디어 헌터(Dear Hunter)’로 부터 시작해서 2018년 ‘더 포스트(The Post)’에 이르기까지 40년에 걸쳐 우연하게도 ‘메릴 스트립(Meryl Strrep)’ 출연한 영화를 많이 관람했다고 자부하는 필자는 우선 포스터에서 이름을 보게 되면 단순히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매니아 입장을 넘어 언감생심 맹목적인 경외감 같은 걸 느낀다. 그녀를 보면 적어도 연기력 하나만은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2006년작)’는 ‘로렌 와이스버그(Lauren Weisberger)’ 저자가 실제로 전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 ‘보그(Vogue)’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Anna Wintour)’와 함께 일했던 경험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실화적 요소도 다분하다. 신문기자를 꿈꾸던 ‘앤드리아 삭스(Andria Sax)’가 뉴욕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어웨이(Runaway)’의 여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Miranda Priestley)’의 비서로 취직하면서 지독한 여성 상사로부터 직속 부하가 겪는 갈등을 신랄하게 그려낸 오피스 로맨틱 코미디다.
‘프라다(Prada)’는 마리오 프라다에 의해 1913년에 설립된 이태리 패션회사로 가죽제품을 주종으로 인기를 모으며 성장해 왔고 물려받은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가 1989년에 여성복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해 오늘날의 다양한 패션분야를 주름잡는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여 샤넬과 경쟁 구도를 잇고 있다.
패션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기에 이 영화는 미란다란 주인공을 통해 직장과 성공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악마적 캐릭터를 현실적 삶의 모습으로 영상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름 돋는 독보적 연기력을 보인 ‘미란다 프리슬리’역의 ‘메릴 스트립’과 ‘앤드리아 삭스’역을 조화롭게 소화한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 모두가 화려해 보이지만 숨막히게 아찔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뉴욕 여성 직장인들의 실상을 각본을 쓴 ‘앨린 맥켄나(Aline Brosh Mckenna)’와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프랭클(David Frankel)’ 감독의 탁월한 솜씨를 보태 더욱 빛나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지방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부 기자를 꿈꾸던 앤드리아는 언론사 진출을 목표로 뉴욕에 첫 발을 디딘다. 자기딴엔 대학신문의 편집장도 역임하고 수상 경력도 있어 자신만만하게 뉴욕의 여러 신문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결과는 모두 퇴짜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녀의 지원에 오로지 한 곳, 누구나가 선망하는 런어웨이 패션 잡지사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탐탁치는 않았지만 당당하게 폼을 잡고 찾아 가보니 겨우 편집장의 비서 보조 자리였고 게다가 격식 없는 면접 첫 대면부터 온갖 무시를 당하고 수모로부터 출발한다. 내로라하는 패션계의 베테랑들이 옷차림부터 시골티를 면치 못한 그녀의 촌스럼에 킥킥대며 손가락질이다. 영화 제목처럼 지옥에서 온 악마같은 편집장 ‘미란다’는 워낙 바쁜지라 먼발치서 제대로 대면도 없이 힐끗 쳐다보고는 시큰둥하게 눈길 한번 주지않자 “틀렸구나!” 포기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불러세워 합격을 알린다. 그러나 출근 첫날부터 새벽같이 불려나가 선임 여비서 ‘에밀리(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로 부터 “네가 잘못하면 나까지 짤린다”고 겁주며 윽박대는 닦달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소름끼치는 긴장을 떨치지 못한다.
미란다 편집장은 패션계의 대모로 제왕처럼 군림한다. 줄커피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스타벅스 테이크 아웃 커피가 행여 식을세라 복잡한 인파를 헤치며 단숨에 대령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너무나 안쓰럽다. 또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중얼대듯 지시를 남발하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면 ‘굿’이고 두번 끄덕이면 ‘베리 굿’이란 걸 알아 차리기도 전에 거듭 실천 불가능한 일까지도 마구 쏟아낸다.
오프닝 시퀀스는 초비상시 군장을 꾸리는 병사들의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모습 그대로를 방불케한다. 런웨이 직원 모두가 세련되고 날씬한데 그녀만 꿔 논 보릿자루다. 날렵하게 유명 패션잡지 엘리트답게 외모나 다이어트에도 신경을 써야하지만 66사이즈를 단박에 44사이즈로 변화시키기란 불가항력이었다. 하지만 점차 이를 깨물고 악동이 되어가는 앤드리아는 당초의 꿈과 희망이던 신문기자가 되기까지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각오로 딱 1년만을 기다려 버티기로 굳게 결심한다.
직장 여성간 특유의 암투와 질시의 벽을 용케 넘기며 살아 남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 그녀는 드디어 편집장 미란다의 마음에 드는 센스있고 영리한 비서로 변모한다. 에지있는 옷차림에 세련미 넘치는 미모와 언어 구사에 앞서가는 아이디어 하며 그 어떤 지시사항도 토달지 않고 시간 맞춰 해결하는 베테랑이 된다. 심지어 일기가 나뻐 결항한 항공편의 티켓을 무조건 구입하란 어처구니 없는 지시도 서슴치 않고 들이대는 철저한 ‘예스’우먼으로 놀랍게 진화 발전한다.
시골뜨기 앤드리아가 하는 업무란 것이 ‘패션계의 마녀’니 ‘살아있는 패션계 전설’에 악명 높은 워크홀릭으로 세계적 명성과 악명이 자자한 미란다의 온갖 잔심부름과 궂은 일을 수발하는 몸종(?)으로 거듭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자리였고 일에만 빠져들어 이혼당한 미란다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쌍둥이 딸들이 원한다고 아직 출간도 안된 J. K. 롤링의 ‘해리 포토 이야기’를 당장 구해 오라고 성화다.
더러는 쌍둥이 숙제 대신은 약과고 어처구니 없는 지시지만 앤드리아는 특별한 인맥을 통해 출판에 들어갈 원고를 미리 구해 복사판은 쌍둥이에게 한부씩 나눠줘 둘이 나란히 재밌게 읽도록 하고 원본마저 미란다 앞에 고스란히 내미는 기적도 보이자 냉혈 상사 미란다도 과연 놀랍단 반응을 보인다. 칼바람 이는 미란다의 불호령 같은 모든 지시는 잘하면 당연지사, 못하면 날벼락이 떨어지기에 늘 앤드리아 머리 속은 ‘오로지 일(I Love Job)’로 가득차게 자기 체면을 걸어야 견뎌낼 수 있는 처지다.
어느날 갑자기 신분이 반전된다. 선임비서 에밀리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런웨이의 거사적 최대 행사인 뉴욕과 파리 합동 총회 및 패션쇼에 미란다는 앤드리아가 수행하여 전반적인 역할을 다하게 배려하는 영광의 기회를 안겨준다. 한편 호텔 주방보조로 컴플렉스를 느끼던 남친 네이트는 자기의 생일까지 잊고 귀가가 늦을 정도로 최근 승승장구로 잘 나가는 앤드리아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떠난다. 그러나 “내게는 실망을 준 비서였지만 이 사람을 채용 안하면 당신은 바보”라고 적극 추천하는 대목은 그간 못다하고 미뤘던 서로의 애정과 신뢰를 엿보게 하는 직장 조직의 따뜻한 정분 같아 필자가 느낀 가장 인상적인 결어로 가슴 찡한 감명으로 남는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세번이나 받은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철의 여인(The Iron Lady)’을 비롯 ‘디어 헌터(The Deer Hunter)’,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 ‘맘마미아(Mamma Mia)’ 그리고 ‘플로렌스(Flolens Foster Jenkins)’ 등 주옥 같은 명작을 엮어 낸, 영화속 미란다 같은 이 시대 최고의 전설적인 연기자로 우뚝 선 메릴 스트립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으리란 생각으로 가득 찬다. 또 ‘레 미제라블(Le Miserable)’, ‘인터스텔라(Interstella)’와 ‘송 원(Song One)’과 ‘인턴(The Intern)’서 호연, 다락같이 인기가 오른 앤 해서웨이가 쌍벽을 이뤄 만들어 낸 인상 깊은 명작이란 평가도 조용히 기억에 새긴다.
< 물류와 경영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