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6 09:06

시선/ 갈길 잃은 BPA의 빅데이터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부산항만공사(BPA)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야심차게 추진 중인 ‘빅데이터’ 사업이 항만 터미널업계의 반발에 추진동력을 잃고 있다.

BPA는 자체 컨설팅역량을 강화해 효율적인 해운·항만정책을 수립하고 부산항의 항만경쟁력을 제고한다는 목표로 지난해부터 빅데이터사업을 시작했다. 세계 해운시장 변화에 따른 효과적인 대응, 항만인프라 추가개발에 대한 타당성 분석, 선사에 대한 합리적인 인센티브 정책,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의 영업력 강화 등이 BPA가 제시한 기대효과였다.

BPA는 선사 터미널운영사 포워더 등의 운영정보를 수집해 부산항을 두고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자료 공개를 꺼리면서 사업은 삐걱대기 시작했고, 터미널업계에서만 각종 내부 운영정보를 취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BPA는 중간자로서 터미널업계가 자료를 제공하면 과학적으로 분석해 최선의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요청하는 자료가 지나치게 민감한 것들 일색인 게 문제로 지적된다. BPA는 터미널에 선박입출항, 작업소요시간, 장치장 현황, 트럭의 턴타임(화물 반출입 시 트럭이 터미널에 머무는 시간) 등을 망라하는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

터미널과 선사의 계약사항 중 비밀유지조항인 컨테이너 작업정보도 요구하고 있다. 선사의 동의를 먼저 구하라는 터미널의 지적에 BPA는 부랴부랴 선사와 만남을 갖고 있지만 아직 모든 선사들로부터 승낙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수한 자료의 활용방법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특히 BPA가 최근 신항 다목적부두를 직접 운영하게 되면서 터미널사가 제공한 자료를 화물영업용으로 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포착된다.

BPA는 다목적부두 운영사로 발돋움한 데 이어, 추후 개장하는 신항 서컨테이너부두의 운영사 자리까지 넘보는 ‘경쟁자’ 신분이 됐다. 항만을 관리·운영하는 공기관이 터미널 운영까지 도맡으면서 업계는 BPA의 움직임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에 대해 BPA 관계자는 “업계의 반발이 심해 전월 자료만 수집하기로 합의했다”며 “전반적인 항만정책을 수립하는 용도로만 터미널들의 자료를 활용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데이터 제공을 놓고 BPA와 터미널 간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해외사례를 참조하며 연구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만전문지 포트스트래티지에 따르면 해외 항만들은 수년 전부터 빅데이터 분석에 나섰지만 BPA처럼 민간업계의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은 취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함부르크항이다. 함부르크항은 항만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포트’를 실현하기 위해 선박위치, 운항경로, 교량의 높이와 너비 등 자체적으로 확보 가능한 자료만을 가공해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다.

이 앱이 보편화되면서 항만 근로자들은 선박이 접안할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고, 트럭기사들은 화물이 언제 하역될지를 판단하게 돼 작업능률을 높일 수 있었다. 항만현황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도 민간의 영업정보를 활용하지 않고 빅데이터 사업에 성공했다.

BPA가 빅데이터 사업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모바일앱의 이름은 ‘소통협업’이다. 우리나라 해운항만물류업계가 소통과 협업으로 다 같이 상생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특정 업계의 자료만을 수집해 ‘손 안 대고 코푸는 식’으로 성과를 내려는 BPA의 사업 로드맵은 ‘뒤끝’이 남을 수밖에 없다. 3자 입장에서 사소해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매우 민감할 수 있는 게 ‘정보’라는 점을 알아주길 업계는 바라고 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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