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2 09:52

시선/ 항만터미널, 외자 배척만이 능사 아니다


구태정치의 연속이었다. 여야는 주도권을 잃을세라 고성으로 기선 제압하기에 바빴고, 논리경쟁 대신 면박주기에 열을 올렸다. 지난달 24일에 있었던 4대 항만공사와 해양경찰청 국정감사에서의 일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오전 내내 전날 국감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성소수자 논란 공방으로 아까운 시간을 할애했다. 피감기관인 4대 항만공사와 해양경찰청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항만공사 관계자들은 여야 의원들이 주고받는 내용을 파악하느라 적잖이 당황스런 눈치였다. 겨우 진행된 국감은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세월>호 이슈에 대거 할애됐다. 4대 항만공사에 대한 감사는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했다.

그나마 문제점을 지적한 국회의원에 4대 항만공사 사장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위기를 모면하기에 바빴다. 한 항만공사 관계자는 “올해 해경이 부활하면서 함께 국감을 진행하다보니 항만공사에 대한 비판이 줄어든 것 같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국감을 지켜보면서 한진해운 사태를 갓 1년을 넘긴 시점에서 해운항만 분야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이 계속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나온 정책질의도 한창 철 지난 내용들이어서 듣는 사람을 힘 빠지게 했다.

국민의당 김종회 의원은 부산신항에서 부두를 운영 중인 외국계 자본을 문제삼았다. 김 의원은 부산항만공사(BPA) 우예종 사장에게 “동북아물류 허브를 목표로 1995년부터 2013년까지 5개 부두 22선석을 조성하는데 13조원을 투입했지만 원대한 포부가 산산조각 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신항 운영사의 영업이익 1486억원 중 외국계자본이 1200억원대의 이익을 챙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우 사장에게 국감이 끝나기 전까지 신항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그의 주문엔 BPA가 무소불위의 힘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것 외엔 특별한 방법이 없다. 이미 5개 부두 중 3개가 외국계에 의해 오랜기간 운영되고 있다. BPA가 이들을 내쫓을 수 있는 근거도 명분도 없다.

물론 국적자본이 아닌 외국계가 부산에서 하역업을 점령한 건 뼈아픈 일이다. 또 한진해운 사태 당시 터미널운영사들의 하역 거부로 한국해운의 신뢰에 금이 간 점에서 외국계를 비판하는 일각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국내 주요 항만·물류기업 중 그 누구도 하역업에 발 벗고 나설 기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은 하역요율과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업계 영업실적 1위를 달리는 CJ대한통운조차 부산북항의 부두사업에서 일찌감치 손을 털었다. 항만당국이 하역시장을 독점하지 않는 한 외국계는 부산항이 끌어안고 가야 할 동반자다.

오히려 글로벌터미널운영사(GTO)가 있기에 부산항이 세계 6위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일부 항만업계의 주장도 되살펴봐야 한다. 전 세계에서 항만사업을 하고 있는 PSA나 DP월드 등이 부두를 운영해야 다른 항만과의 연결성과 요율책정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환적물동량 유치에 급급한 BPA로선 오히려 GTO 유치에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부산항의 9월 물동량이 중국 광저우에 밀려 7위로 주저앉았다. 1~9월 물동량은 6위를 유지했지만 국가자본으로 덩치를 키우는 중국 앞에 세계 10대 항만의 지위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국회가 자본의 국적을 놓고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다. 국회와 항만당국의 공조로 부산항 살리기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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