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 판결
3. 준거법의 확정
가. 영국해상보험법의 적용
1) 이 사건 약관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이 돼 온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당사자간의 거래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공익규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6년 3월8일 선고 95 다28779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약관에 의해 이 사건 보험계약에 적용될 법률은 1906년 영국해상보험법 (Marine Insurance Act, 1906, 이하 ‘영국해상보험법’이라 한다)이라 할 것이다.
2) 이 사건과 관련된 영국해상보험법 규정은 아래와 같다.
가) 영국해상보험법 제1부칙 보험증권해석에 관한 규칙 (Rules for Construction of Policy) 제1조: 보험의 목적이 ‘멸실 여부를 불문한다(lost or not lost)’는 조건으로 보험에 부쳐진 경우에 손해가 계약 성립 전에 발생한 때에는 계약 성립시에 피보험자가 손해발생 사실을 알고 보험자가 이를 알지 못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위험이 부보된다.
나) 영국해상보험법 제17조: 해상보험계약은 최대선의 (utmost good faith)에 기초한 계약이며, 만일 당사자 일방이 최대선의를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상대방은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다) 영국해상보험법 제18조: (1) 이 조항의 규정에 반하지 않는 한 피보험자는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중요한 사항을 보험자에게 고지해야 하며, 통상적인 업무수행과정에 서 자신이 알고 있어야만 할 모든 사항은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만약,피보험자가 이러한 고지를 하지 않은 경우 보험자는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2) 신중한 보험자가 보험료를 정하거나 또는 위험을 인수할 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모두 중요하다.
나. 피고의 주장에 관한 판단
1) 이 사건 약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
가) 주장의 요지
이 사건 약관은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중요한 내용임에도 원고는 이를 부산은행이나 피고에게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약관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이하 ‘약관규제법’이라 한다) 제3조 제4항에 따라 이를 이 사건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보험계약에는 국내법이 적용돼야 한다.
나) 판단
(1) 국제사법 제27조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준거볍 지정과 관련해 소비자계약에 관한 강행규정을 별도로 마련해 두고 있는 점(국제사법 제27조는 ‘소비자가 직업 또는 영업활동 외의 목적으로 체결하는 계약’으로 그 적용범위를 한정하고 있다)이나 약관규제법의 규정내용, 입법목적 등을 고려하면,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해 체결된 계약에 관해 당연히 약관규제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대법원 2015년 3월20일 선고 2012다118846, 118853 판결 참조), 달리 이 사건에서 약관규제법을 적용해야 할 사정도 보이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에는 약관규제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볼 것이다.
(2) 가사 약관규제법이 적용된다고 해도, 보험자에게 약관의 설명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험계약자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해진 중요한 사항이 계약 내용으로 돼 보험계약자가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데 그 근거가 있으므로(대법원 2000년 7월4일 선고 98 다62909, 62916 판결 등 참조), 해상보험계약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관이라 할지라도 개별적으로 그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혹은 이미 법령에 의해 정해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설명의무의 대상이 아니다(대법원 2007년 4월27일 선고 2006 다87453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을 제3호증의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가 체결한 다른 해상적하보험의 보험증권 내지 송장에도 이 사건 약관이 기재돼 있는 사실,피고는 1997년 경 부터 약 18년간 원목을 수입하면서 연 평균 40-50건 정도의 해상적하보험계약을 체결했던 사실이 인정되고,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피고는 이미 이 사건 약관의 내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이므로, 원고에게 약관규제법 제3조에서 정한 설명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한다.
(3) 결국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2) 이 사건 약관의 적용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
가) 주장의 요지
이 사건 약관에는 ‘보험증권에 따라 발생하는 책임에 관한 모든 문제’에 관해 영국법을 적용한다고 규정돼 있는바, 원고가 피고의 고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보험계약의 성립에 관한 문제로서, 위 ‘책임에 관한 모든 문제’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에는 국내법이 적용돼야 한다.
나) 판단
살피건대, 이 사건 약관과 같은 규정이 있는 경우 적하보험계약에 있어서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한 보험계약의 취소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상법 제651조, 제655조 등이 아니라 영국해상보험법 제17조, 제18조가 적용된다 할 것이므로(대법원 1991년 5월14일 선고 90다카25314 판결 참조)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소결론
따라서 이 사건 보험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상법 제644조, 제651조, 제655조가 적용됨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모두 이유 없다. <계속>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