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보호주의에 ‘노’라고 말해야 한다. 무역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1월 다보스포럼 기조연설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지금 중국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시 주석이 남긴 이 말은 화려한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전격 배치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의 노골적인 태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틈만 나면 비관세장벽을 내걸고 시장을 규제하던 중국의 反(반) 시장적 행태를 비춰보면 사드보복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드배치는 날로 거듭되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불가피한 자위권 행사다. 북한은 6일 4발의 탄도미사일을 동시 발사하기도 했다. 유사 시 전쟁까지 무릅써야 하는 우리나라로선 최소한의 방어책인 셈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사드보다 강력한 탐지거리 3천km의 레이더 ‘톈보’를 네이멍구에 추가 설치하는 이중행보를 보이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중국의 치졸한 보복행위에 국내 해운 산업도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인천은 피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특히 카페리 선사는 상황이 심각하다. 한·중 카페리 선사는 9곳으로 이들 선사는 총 10개 항로를 기항하고 있다. 이들 선사에는 지난해 92만명의 여객이 승선했으며 중국인이 88%를 점유했다. 한 선사는 5월 초까지 예약돼 있던 카페리 이용객이 전면 취소돼 울상이다.
수출화물은 통관 문제를 꺼내들어 거의 중단된 상태다. 수출 증명서 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진 데다 통관 진행 속도도 크게 떨어졌다. 국내 부두에 있는 화물을 싣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출항 당일 현지 통관 문제로 선적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선사들은 전한다. 반대로 수입화물은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칫하면 여객과 수출화물은 사라지고 수입화물만 실어 날라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보복성 조치가 그 수위를 더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린 일본이 중국과 대립한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12년 일본이 센카쿠열도 3개 섬을 국유화하자 중국 내 반일 감정 확산으로 방일 여행객이 급감했다. 당시 중국의 방일 관광객은 26% 급감한 것으로 보고됐다. 관광객 급감은 면세점 수익 악화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여행객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감세와 각종 면세점 확대 정책을 시행했다. 또 중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동남아에 주목했다. 2013년부터 동남아시아 5개 국가의 관광비자 발급을 완화해 관광객을 대거 끌어들이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 여행객도 다시 늘어 2012년 131만명에서 2015년 499만명으로 급증했다.
국정 공백 상황에서 해운을 비롯한 우리 산업계는 예기치 않은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우린 지금 중국과의 관계 유지를 통한 경제 피해 최소화냐 북한 도발에 맞선 국방력 강화냐를 놓고 갈림길에 서 있다.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전쟁억지력을 높이고 평화 유지를 위해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데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통해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과 국력을 기반으로 주변국들에게 터무니없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십분 확인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세상의 이치다. 정부와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등 산업구조 재편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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