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다. 하지만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특송기업엔 이 말이 예외인 모양이다.
DHL, 페덱스, TNT, UPS 등 글로벌특송기업은 국내 민간 택배기업들이 화물운수사업법(화운법)을 적용받아 노란색 사업용 번호판을 발급받아 택배사업을 벌이는 것과 달리, 항공법에 따라 ‘상업서류 송달업’으로 분류돼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한 운송 행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법을 적용받고 있지만, 차량을 이용해 고객들에게 택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사실상 국내 기업엔 ‘규제’를 해외 기업엔 ‘특혜’를 제공하는 셈이다.
항공법을 적용받는 글로벌특송기업은 민간 택배기업과 달리 하얀색 비영업용 번호판을 부착하고도 물건을 자유롭게 배송할 수 있다. 대다수 택배기업이 영업용 번호판이 부족해 신음하고 있지만, 특송기업 입장에선 딴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점은 글로벌특송기업이 부가서비스 명목으로 육상운송 요금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DHL이 배포한 ‘DHL 요금 및 서비스 가이드 2014’를 보면, DHL은 ‘외곽지역 배송 서비스’를 통해 원거리 지역으로 배송되는 수출입 화물에 대해서는 건당 2만5000원의 요금을 받고 있다. 물품의 무게가 62.5kg이 넘을 경우 kg당 400원이 추가된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본인들에 유리한 지역은 직접배송에 나서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외곽지역은 민간 택배기업에 맡긴 뒤, 소비자들로부터 과도한 요금을 책정해 뜯어내는 셈이다.
고객입장으로 DHL 서비스센터에 문의전화를 걸어봤다. 이들은 각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수도권에서 외곽지역으로 택배를 보낼 경우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특히 단순히 외곽지역이란 이유로 물품의 무게가 62.5kg 이하인 경우, 일률적으로 2만5000원을 요구하는 행태를 보면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어 보였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별 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듯 보였다. 서로 책임을 회피하며 “우리 업무가 아니다”,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 없다”, “항공법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등의 무책임한 발언을 내놨다.
본인들이 물류전문가임을 내세우는 이들 역시 “해당 주제는 낡고 빛바랜 주제가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내놓는 등 글로벌특송기업에 일부 특혜를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의견을 내놨다. 특송업체들 역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마땅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해외직구는 1553만건에 15억4천만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글로벌특송기업들의 ‘콧노래’가 귓가에 들린다. 이들이 한국의 법과 규정에 맞게 정당한 방법으로 배송에 나선다면 이들의 성장을 축하해줄 일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정당하지 못한 방식을 취한다면 언젠가는 풍파(風波)를 맞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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