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업계에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농협의 택배진출로 위기감이 번진 가운데, 쿠팡이 불씨를 지폈다.
농협은 택배업 진출을 위해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 사업성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택배업계가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지난 2000년 우체국택배의 출현과 함께 택배시장이 단가경쟁으로 내몰렸던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체국택배와 같은 공기업이 화물운수사업법(화운법)의 울타리 밖에서 택배사업 영위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택배기업들은 화운법에 따라 노란색 사업용 번호판을 반드시 발급받아 택배사업을 벌여야 한다. 이를 어기고 자가용 차량을 이용할 경우 2년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반면 우체국택배는 ‘우정사업운영에 관한 특례법’으로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한 유상운송이 가능하다. 농협도 마찬가지다. 농협협동조합법에 따라 우체국택배처럼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업을 벌이거나 세제 감면이나 보조금 지원 등의 특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농협택배, 예상 시나리오
농협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인수합병 가능성이 가장 높다. 법적인 부분에서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택배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중소택배사는 KG옐로우캡, 동부택배, KGB택배, 로젠택배 정도가 있다. 이중 KG옐로우캡과 동부택배는 지난해 KG그룹에 흡수 또는 인수합병 됐다. 그나마 시장에 남아있던 로젠택배도 KGB택배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수주체는 로젠택배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홍콩계 사모펀드인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베어링PE)다. 거래금액은 250~260억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선 KG그룹이 택배기업을 농협에 넘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KG그룹은 지난해 옐로우캡과 동부택배 이외에도 종합물류기업인 팍트라인터내셔널 인수를 추진했었다. 팍트라인터내셔널 인수는 무산됐지만, 종합물류기업을 인수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업계 전문가는 “KG그룹이 중소택배사를 인수합병한 목적은 역직구 시장을 노린 것이라고 생각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KG그룹은 궁극적으로 KG이니시스의 결제시스템과 육상운송 등을 결합해 역직구 시장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인수 가능성이 높은 쪽은 로젠택배와 KGB택배다. 로젠택배가 KGB택배를 인수할 경우, 시장 점유율이 상승됨은 물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베어링PE는 로젠택배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인 뒤, 농협에 로젠택배를 넘길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농협이 택배기업이 아닌 정기화물업체를 인수하는 방향이다. 현재 시장에 나온 중소택배사가 인수합병 된 상황에서 정기화물을 취급하는 경동택배나 대신택배 등을 인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협중앙회 태스크포스팀 관계자는 “지난해와 비교해 최근 택배시장의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굳이 택배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택배사가 아니더라도 정기화물도 있다”고 언급했다.
쿠팡에 쏠려있는 유통업계의 ‘눈’
농협의 택배진출이 소프트웨어라면 쿠팡의 자체배송은 하드웨어다. 쿠팡의 ‘로켓배송’을 단순히 총알배송으로 보면 오산이다. 쿠팡은 유통업계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쿠팡의 로켓배송이 향후에 어떻게 평가받느냐에 따라 택배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쿠팡이 선보인 로켓배송은 서울과 6대 광역시, 경기 일부지역에 한해 9800원 이상 무료배송, 여러 제품을 하나로 합친 묶음 배송, 당일·익일 배송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위해 쿠팡맨 1000여명을 고용하고 1톤 차량 1000여대를 구입해 1인 1차량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쿠팡이 화운법 56조에 따라 노란색 사업용 번호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쿠팡이 선보인 로켓배송은 ‘화운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동이다”며 “직접 물품을 제조하거나 생산하지 않는 전자상거래업체가 물품을 매입한 뒤, 자사 물건이라는 이유로 직접택배에 나서는 행동은 ‘편법’ 행위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법의 테투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자체배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쿠팡 관계자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명시된 사항에 위배되는 것 없이, 우리 물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인도하기 때문에 문제되는 부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며 “우리는 현재 자체배송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체물량 이외에는 배송할 생각이 없으며, 자체배송은 서비스 고도화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고 말했다.
국토부 물류산업과 관계자는 “현재 해당 건에 대해 법률 자문을 요청했으며 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운수사업법에 저촉할 경우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이 개시한 ‘로켓배송’이 편법이라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쿠팡이 예산을 투입해 영업용번호판을 취득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문제다. 쿠팡은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Black Rock)이 주도한 투자사들로부터 3억달러(한화 약 3322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같은해 6월에는 미국의 간판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 캐피탈로부터 1억달러(약 1026억원)를 투자 받았다. 안정적인 자금을 기반으로 자체배송을 강화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게다가 쿠팡 김범석 대표는 지난해 12월 당일 내 직접 배송하는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에 부합할 수 있도록 판매상품의 종류를 대폭 강화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이커머스 모델을 제시하고,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전문가는 “쿠팡이 자체배송 등을 통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인 뒤, 글로벌 전자상거래인 아마존에 매각하는 시나리오도 예측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유통업계 내에서는 쿠팡이 자체배송을 강화한 것을 두고, ‘신선한 발상이다’고 언급하는 동시에 위기감을 보이고 있다. 쿠팡이 기존 유통업체와 달리 자체배송에 나서면서 배송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규모가 큰 택배기업은 홈쇼핑 업체와 협업해 화주의 물량을 전담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지만, 쿠팡에 비해 배송 서비스 품질은 떨어진다. 그 이유는 택배업체간 화주 유치를 위해 택배 운임을 낮추면서 서비스 품질도 동반하락했기 때문이다.
B홈쇼핑 관계자는 “택배업계에서 가격경쟁을 탈피해 고객관점에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낮은 가격에 많은 물량을 배송하다보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아 택배업계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화주도 고객에게 불신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측면에서 유통업체가 직접 배송을 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택배업계의 새로운 서비스와 그에 부합하는 요금체계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택배업계와 택배를 이용하는 화주, 물건을 받아보는 고객 모두에게 만족을 주고 지속 발전하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택배업계 내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단기간에 화주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충족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전체적인 택배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당일, 지정일, 시간대 배송 등 서비스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울러 택배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택배 서비스에 대한 화주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현재 화주에서 요구하는 택배 운임으로는 그들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택배 운임을 올려봐야 경쟁업체에 좋은 먹잇감만 될 뿐이란 볼멘소리가 새어나온다.
택배, 일본을 통해 배우자
일본 택배는 야마토운수를 시작으로 1976년 228만개를 취급했고 매년 물량이 늘어난 1980~90년대 성장기를 거쳐 2000년대 성숙기에 진입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디플레이션과 함께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택배 취급 개수는 일시적으로 감소추이를 보였으나 온라인 쇼핑몰의 지속적인 증가와 편의점의 매장 증가, 소비자의 글로벌 온라인 상품 구매 증가로 인해 2013년에는 전년대비 3.1% 증가한 36억3700만개의 물동량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일본 전체의 인구가 현재보다 감소하지만 택배물량은 38~40억개를 정점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야마토운수와 사가와큐빈은 일본 택배시장을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다. 이들은 1980~90년대 일본 택배시장이 업체간의 경쟁으로 과열되던 시기 서비스 다각화를 통해 성장동력을 강화했다.
야마토운수는 스키, 골프택배 등의 신상품을 개발해 신규 및 잠재수요를 개척했다. 야마토운수가 사업규모면에서 타 대형운수회사들보다 열위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택배업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게 된 근본 원인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사가와큐빈 역시 1999년 ‘비각쿨택배’를 전국에 확대하고 2004년에는 ‘비각우편메일’을 시작했다. 지속적인 신상품 개발을 통해 현재는 13~14가지 종류의 다양한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야마토운수는 택배사업 외에도 대금회수서비스, 물류 VAN정보서비스, 넷슈퍼서포트서비스, 수리지원서비스, 웹출하컨트롤서비스, 야마토인포트라이렉트 등 다양한 사업전략 모델을 구상해 택배사업에서 수주-물류, 결제에 이르는 모든 사업영역까지 확대해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카와큐빈 역시 경쟁사보다 앞서 카드결제시스템인 ‘e-콜렉트’를 시작했다. 2003년에는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중국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또한 백화점의 의류납품 대행기업인 ‘월드서플라이’를 2009년 2월에 매수해 택배 물동량 확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맥물류’에도 손을 뻗쳤다. 정맥물류란 인간의 혈액순환을 빗댄 것으로 소비지에서 사용한 폐기물을 순환자원으로 리사이클 시설로 수송하고, 생성된 리사이클 제품을 다시 소비지로 수송하는 새로운 형태의 택배 서비스다. 사가와큐빈은 현재 리사이클 플랫폼 회사 ‘리넷(Renet)재팬’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PC나 소형가전 등의 폐기물 수송에 나서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직접 폐기물을 옮기러 갈 필요가 없어 좋고, 택배기업에서는 신규 물동량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재사용’의 관점에서 정맥물류를 활용한 사례도 있다. 사가와큐빈은 일본의 구두수선 전문업체인 미스터 미닛사와 협업을 통해 온라인 택배수리 서비스 ‘라쿠 페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택배와 가전제품 수리를 접목해 택배기업이 직접 소비자를 만나 견적을 내고, 배송하는 형태의 서비스도 수행하고 있다.
융합의 시대, 수를 읽자
최근 트렌드인 ‘융합’을 접목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과거에는 제품을 통해 경쟁을 했지만, 지금은 글로벌화로 인해 공급망이 곧 경쟁력이 됐다. 특히 오늘날 인터넷과 모바일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각 산업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점차 비즈니스 역량을 키우기 위해 물류를 접목해 가고 있고, 이에 따라 제조산업과 물류산업, 유통산업과 물류산업, 그리고 제조산업과 유통산업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양상이다.
일예로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케아, 나이키, 애플, H&M, 리앤펑 등의 회사가 대표적이다. 우선 이케아의 비즈니스모델은 제조산업이 물류산업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다. 원래는 제조업체였지만 현재는 포장을 통한 제품 보관 및 운송등 물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조산업과 유통산업 또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나이키나 애플과 같은 기업이 여기에 속한다. 애플은 애플스토어를 통해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나이키는 유통 물량의 50%를 본사가 직영하는 매장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유통산업이 물류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플랫폼 기업으로 불리우는 기업들이다. H&H, 홍콩의 링내펑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익히 알고 있는 아마존, 이베이 등도 이에 해당하며 이들은 물류영역으로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물류산업 내부적으로도 사업 경계가 모호해지는 추세를 보인다. 물류산업 역시 통합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 물류기업은 화주에게 통합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화주들은 단순한 ‘운송’을 넘어, ‘구매부터 재고처리까지 하나로 묶어 소비자에게 가치를 주는 역할’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3PL(3자물류)의 역할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물류업체로 꼽히는 DHL, 페덱스, UPS 등은 일찍이 1990년대 후반부터 화주들의 요구를 감지하고 대응을 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꾸준히 M&A를 추구해온 것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은 곧 지역별 매출로 나타난다. 글로벌 물류업체의 해외 매출 비중은 최소 25%에서 많게는 70%를 차지한다.
최근 국내 택배기업이 대응책 수립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CJ대한통운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그룹사와 시너지를 도모해 진출하고 있으며, 최근 중국 택배의 성장세와 규제완화를 감지, 중국 택배업체인 위엔통과 MOU를 체결하며 중국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아울러 APL로지스틱스 인수를 추진하면서 해외진출 전략도 수립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로지스틱스 역시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내부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 발표는 없지만, 그룹 내 육·해·공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통한 시너지 가시화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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