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성수기의 정점을 달려야할 한러항로가 침울하다. 물동량 증가는 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항로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수출물량이 11월 최고점을 찍고 줄어드는 반면, 한러항로는 10월말부터 12월에 최고점을 찍고 1월부터 비수기에 들어간다. 율리우스력으로 날짜를 따지는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12월25일이 아닌 1월7일로 지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10월부터 시기상 성수기에는 진입했지만 러시아향 수출화물이 전월대비 20%가량 급감하면서 오히려 비수기를 맞은 모습이다.
러시아 루블화 약세의 영향이 가장 컸다. 지난 10월 이후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달러대비 루블화의 가치는 지난 6월 중순 25%, 올 들어 30% 이상의 추락세를 보였다. 지난 10월5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환시장 개입을 최소화 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사실상의 ‘변동환율제’ 도입을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의 발표 직후 루블화의 가치가 약 11% 폭락하는 등 오히려 루블화의 약세를 더욱 부추겼다. 루블화 가치의 하락으로 수입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러시아의 체감경기도 악화됐다. 한 선사 관계자는 “루블화가치가 1.5배나 하락하면서 9월 대비 10월 수출물량이 20%가량 급감했다”며 “경기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11월 한국-극동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보스토치니)물동량은 10월 주당 5000TEU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9월 주당 약 6000TEU를 기록하던 수준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감소세를 보였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한 CIS향 화물도 늘고 있지만 성장세가 크진 않다. 올해 중국횡단철도(TCR) 운임이 대폭 인상되면서 중앙아시아(CIS)로 가는 일부 구간의 수출화물 운임이 TSR을 이용하는 것보다 높아졌다. TCR과 TSR의 운임차가 벌어지자 물류업체들은 TCR로 주로 수송하던 화물을 TSR로 돌려 화물을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러항로의 운임수준은 안정적이다. 현재 한국-블라디보스토크 간 운임은 선사소유 컨테이너(COC) 기준 평균 20피트 컨테이너(TEU)당 725달러, 40피트 컨테이너(FEU)당 1100달러, 한국-보스토치니의 경우 TEU당 600달러, FEU당 1000달러 수준이다. 한러항로는 운임변동의 거의 없는 항로인 만큼 올 처음 시행했던 8월 기본운임인상(GRI) 이후 운임변동이 없는 상태다.
한러항로 취항선사들은 12월부터 TEU당 50달러의 동절기할증료(WSS)를 매년 공지해왔다. 운임인상이 쉽지 않은 항로인 만큼 선사들은 연말 물동량이 늘어나는 때 부대 운임을 높이겠다는 셈이다. 하지만 올해는 러시아 경기침체가 맞물리면서 동절할증료를 적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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