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2 15:29

이호영칼럼/ 운명적인 야릇한 동거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2010년에는 남자가 77.5세, 여자가 84.5세, 평균 81.0세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65세 정년까지 해먹고(?) 은퇴한 사람은 16년을, 45세에서 명퇴한 사람의 경우에는 무려 36년간을 무엇을 해서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등산이나 봉사활동 등으로 즐겁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거리 없이, 별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하니 많은 사람들은 즐거운 노후를 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고 병이라도 들게 되면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더욱 힘들게 되어 우울증, 불면증 등으로 고통 받게 된다. 요즈음 동창회에 나가보면 수술 안 한 사람 흔치 않고 약 먹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가 노인 자살률 또한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라고 하니 노후의 건강이란 이제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가 됐다.

오늘은 친구들이 찾아와 노년의 건강이야기를 화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론처럼 “이제는 병하고 함께 사는 몸”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함께 사는 친구라면 친구가 한 명 보다는 여러 명이 나쁠 것 없는 것 아니냐? 언젠가는 함께 영원히 가는 거라면 한 명하고 가는 것보다는 여러 명과 함께 가는 것이 더 큰 인물이 아니겠는가? 이런 말은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려는 배려 같았다.

하기야 남아공월드컵 대 그리스전에서였던가 박지성이 여러 명의 수비수를 제치는데 넘어질 듯 위태위태하다가 여러 명을 꽁무니에 단 채 슛을 성공시키는 장면에서 과연 박지성은 대선수임을 확인시켜줄 때 얼마나 열광했었던가? 한 명만 제쳤다면 그토록 통쾌하지는 않았으리라.

불가에서도 진짜 고승은 자기 피를 빨아먹는 이들을 죽이거나 털어버리지 않고 자기 몸에 품고 같이 공생한다고 한다. 이른바 육신공양이다 이 한 마리만 먹여 살린다면 그리 대단하다고 하겠는가? 나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야릇한 동거관계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운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말을 인정화게 되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내 몸의 주인은 오직 나 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내 몸은 내 말에만 복종하는 줄로 알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어느 녀석이 나타나 내 몸을 지배하려 하고 내 몸도 그 놈 말에 복종하는 것을 보면 들어오는 놈에게는 적개심을 품고 한판 크게 붙게 되고 그 놈에게 복종하려는 내 몸에 대해서는 실망과 배신감에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들어오는 놈을 녹초를 만들어 쫓아내게 되면 성취감에 도취되어 내 몸에게 “봤지? 너의 주인은 나야! 나는 아직 괜찮아!” 하고 우쭐한다.

그런데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놈이 밀어내도 안 나가고 결국 몸 한쪽에 한 자리 틀고 앉아 요지부동이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데 몸이 내 말만 듣지 않고 그놈 말도 듣는 것을 알게 되면 전의는 떨어지고 자신을 잃게 된다. 이렇게 둘째 놈도, 셋째 놈도 들어와서 내 몸 안에 놈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게 되면 이제 하는 수 없이 평화공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허구한 날 싸움만 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연이어 싸움에 지쳤으니 평화공존밖에 대안이 없게 된다. 이를테면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질서를 세우고 안정을 찾자는 것이다 이때가 돼야 그 녀석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비로소 함께 살아가야할 친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밤에 잠도 좀 잘 수 있게 되고 마음의 여유도 초금씩은 갖게 된다. 또 들어온 녀석들도 갑작스레 몸뚱이 째 들어온 게 아니고 “나 들어간다”고 경고도 하면서 한 발짝씩 서서히 조금씩 사정 봐 가면서 천천히 들어와 준 것을 알게 되면 그 점에 대해 고마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문제는 그 녀석들의 미리 부터의 경고를 내가 등한히 생각했기 때문에 그 놈들이 통째로 들어오게 된 데에는 내가 오히려 일조를 해 준 셈이니 그 녀석들만 미워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를 자책해야지 그놈들만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은 병원에 정기 진단 차 갔다가 집사람하고 둘이서 집 근처의 유명중국요리점으로 차를 돌렸다. 평소에 먹고 싶어 했으나 식이요법 상 먹기를 삼갔던 중국요리다. 오늘은 그 집에 맛있는 ‘게살 상어지느러미 스프와 깐쇼 새우’를 시켰는데 조금만 맛만 보겠다고 하고서는 반의 양은 내가 다 먹었다 그것도 이과두주를 한 잔 가득히 반주 삼아… 오늘은 집사람도 기꺼이 대작하며 두 잔이나 비웠다

이렇게 요리와 술을 즐기니 오늘은 모처럼만에 당뇨와는 상관없는 평소의 나로 돌아온 것만 같아 기분 좋게 이 글을 쓴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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