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9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하고자 집을 나서니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9시쯤 낯익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출국 절차를 거치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겸한 차 한잔을 마시고 11시10분발 KE9941편에 탑승했다.
인천에서 우즈베키스탄 나보이 공항까지 8시간정도 비행한다는데, 대한항공의 배려로 일행 모두 비즈니스석이라 그나마 덜 지루할 것 같다. 잠깐씩 눈 붙이며 책 한권 다 읽을 쯤 우즈베키스탄 영공을 날고 있다. 다행히 창 옆에 앉아 밖을 보니 황량한 벌판에 숲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물이 말라버린 꾸불꾸불한 강 자락 근처에 드문드문 마을들이 보인다. 온통 넓게 펼쳐진 밀반죽처럼 하얗고 평평한 맨 땅들이다.
하늘에서 본 모습은 마치 서부 영화에서 본 듯한 사막 같으며, 몇 시간 아니 며칠을 먼지 풀풀 날리며 달리다 보면 조그마한 마을이 나오는 장면 그대로일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정된 시간대로 현지시간으로 오후 3시 15분경에 나보이 공항에 도착했다. 나보이 공항은 우즈베키스탄 공군기지였다는데 공항이라기보다 한적한 시골 간이역 같다는 인상이며, 광활한 평야에 4㎞의 넓은 활주로는 무척이나 한가해 보인다.
밖을 보니 우리 일행을 맞이하고자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 나보이주의 환영단이 유목민족 고유 의상을 차려입고 고유 악기를 연주하며 앞쪽엔 가니예프 해외경제투자무역부 장관 및 주지사 기타 관계자들이 트랩에서 내려오는 우리 일행을 정중하고 반갑게 맞이한다.
영상 35℃라는데 햇볕이 무척 따갑고 습기없는 공기는 차라리 훈훈하다고 느껴진다. 인사후 바로 활주로 옆에 서있는 4대의 버스에 탑승해 곧바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로 향했다.
입국 절차며 짐 찾는 거며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생략된 채 일정대로 나보이 자유무역지구 견학이 시작됐다. 그런데 탑승 버스에 에어컨은 있으나 너무 더워 그런지 전혀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공항 옆 자유무역지구로 지정된 광활하고 드넓은 대지는 허허벌판에 초록은 없고 간혹 광활한 밀밭이 보이는데 반쯤은 추수를 했는지 비어있고 남아있는 밀밭도 정돈된 게 아니고 아무렇게나 씨뿌려 지맘대로 자란 듯한 야물지 못해 엉성한 밀들이다.
작열하는 태양에 몹시 을씨년스럽고 시간이 정지한 듯 한없이 한가해 보인다. 메마른 먼지를 날리며 허허벌판 자유무역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근처까지 단선의 철도가 들어와 있으며 열차가 정차해 있으며, 철도 옆엔 7~8개의 컨테이너가 하차돼 있다.
자유무역지구 중앙도로는 포장공사가 한창이며 도로 양옆엔 구역별 깃발이 나부낀다. 도로옆 커다란 지붕에 기둥만 있는 막사처럼 생긴 건물에서 나보이 자유무역지구에 대한 설명 및 장관의 환영사가 있었다.
|
▲나보이공항 자유무역지역 개발 공사현장 |
시멘트 바닥엔 황토먼지가 있고 파리가 무척 많았다. 얼마나 파리가 많은지 환영사 도중 손님들이 너나 없이 파리를 쫓다보니 장관께서 미안했던지 파리가 많은 것은 환경이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나보이가 ‘친환경적 도시’라는 말에 모처럼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주지사의 발전계획 설명이 끝나고 저녁 만찬장을 향하는 중에 모두 4대의 버스 가운데 4번째 버스인 우리 일행은 좀 더 나보이 공항의 현황을 둘러보고자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현지에 파견 나와 검게 그을린 용맹한 전사 같은 모습의 대한항공 조태연 상무의 탑승 안내로 한참 공사중인 화물터미널 및 공항 시설들을 둘러보고 만찬장으로 이동했다.
30여분 후 나보이 시내중심지의 제법 잘 꾸며진 정원과 넓은 1층건물의 환영장에 와보니 이미 만찬이 시작됐다. 우리 일행은 군데군데 빈자리에 앉다보니 나와 쉥커코리아 이우종 회장이 서로 반대편 통로에 자리 잡은 덕에 본의 아니게 계속된 민속공연단 춤 공연시 무희들에 이끌려 그네들의 춤사위를 따라 엉성한 폼으로 몇 차례 분위기를 맞춘다. 손님을 맞아 준비한 모든 것들에 정성이 담뿍 담겨있다. 옆에서 도와 주는 현지인들의 얼굴에 진지함과 친절함이 가득하다. 음식은 빵과 치즈, 양고기, 닭고기국수 그리고 야채 과일 등이다. 술은 보드카, 와인, 코냑을 한병씩 테이블마다 준비해놓았다.
체리와 살구가 무척이나 달았다. 그 까닭에 우리 일행의 손이 과일 쪽에 가장 자주 가는 것 같다. 닭고기국수 한 그릇과 양고기 조금 그리고 체리를 제법 많이 먹었다. 공연은 현지 언어의 노래와 고유민속춤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특히 예전의 우리나라 리틀엔젤스 같은 어린이들의 공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테이블마다 중년의 아줌마들이 서빙을 하는데 우리 테이블의 아주머니는 공연단의 노래를 연신 따라 부르고 잔을 계속 비우라는 시늉을 하며 술을 권한다. 몹시 순박해 보이고 친절하다.
2시간정도의 공연을 관람하며 식사와 술 그리고 과일들을 흡족하게 먹고 현지시간으로 7시40분경에 버스에 탑승하는데, 손님을 맞이했던 모든 분들이 버스 옆까지 나와 손을 흔들 정도로 순박하고 정겹다는 생각이 모두의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정이 흠뻑 담긴 손짓을 뒤로 하고 사마드칸트 숙소로 향했다. 경찰차가 버스 4대의 앞뒤에서 에스코트하며 2시간반에 걸쳐 시골길을 달린다. 버스 실내는 몹시 무덥고 파리들이 제법 많아 약간 귀찮을 정도다. 길옆엔 가로수가 꽤 많이 보인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본 포플라 나무가 대다수이고, 군데군데 길옆에 키 작은 바오밥나무처럼 생긴 기형의 나무들이 똑같은 키에 같은 모습으로 줄지어 서있다. 나중에 알아보니 뽕나무라고 하는데, 누에먹이로 오랜 세월 연한 가지를 계속 꺾다 보니 뭉퉁한 줄기가 마치 성냥꼴마냥 생겨서 끝에만 잎이 무성하다.
길거리엔 종종 나귀가 끄는 달구지가 사람을 태우고 부지런히 달린다. 길옆 몇 마리의 소나 양들의 풀을 뜯는 옆엔 어린 소년들이 한둘씩 앉아있다. 앞뒤에 경찰차가 불을 반짝이며 에스코트를 해서 그런지 대다수 어린이나 밭에 있는 농부, 길거리 주민까지 손을 흔들어댄다.
영락없이 1960년대 우리네 농촌 모습과 흡사하다. 순박해 보이는 시골 아낙들도 한두 사람씩 멀어 보이고 지루한 시골길을 마냥 걸어가는 모습이 시간이 정지한 듯 몹시 한가해 보이며 한편으론 마음이 짠하다.
8시반쯤 해가 지는 것 같으며, 어둠이 내렸는데도 길옆 마을 어귀엔 어른과 아이들이 삼삼오오 앉아 지나가는 우리 일행을 보고 일어서서 손을 흔든다. 현지시간 10시 10분쯤 사마르칸트 호텔에 도착했다.
밤에 본 사마르칸트는 우리나라 조그만 시(市)정도의 모습이나 도시 전체가 조금은 어두워 보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가방들이 도착해 있었으며, 각자 짐을 챙겨 체크인하니 공식적인 하루일정이 끝났다.
호텔내 물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비누거품이 잘 나지 않고 물이 좀 쎄다. 음료는 탄산수라 익숙지 않았다. 아침 7시 기상에 맞추기 위해 몸을 뉘어보나 쉬 잠이 들지 않는다. TV채널에 우리나라 방송이 2군데나 잡혔다. 하나는 아리랑채널이고 하나는 드라마를 계속 방영하는 현지 케이블방송인 것 같다. 왠지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식사후 8시40분에 버스를 타고 사마르칸트 관광에 나섰다. 첫 번째 방문지가 호텔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레기스탄(Registan)광장이다. 중세 이슬람의 신학교를 말하며 오늘날 가장 뛰어난 동양 건축물로 꼽힌다고 한다. 3개의 메드레세(신학교)로 둘러싸여 있으며 레기스탄 광장은 “모래의 광장 ”을 뜻한다. 사마르칸트가 과거 이슬람 티무르제국의 수도였으며 왕에 대한 알현식이나 공공집회도 이곳에서 열렸다는 설명이다.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매년 대통령도 참석해 “빛과 소리의 제전”을 열며, 특히 우리 일행이 레기스탄 광장 입구에 도착하자 사마르칸트 사범대학 한국어과 남녀 학생으로 구성된 11명의 사물놀이패가 지도교사의 지휘에 따라 흥겹게 사물놀이장단으로 일행을 환영했다.
주정부에서 여러모로 우리일행을 배려한 모습이 역력했다. 사원은 가까이서 보면 몹시 엉성한 타일에 손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색채나 그림도 정교하지 못해 보인다. 하지만 좀 더 멀리서 전체를 보면 화려한 문양과 조화가 경이롭다. 특히, 천정의 황금빛 문양은 몹시도 정교하고 웅장한 모습이다. 광장 한켠엔 체리나무의 탐스런 체리들이 꼭 우리네 버찌처럼 많이도 달려있다. 메드레세 위로는 제비 떼가 높고 낮게 비행한다. 문화재 곳곳에는 융성했던 타미르제국의 영화가 엿보이나 타민족 지배로 인한 민족정기 단절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
두 번째 방문지는 그르에미르묘(Gur-Emir:지배자의 묘)로 티무르 왕이 1404년 손자(마흐무트술탄)의 전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청색의 중세 건축 양식의 사원 건물로서 티무르 일족 유해가 안치돼 있다. 중앙에 티무르의 묘가 있고 가장 사랑했던 손자는 바로 우측 그리고 좌측에 3개의 아들들의 묘가 있다.
묘의 한 계단위 상단엔 티무르의 스승의 묘가 있다. 티무르는 스승을 존중해 자신의 묘보다 더 크고 더 위쪽에 모시라는 유언에 따라 구르에미르에서 제일 큰 묘는 티무르 스승의 묘이다.
돔 하수 벽에 코란의 문구가 문양화된 “알라는 위대하다” 라는 글이 쓰여 있다. 묘들은 모두 연옥으로 만들어 졌으며 흑녹색을 띄고 있고 유해의 머리는 모두 메카를 향하고 있다. 실제 유해들은 돔 지하에 안치돼 있다.
세 번째 방문지는 비비하님 모스크로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모스크로 티무르왕의 8명의 아내중 그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의 이름이 비비하님이다. 비비하님을 위해 짓도록 했다는 이 모스크는 티무르 사후 3년만에 완성되었다 한다. 사랑했던 여인을 위한 화려한 모스크를 보며 티무르제국을 호령하던 훌륭한 지도자도 사랑했던 연인에겐 한사람의 여린 남자였던 모양이다.
<계속>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