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8 14:03

기획/ 건화물선시장 조정세 해운업계에 藥 될까

최근 시황급락에 ‘보수정책’ 염두에 둬
올해도 ‘시황 강세’ 전망 우세…기초지표 변화없어


●●●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건화물선 운임지수인 발틱드라이인덱스(BDI)가 하락세로 전환한 후 조정국면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업계는 올 한해도 시장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최근의 조정국면이 장기적으로 벌크선 시황의 건전성을 강화하는 효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BDI는 지난해 11월13일 1만1039포인트까지 상승, 집계가 시작된 1985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벌크선 시장의 초호황세를 다시한번 실감케 했다. 이날 기록은 BDI 지수의 기준이 되고 있는 1985년 1월3일치 지수(1000)보다 11배 높은 것으로, 25년동안 운임이 BDI 상승폭 만큼 인상된 셈이다.

▲호주 프레멘틀항

지난해 건화물선 해운시황의 큰 특징은 케이프 및 파나막스 선형의 강세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들 선형의 운임지수인 BCI와 BPI는 각각 전년대비 110% 이상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같은 시황 호황세 속에서도 업계는 내심 벌크선 시황의 급락세를 우려하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지난해의 시황 폭등이 중국발 철광석 수요와 호주항만의 체선에 의한 것이어서 시황상승요인이 제거될 경우 공급과잉에 따른 급격한 시황 하락세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호주항만 체선 벌크선 시황 상승 ‘버팀목’

지난해 호주항만의 체선현상은 벌크선 시황 상승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호주항만 체선은 원자재 블랙홀로 떠오른 중국을 비롯해 극동지방의 수요 상승 등으로 지난해 더욱 심각한 모습을 띄었다. 호주 전 항만을 통틀어 150척 이상의 선박들이 늘상 대기해야 했고 호주 제2의 석탄수출 항만인 뉴캐슬항은 지난해 5월 68척이 줄지어 있는 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선박들은 호주에서 철광석을 싣기 위해선 2~3주 가량 기다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감수해야 했으며 심지어 1개월 이상 항만에 묶여 있던 선박도 보고됐다.

호주항만의 장기 체선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수요증가에 비해 항만 인프라가 뒤따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전통적인 석탄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되자 극동지역 주요 수입국이었던 우리나라 및 일본, 대만 등은 수입처를 호주 등지로 옮기게 됐고 수송선박도 호주항으로 일시에 폭주했다. 하지만 호주항만 시설은 갑작스런 선박쇄도를 감당할 만큼 여의치 않아 상시적인 체선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호주항 적체는 지난해 벌크선 시황 상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했다. 선박들이 호주항만에서 길게는 한달이상 묶이게 되면서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당초 공급과잉에 따른 시황약세를 점쳤던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한 대목이다.

호주의 항만적체와 함께 중국의 철광석 수요는 벌크선 시황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단초가 됐다. 지난해 전세계 철광석 해상물동량은 8.7% 성장한 7억8400만t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중국의 철광석 해상물동량은 2006년 대비 두자릿수(15%) 상승한 3억8천만t에 달해 전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49%를 차지했다. 2006년에 비해 4%포인트 확대된 것으로 전세계 철광석의 절반을 중국이 독식한 셈이다.

지난해 건화물선 시장의 상승세를 이끌었던 케이프 선형의 초호황세도 중국의 강한 철광석 수요가 뒷받침됐다. 중국이 지난 2003년 이후 철광석수송량 1위국의 자리를 지켜 오면서 일본, 한국 등에 비해 전용선 운용보다는 단기(Spot) 선박거래로 운송을 진행하면서 수요가 몰렸고 이것이 곧 철광석 운송을 전담하고 있는 케이프 사이즈 선박의 상승세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운임선물시장(FFA)이 활성화되면서 이를 이용한 투기자금의 유입도 시황 상승을 부채질했다. 최근엔 이들 투자가들이 현물시장에까지 뛰어들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벌크선 시장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지난해 11월 이후 BDI 지수의 급락세를 예로 들어 시황하락이 본격화될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과 함께 여러 호재요인이 많아 지난해만큼은 아니더라도 견실한 강보합세를 이어갈 것이란 예상이 엇갈린다. 다만 중국발 물동량의 강한 수요와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호주항만 체선은 시장을 떠받치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철광석 물동량 올해도 강세

또 지수를 통해서 볼 때 지난해와 같은 상승일변도 시황에서 벗어나 해운업계의 내성을 키우는 조정장세가 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해 11월 이후 하락세로 전환한 BDI 지수는 올 1월엔 최고치의 절반 수준까지 하락하면서 시황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1월29일 5615포인트로 바닥을 친 BDI는 2월로 접어들면서 다시금 상승세로 반전, 2월27일 현재 7천포인트선을 넘어 상태다. BCI도 1월28일 7189로 저점을 기록한 후 최근 다시 1만포인트선을 회복했다.


올해초 시황이 약세로 출발했다지만 시황상승을 뒷받쳐줄 소재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벌크선 강세의 첫번째 견인차는 무엇보다 중국효과를 등에 업은 물동량이다. 올해 세계 건화물 해상물동량의 상승세는 지난해와 비슷할 전망이다. 클락슨 및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건화물 물동량은 전년대비 4% 늘어난 30억96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중 철광석과 석탄, 곡물, 보크사이트·알루미나, 인광석 등 5대 건화물은 지난해보다 5% 늘어난 20억4800만t에 이르러 20억t을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세계 최대화물인 철광석 해상물동량은 8% 늘어난 8억4700만t에 달해 벌크선 시장의 효자노릇을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중국의 철광석 해상물동량 비중은 전세계의 52%로 확대돼 전세계 물동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을 기점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철광석 수요와 이를 원료로 한 철강 소비량은 올해 건화물선 해운경기에 큰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국제철강연맹(IISI)은 올해 전세계 강재소비량이 12억5060만t으로, 지난해에 비해 6.1%의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중 유럽과 나프타(NAFTA) 3국, 아프리카 등의 소비가 두드러지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중국과 독립국가연합(CIS) 등 기존 소비국들도 예년의 소비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이밖에 케이프 및 파나막스선박 화물인 석탄도 지난해보다 4% 늘어난 7억9천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중국 경제 급성장의 부담과 경제조절정책, 거품 가능성 등 중국의 불확실성은 시황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로 지적되기도 한다.

국제 철광석 가격이 상승세를 띄고 있는 점도 벌크선 시황에 호재가 되고 있다. 아시아 메이저 철강업체인 포스코와 일본의 신일본제철(니혼스틸), JFE 홀딩스가 공동으로 세계 1위의 철광석 공급업체인 브라질의 발레(옛 CVRD)와 올해 철광석가격을 65% 인상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와 신일본제철은 오는 4월부터 발레측에 철광석 가격을 t당 47.80달러에서 78.88달러로 올려줘야 한다.

세계 2위의 철광석 공급업체인 호주의 리오틴토는 65% 보다 높은 72% 인상안을 아시아 철강업체들에 제시해 최근의 업황 상승을 가늠케 했다. 브라질보다 호주가 운송 거리가 짧은 만큼 철강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적다는 점을 들어 ‘운송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 이같은 리오틴토의 움직임은 과거 메이저 업체 한곳이 철강가격 인상안에 합의할 경우 다른 기업들도 합세하는 이른바 일괄가격정책(One Price Fits All)의 관행을 깨뜨리는 것이어서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리오틴토의 인상안이 성공할 경우 업계 호황을 배경으로 한 기업들의 개별적인 가격 협상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최대 철광석 수입업체인 바오산강철(바오스틸)은 메이저 광산업체들과 가격 협상을 진행중이나 가격 인상폭이 발레의 65%보다 낮게 합의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시장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원자재가 인상은 시황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격 인상을 앞두고 수입하주들이 물량을 대량으로 들여올 가능성이 높고 선사들도 유가 상승분을 운임에 반영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수급 상황 ‘근소한 공급과잉’

올해 수급 상황은 물동량 상승과 함께 공급량 증가도 계속 이어져 2.4%의 근소한 공급과잉을 보일 전망이다. 해운업계 호황이 본격화된 2003년 이후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해도 물동량과 선박량은 비교적 균형을 이룰 것이란 관측이다.

올해 건화물선 선박량은 과거 발주된 선박들의 인도가 예상되면서 지난해보다 6.1% 늘어난 4억1400만DWT에 이르러 사상최초로 4억DWT를 돌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중 올 한해 신조인도량은 11% 늘어난 2830만DWT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2006년 신조발주량이 5천만DWT에 육박했을 뿐 아니라 발주선박의 상당량이 지난해 인도되지 못해 상대적으로 올해 선박증가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선형별로는 케이프사이즈는 소폭 감소하는 반면 파나막스나 수프라막스 등의 선형들은 두자릿수 이상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2003년 이후 높은 운임수준으로 기피됐던 선박해체는 올해부터 상승해 지난해보다 30% 늘어난 440만DWT에 이르러 신조선 유입량을 어느 정도 상쇄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지난 연말과 올초의 지수 급락에 대해 업계는 시장 기초체력의 악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계절적인 요인이나 일시적인 변수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의 세페티바항 사고에 따른 수송취소와 건설 수요가 감소하는 동절기 영향이란 분석이다. 이와관련 지난해 12월 발레에서 생산한 철광석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노르드스타호가 세페티바항 부두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으며 이로 인해 이 항만의 선적작업이 두달동안 마비된 바 있다.

대한해운 관계자는 “세페티바항의 철광석 선박 사고로 현물이 줄어들면서 건화물선 시황이 일시적으로 위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최근 들어 세페티바항이 선적을 재개하면서 철광석 운송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고 있고 BDI 지수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전했다.

세페티바항 사고가 시황에 독이 됐다면 중국의 춘절 폭설은 시황 상승에 힘을 보태고 있다. 중국이 폭설 여파로 석탄 수출을 금지키로 한 이후 세계 각국이 석탄 수입선을 호주나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전환하면서 톤/마일 증가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 유연탄 수입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과 대만, 일본 등 극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 금수조치의 장기화에 대비해 석탄 수입을 이들 국가로 전환할 경우 건화물선 운임은 높은 상승세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석탄 금수조치는 뉴캐슬 항만의 체선악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말 체선현상이 다소 완화되는 듯 보였던 호주 뉴캐슬항은 최근 들어 선박대기 척수가 30척에서 40여척으로 늘어났고 대기일 수도 20일로 확대된 것으로 전해진다.

건화물선 시장의 등락이 거듭되는 조정국면을 보이자 이같은 흐름이 시황에 장기적으로 ‘보약’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조정시황이 FFA를 활용한 투기자금의 퇴출로 이어지고 선사들의 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조정기를 거치면서 철저한 수익성을 토대로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기관들이 자본 투자를 재고하게 되고 선사들도 투기성 발주나 공격적인 용선을 자제하고 리스크에 대비한 보수정책을 염두에 둔다는 해석이다.

KMI 김민수 연구원은 “건화물선을 주도하고 있는 케이프 시장이 등락을 거듭하면서 벌크선 시장은 지난해 전망했던 것과 달리 조정국면을 맞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지수의 하락은 변수에 의한 하락세라기보다 해운 메커니즘이 안정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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