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26 17:58
상법 제789조의2 제1항 단서의 ‘운송인 자신’의 범위 -김현변호사
■ 대법원 2006.10.26. 선고 2004다27082 구상금
【원 고ㆍ피상고인】 N 주식회사
【피 고ㆍ상 고 인】 1. U 주식회사
위 U 주식회사의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세창
담당변호사 김 현, 송해연, 이광후, 안영환, 이연주, 하헌우, 강백용, 조철호, 황태규, 주진태, 박경홍
2. H 주식회사
【주 문】 1. 상고를 기각한다.
2.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피고 U 주식회사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7/2자에 이어>
1. 들어가며
대량의 물품 운송이 가능하지만 바다라는,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지역을 건너가야 하는 해상 운송은 불측의 손해가 발생할 염려가 큰 편이다. 또한, 선박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한번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모두 인정한다면 해상 운송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해상 운송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 위험을 감내한 대가로 운송료를 받게 되지만 만약 이러한 불측의 손해에 이르기까지 운송인에게 운송계약상의 책임 즉, 운송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하게 되어 모든 하주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면 운송인에게 너무 가혹하며 또한 파산할 것이 뻔하므로, 아무도 그러한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해상 운송인으로서 타인의 화물을 운송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운송인을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여 마련된 것이 ‘책임제한제도’이다. 운송인의 운송 중 화물에 손상이 발생한 경우 운송물의 무게에 따라 일정액만을 배상하게끔 책임을 제한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운송인의 책임이 제한된다면 운송인은 이를 악용할 소지가 크다. 즉, 운송인이 손상을 가장하여 화물을 도둑질할 수도 있고, 감정상의 이유로 고의로 화물에 손상을 입혀 하주에게 크나큰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경우를 명시하여 책임제한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으며, 상법도 제789조의 2에서 이를 규율하고 있다.
사안도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경우를 다루고 있는데, 이 중 특히 ‘운송인 자신’의 의미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하여 양 당사자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미 소개드린 바와 같이 본 사안의 경우에는 상고인의 여러가지 불만이 제기되고 있으나, 위에서 밝힌 ‘운송인 자신’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여 책임제한을 배제하느냐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었다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상법 제789조의 2 제1항 소정의 ‘운송인 자신’의 의미에 대하여 명확한 판단을 내린 본 판결의 요지를 살펴보고 이를 평석해 보기로 한다.
2. 판결요지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서 상법 제789조의 2 제1항 소정의 ‘운송인 자신’의 의미를 새김으로써 그 범위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켰다.
가. 상법 제789조의2의 제1항 본문에 의하면, 해상운송인이 운송물의 수령, 선적, 적부, 운송 등에 관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은 당해 운송물의 매 포장당 500SDR을 한도로 제한할 수 있으나, 한편 같은 항 단서에 의하면, 운송물에 관한 손해가 운송인 자신의 고의 또는 그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생긴 것인 때에는 이러한 책임의 제한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 위 조항의 문언 및 입법연혁에 비추어, 단서에서 말하는 ‘운송인 자신’은 운송인 본인을 말하고 운송인의 피용자나 대리인 등의 이행보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 단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겠으나, 법인 운송인의 경우에 있어, 그 대표기관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만을 법인의 고의 또는 무모한 행위로 한정하게 된다면, 법인의 규모가 클수록 운송에 관한 실질적 권한이 하부의 기관으로 이양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 단서조항의 배제사유는 사실상 사문화되고 당해 법인이 책임제한의 이익을 부당하게 향유할 염려가 있다.
다. 따라서 법인의 대표기관뿐 아니라 적어도 법인의 내부적 업무분장에 따라 당해 법인의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특정 부분에 관하여 대표기관에 갈음하여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이사회의 구성원 또는 임원이 아니더라도 그의 행위를 운송인인 회사 자신의 행위로 봄이 상당하다.
3. 책임제한배제사유
상법은 책임한도액을 높인 대신 청구권자가 선박소유자의 책임제한권을 배제하는 것을 극히 어렵게 하였다. 상법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경우에 있어서만 운송인의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즉, ① 손해가 운송인 자신의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생긴 경우나, ② 선박소유자가 고의 또는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의 경우가 그것이다. 결국 운송인이 인식하고 있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나 일부러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에 이러한 운송인까지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운송인은 하주의 손해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듯 상법은 책임제한제도가 그 취지에 맞게 활용될 수 있도록 적절한 장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1976년 조약, 바르샤바 항공협약 및 헤이그-비스비 규칙, 아테네 해상여객운송조약 등에서 나타난 책임제한 법리를 그대로 따른 결과라 할 것이다.
4. 평 석
상법 제789조의 2 이하에서는 책임제한이 배제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상법은 ‘운송인 자신’의 행위로 명시하고 있으며, 운송인이 법인인 경우에는 적어도 이사 이상의 지위 즉, 법인의 행위로 볼 수 있는 자의 행위가 법인에게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왔다. 사안의 경우에는 이사의 자격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사실상의 법인의 의사 즉, 법인의 행위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에 의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러한 책임제한배제사유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상고인은 이를 이사 이상의 직위에 있는 자가 아니므로, 책임제한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피상고인은 이사 이상의 직위에 있는 자는 아니지만, 상기 운송 과정에 있어서 법인의 의사결정 등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자에 의한 행위이므로, 운송인인 법인의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책임제한제도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례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법인의 행위로 보기 위해서는 직위에 한정하여 명확히 구별할 것은 아니고, 실제로 법인의 관리 업무의 전부 또는 특정 부분에 관하여 대표기관인 대표이사, 이사 등에 갈음하여 사실상 회사의 의사결정 등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자가 있다면 이를 법인인 운송인 자신의 행위로 보는 것이 이치에도 합당하다 사료된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여 상고인의 상고를 기각한 대법원의 판단은 책임제한제도 및 그 배제 등을 규정하고 있는 상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하겠다.
상기 판례는 통상적으로 ‘운송인 자신’의 행위는 법인인 운송인의 경우 이사 이상의 직위에 있는 자의 행위가 아니면 이를 운송인의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선례를 깨고 그 업무의 특성 및 역할의 정도에 따라 운송인 자신의 의미를 재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모쪼록 모든 운송법인들이 이러한 판례의 입장을 이해하고 책임제한제도 및 그 배제의 경우도 숙지하여 책임제한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는 좋은 기준으로 기억해둘만 하다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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