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25 10:29

우리나라 수송물류사 ‘큰 별’ 지다

우리나라 수송물류사에 한 획을 그은 거인이자 한진그룹의 창업주이신 정석(靜石) 조중훈(趙重勳) 회장이 17일 하오 13시 노환으로 인하대학교 대학병원에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고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25세인 45년 트럭 한 대로 인천시 해안동에 수송업체인 한진상사를 시작으로 57년 동안 오로지 수송보국의 일념으로 외길만 걸어왔다. 고인은 “수송은 인체의 혈맥과도 같다”며 우리나라의 땅과 바다, 하늘 길을 개척하는데 한 평생을 바쳐 오늘날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규모 재계 5위, 연간 매출 15조원의 육해공 수송물류 전문 그룹으로 키웠다.
고인은 항상 국가 이익이 기업 이익에 우선한다는 생각에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소명의식과 자부심으로 국익을 위한 민간 외교 활동에 적극 나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벨기에, 몽골 등 각 국으로부터 수많은 공로 훈장을 받았다.
고인은 기업 경영에서 인재 양성을 최우선시 하였고 육영사업에도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 일찍이 인하대학교, 한국항공대학교의 인수는 물론, 평생교육, 평생직장 분위기 조성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사내대학을 개설한 것도 고인의 사람을 중시하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고인은 전경련 부회장, 한불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 한국 유네스코협회연맹 초대 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일(金貞一) 여사, 대한항공을 맡고 있는 장남 조양호(53) 회장, 한진중공업 조남호(51) 부회장, 한진해운 조수호(48) 부회장, 메리츠증권 조정호(44) 부회장을 포함해 4남1녀이다.
빈소는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 18층에 차려졌으며 한진그룹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21일 김포공항 대한항공 본사 빌딩에서 열렸으며 장지는 경기도 신갈이다.

조중훈회장 일대기
趙重勳 회장의 일대기는 우리나라 근대사 및 경제 개발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3·1 독립운동 이듬해 태어나… 일본서 조선기술 익혀

趙重勳 회장은 1920년 음력 2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기미년 3·1 독립운동 이듬해다. 그 무렵 日帝는 3·1운동으로 표출된 우리의 민족적 저항운동을 무마하고자 소위 文化政治로 전환하고 있던 때였다. 아울러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고 우리나라를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兵站 基地化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가 趙회장의 소년 시절이었다.
방정환, 안창남, 나운영 씨 등이 졸업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소재 미동초등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보를 중퇴한 뒤, 한국해양대학의 전신인 鎭海海員養成所를 수료한 趙회장은 약관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식민지 국가의 청년이 이국 땅에서 어떠한 고초를 겪었을까 하는 것은 누구나 상상해 볼 수 있는 일. 한편으로는 造船 기술을 익히며 돈을 벌고 밤에는 독학을 하는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배를 타고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돌아보기도 했다.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돌아와서 보링공장을 운영하였으나 당시 군수사업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제의 기업정비령에 의해 문을 닫아야 했다.

해방되던 해 仁川에서 韓進商事 창업

그러던 1945년 해방을 맞이한 그 해 11월 1일 趙重勳 회장은 仁川에서 韓進商事의 간판을 내걸고 반 백년이 넘는 수송 외길 인생에 뛰어들었다. 韓進商事는 출범 2년 뒤에 화물자동차 열다섯대를 보유하고, 교통부로부터 경기도 일대의 화물운송 면허를 정식으로 받을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겨우 중소기업의 테두리를 벗어나 발돋움하려던 차에 6·25의 발발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중요한 차량 장비들이 군수 물자로 동원되어 뿔뿔이 흩어졌고, 韓進商事는 전쟁의 와중에서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그러한 참담한 상황 속에서 趙重勳 회장은 폐허 위에 가건물을 세우고 피난 때 몰고 갔던 트럭 한대로 밤낮없이 회사 재건에 몰두했다.

확실한 ‘신용’으로 국제적 신임 얻어

韓進은 1956년부터 주한미군의 용역사업에 참여했는데, 이 무렵 성남의 어느 트럭회사로부터 임차 사용한 차량의 운전사가 겨울 군복인 파카를 트럭째로 남대문시장에 팔아 넘긴 사고가 발생했다. 수사를 의뢰한다거나 섣불리 손댔다간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원성은 물론, 아예 물건마저 자취를 감추어 회수가 불가능해질 상황이었다.
趙회장은 직원 한명을 시장에 상주시켜놓고 물건이 나돌기를 기다려, 결국 전부를 되사들였다. 물론 큰 손해였지만, 미군들의 확고한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
趙회장의 문제해결 능력과 신용을 지키려는 자세를 본 미군 장성들은 그후 韓進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이들은 나중에 월남의 주요지휘관으로 부임했고, 趙회장이 쌓아올린 교분과 신용은 韓進의 월남 진출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韓進그룹은 월남전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1966년에 駐越 미군사령부와 790만 달러의 계약을 성사시킨 이래 1971년 전쟁 종료시까지의 5년간 韓進그룹이 획득한 외화는 총 1억 2천만 달러 규모였다. 1964년 7월 현재 韓國銀行의 가용외화가 4천 7백만 달러였음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큰 금액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60년대 말부터 ‘수송외길’ 사업 확장

이렇게 축적한 경험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趙회장은 1960년대 말부터 사업을 크게 확장하였다. 한국항공, 한국공항, 한진해운, 한진관광, 한일개발 등등 여러 회사를 창립하거나 인수하였는데, 수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이를 보조할 수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대한항공공사, 해운공사의 후신인 대한선주, 대한준설공사, 대한조선공사 등, 손댈 수 없을 만큼 부실화된 국영기업체들을 자의반 타의반 인수하여 엄청난 열정을 쏟아부어 되살려냈다. 이렇게 인수한 국영기업들도 모두 운송 관련 사업임을 볼 때, 趙회장이 평생 한눈을 팔지 않고 전문분야에 집중하는 외길 인생을 살아왔음을 엿볼 수 있다.

幸運 기대하기 보다 판단력과 비젼 중요시

이러한 趙회장이었기에, 그가 남긴 어록 중에는 기업 경영의 핵심과 世人의 의표를 찌르는 표현들이 많다.
趙회장은 ’幸運은 남이 거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 빠진 요행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기업을 발전시키거나 위기상황에서 구하는 것은 운이나 요행수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최고경영자의 시의적절한 판단과 결단력, 미래를 내다보는 비젼, 그리고 무엇보다 뼈를 깎는 노력만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기업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또한 趙회장은 한 걸음 한 걸음 건실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것, 즉 ’지고 이기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비결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도난 당한 물건인데도 큰 손해를 감수하고 돈을 들여 다시 사들이는 것처럼, 당장은 손해를 보면서도 결국엔 보다 큰 결실을 거둔 많은 에피소들은 임직원들 사이에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눈앞의 이익 겨냥한 문어발식 확장 싫어해

趙회장은 남의 흉내나 내는 모방사업, 즉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확장을 거듭하는 무모한 행동도 자제했다.
‘낚시대를 열개 스무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는 그의 말은 이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기업은 반드시 ‘국민경제와의 조화’라는 거시적 안목에서 운영해야 하며,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문어발 식으로 무작정 확장시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趙회장은 이처럼 지난 50년간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하거나 흉내내지 않고 남이 안하는 일을 한발 앞질러 하려고 노력해왔다.
집무실 한 켠에 ‘輸送報國’이라는 휘호를 걸어놓고 외길을 매진해온 결과, 韓進그룹의 21개 계열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5대양 6대주에서 한민족의 영토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이것저것 다루었다면 결코 이루기 힘들었을 독보적인 위상이다.

외화획득 통한 성장 바탕으로 ‘민간외교관’ 역할

趙회장은 韓進그룹 사업의 밑거름이 초창기부터 외화획득을 해서 이룬 것임에 큰 자부심을 가져왔다. 월남 진출은 물론 그보다 앞서 국내에서도 미군 용역사업을 통해서 외화를 획득한 것이고 大韓航空 민영화 이후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해외 노선망을 개척해 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실제로 항공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항공대국을 이룬 것에는 趙회장의 공이 매우 크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비롯 국내외에서 여러 훈/표창을 받았고, 특히 레종 도뇌르 그랑 오피시에와 같은 최고 권위의 프랑스 훈장을 네 차례나 받는 등 ‘民間外交官’으로서의 역할에 남다른 노력과 자부심을 보여줬던 趙重勳 회장이었다.

육영사업 등 사회에 대한 기여에도 큰 관심

기업이 사회 복지 증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바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게 趙회장의 평소 지론이기도 했다. 그러한 취지에서 1968年 仁荷學園을 인수했으며, 1979년에는 靜石學園을 설립, 여건이 허락하는 한 학교시설의 확충과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최대한 재정 지원을 해왔다. 특히 靜石高等學校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돌산을 깎아 교사를 건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젊은 학생들이 인천 시가지와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浩然之氣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趙회장은 2년여에 걸친 교사 신축공사 기간 중 거의 매주 현장에 내려가 직접 감독을 할 만큼 애착을 가졌다.
이밖에도 趙회장은 자신의 아호를 따 靜石敎育賞과 靜石將學金을 설립하였다. 제주도 교육 발전을 위해서도 적지않은 자금을 출연, 매년 학생과 교사들을 지원해 왔다.

미래 내다 본 결단력 대단

기업 내부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1988년부터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의 기회를 갖지 못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국내 최초의 사내 산업대학인 韓進産業大學 (현재의 靜石大學)을 개설했다.
육영사업에 대한 그의 열정은 21세기 이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켜나갈 동량들을 양성하는데 보탬이 되고, 그룹내 모든 직원들도 회사의 발전을 넘어 국가의 안녕과 발전에 일조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趙회장은 사업을 하는 동안 결코 섣부르게 만족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항상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려 애써왔다. 6공 시절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 사태가 잇따를 때, 대단위 토지가 분할되면 결국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말 것이라는 신념으로 몇몇 대학과 장학재단에 기부한 일화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땅을 다시 임대하여 최근 포화상태에 이른 제주공항의 대체공항으로서의 역할까지 거론되는 비행장을 건설한 것이다.
그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그 땅은 지금쯤 골프장이나 유흥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게 지역 인사들의 증언이다.

사업을 예술이라 믿은 수송업계의 代父이자 거인

이런 의미에서 趙회장은 ‘사업은 藝術’이라고 믿었다. 예술작품이 조화와 균형, 개성과 창의력이 있어야 비로소 가치를 지니듯, 기업도 국민경제와의 조화를 이루며 국민들의 복지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며, 창의와 열정의 뒷받침이 있어야 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에게 정년이 따로 없듯이 기업인에게도 정년이 따로 정해질 수 없다’는 신념으로, 와병 중에도 집무실에 자주 나와서 주변을 정리해왔다.
예술작품을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기업을 가꾸고 발전시켜 우리 국가 국민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하는 韓進그룹을 만드는 일, 명실상부 세계적 종합물류 그룹으로서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나아가 기업으로서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에 마지막까지 전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 그것이 企業藝術家로서 평생을 일관해오며 수송업계의 ‘代父’이자 ‘巨人’으로서 역할을 해온 그의 소망이었던 것이다.

故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추모 열기 이어져

17일 타계한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빌딩에는 첫날 2000여명이 조문을 하는 등 고인의 명복을 비는 각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18일 나라발전과 경제에 큰 일을 한 분을 잃었다고 애석해 하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빈소로 보내 조의를 표한데 이어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자민련 총재, 박태준 전 총리, `하나로 국민연합' 이한동 후보,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 김만제 전 포철회장,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 오명 아주대 총장 등이 직접 빈소를 다녀갔다.
이에 앞서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와 권병현 전 주중대사 등이 이날 오전 각각 빈소를 찾았고 전날인 지난 17일 밤에는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가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재계 인사로는 김각중 전경련 회장, 김창성 경총 회장, 구본무 LG 회장, 유상부 포스코 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삼구 금호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김갑열 LG건설 사장, 신재철 한국 IBM 사장, 조우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 등이 빈소를 찾았다.
언론계에서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최학래 한겨레신문 사장, 박용수 CBS사장,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등이 고인을 기리며 분향했다.
임인택 건설교통부 장관은 18일 빈소를 찾아 우리나라 항공,육상,해운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추서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해양소년단 연맹은 19일 우리나라 해양발전 기여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장보고 대기장을 추서했다.
해운관계 인사로는 김호식 해양수산부 장관, 현영원 한국선주협회 회장, 김재철 무역협회회장, 조정제, 이항규 전 해양수산부 장관, 유정석 해양수산부 차관, 강창성, 염태석, 이부식, 김철용, 한준석 전 해운 항만청장, 전승규 한국선급회장, 김성수 해운조합 이사장, 김성규 선박기술협회 회장, 김찬갑 전 교통부 장관, 박찬재 한국선주협회 전무, 양길용 동남아해운 회장과 이승현 사장, 전문준 고려해운 사장, 정태순 장금상선 사장, 김용대 동방그룹 회장, 정평섭 세방회장을 비롯한 해운업계 관계자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마하티르 말레이지아 총리는 조문특사인 나나링감 (G.Gnanalingam) 웨스트포트 터미널 (West Port Terminal) 회장을 한국에 파견하였고, 응치경 (Ng Chee Keong) 싱가폴 항만공사 (PSA) 그룹 사장도 직접 한국을 방문, 분향했다.
한진해운은 서울 여의도 본사 사옥 대강당을 비롯, 부산 등 국내 2곳과 뉴욕, 싱가폴,상해, 함브르크등 해외 지역본부 4곳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싱가폴을 방문중이던 톰 힌리히 에켈만 (Tom Hinrich Eckelmann) 유로카이 (Eurokai) 그룹 사장이 한진해운 서남아지역본부에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는등 해외에서의 조문행렬도 이어졌다.
한진해운은 18일 11시에 전직원이 고인에 대한 묵념을 한데 이어 영결식이 있던 21일 오전 10시에 묵념을 했다.
한진그룹은 분양소에 직접 오기 힘든 조문객을 위해 인터넷상에 사이버 분향소(chumo.hanjin.net)를 설치, 인터넷 분향소에는 조 회장의 별세를 안타까워하는 1만 2천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하였다. 인터넷 분향소에는 조 회장의 일생을 회고해 볼 수 있는 컨텐츠와 사진들이 게재되어 있다.
한편,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18일 조회장 별세에 대한 논평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한진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며 “고인께서 일으킨 육·해·공 수송산업은 이 나라 경제발전을 위한 동맥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도 같은날 논평을 내고 “재계의 큰 별이 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명복을 빌고, “종합 수송사업을 일으키는 데 평생을 바친 고인이 우리 근대화 과정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영향은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각중 전경련 회장, 남덕우 전 총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등은 조사를 통해 하늘, 바다, 땅 길을 연 우리나라 수송업계 큰 별인 조 회장의 타계에 애도를 표했다.
영결식은 21일 오전 7시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에서 발인, 소공동 해운센터와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등을 거쳐 10시에 대한항공 김포 본사에 도착하여 거행될 예정이다. 고인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하갈리에 위치한 선산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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