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8 09:04

특별기고/ 항해용선의 계약해제일 이후 정박기간 개시시점

김명재 목포해양대 교수(경영학박사)


실무에서 부정기선 항해용선계약의 정박기간(Laytime)과 관련한 조항은 계약 당사자에 따라 체선료와 조출료 등 운임 이외의 추가적인 손실과 이익이 발생되는 부분이므로, 선주와 용선자 간에 다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안이다. 특히 선박이 계약 해제일(Cancelling Day)을 지나 선적항에 도착한 경우 정박기간 개시 시점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해 상황에 따라 다양한 판례와 해석 기준이 존재한다. 특별한 부가적인 조항이 없을 경우 표준계약서의 해석과 관련해 선박 운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례를 소개해 보도록 한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발트해운동맹(BIMCO) 제정 ‘GENCON 1994’ 계약서에서 정박기간은 선박이 선적 또는 양하항에 도착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역 준비 완료 통지서(Notice of Readiness: NR)를 발행함으로써 개시된다. 그러나 선박이 직전 항차의 하역이 지연되거나, 선박 자체의 결함 또는 항해 중 황천에 조우하는 등 불가피한 사유로 당해 항차의 계약 해제일을 지나 선적항에 입항하는 경우, 용선자가 계약해제일을 연장함에 동의했더라도 정박기간은 실제로 화물의 선적이 개시되는 시점부터 계산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GENCON 계약서 상의 ‘선적 준비 가능일 및 계약해제 약관’(Lay & Cancelling Day Clause)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Layday는 화물 선적을 개시할 수 있는 최초의 일자를 말한다. 화주는 이 날짜까지 화물을 부두에 준비시켜 선적에 이상이 없도록 모든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선주는 이때부터 선박에 화물을 선적할 수 있는 선택적 선적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Cancelling Day는 선박이 이 날짜까지 선적항에 도착해서 화물을 선적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춰야 하는 의무가 있고, 용선자(화주)는 이날까지 해당 선박이 선적항에 도착하지 않을 경우 본 운송계약(항해용선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용선자의 계약 해지 권리를 둔 이유는 용선자 즉, 화주가 화물을 부두에 준비시키고 모든 선적 준비를 완료하기까지 수출 통관과 화물 내륙운송 등 수출입 절차에 필요한 각종 물류 비용이 발생하며, 화물이 부두에 반입되는 순간부터 부두사용료 등 제세 공과금이 부과되는 비용 부담이 수반되고, 신용장 등 무역거래 조건에 따라 수입자(수하인)에 대해 정해진 일자에 따른 선적 의무 등과 같은 조건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화주의 입장에서는 선박의 지연에 따른 상기와 같은 제반 비용 부담 이외에도 납기 지연으로 수입자로부터 물품 매매 계약 해지와 납기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위험과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꺼이 본 운송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선주와 대체 선박으로 운송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넷째, 용선자는 선적 준비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원래의 선적 일자의 계획에 따라 정해진 기한으로 부두의 접안 선석 등 선적 시설을 확보했으나, 본선이 원래의 기한을 어겨 지연됨으로써 일찍 입항한 다른 선박이 그 부두의 접안 선석을 차지(항만은 먼저 입항한 순서대로 부두 접안을 하게 됨)하거나, 날씨 등 일기의 변화가 있을 경우 예견하기 어려운 추가적인 상황이 생겨 본래 의도한 정상적인 기한과 절차대로 선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등 정박기간과 관련해 용선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판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The Laconia’〔1985〕 1 Lloyd’s Rep.518 사건에서 영국고등법원(England High Court)은 “계약해제일이 당사자 간에 합의됐고 선박이 해당 날짜 이후에 선적 항구에 도착한 경우 실제로 선적이 시작될 때까지 정박 시간이 시작되지 않는다.” 그 이유로 “취소 날짜를 정한 목적은 용선자가 필요한 선적 시설을 제공할 수 없는 경우 지연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박 시간 개시는 실제 선적 시작과 연결돼 있다.”라고 판결했다. 

또한 유사한 판례로서 ‘The Johanna Oldendorff〔1974〕 2 Lloyds Rep.18 사건에서 영국고등법원은 선박이 예상 도착 시간 이후에 도착하더라도 화물 적재가 시작되면 정박 시간이 개시돼야 한다.’라고 해 용선자가 약정한 선적 기간(Lay & Cancelling Day) 내에 준비해야 하는 접안장 등의 선적 시설 제공 의무 책임을 선박이 지연될 경우 면하게 되지만, 화물 선적 작업이 개시 될 경우엔 정박기간이 개시돼야 한다는 시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무에서 궁극적으로 특정 용선계약의 해석은 특정 조건과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 다만 용선계약서 문언 작성의 중요성을 고려하고, 그러한 계약 조건이 모호하거나 불분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선 선박 지연에 따른 정박기간 개시 시점을 명확히 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부가 삽입되면 좋을 것이다. 

“If for any reason the vessel is not ready to load charterers’ cargo due to default of the vessel, then all such delays not to count as laytime used or time on demurrage.”

선박은 해상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무대로 움직이는 물체이므로 날씨와 파도, 그리고 국제적인 정치, 경제, 환경 등의 돌발변수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선박이 계약상의 Cancelling day에 맞추지 못하고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 선주는 용선주에게 서면 또는 구두로 Cancelling Day 연장을 요청하게 되고, 용선주는 이러한 요청을 받고부터 48시간 이내에 수락 여부를 선주에게 통보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만약 48시간 이내에 용선주가 선주에게 아무런 통지가 없다면 수락한 것으로 간주하고, 48시간이 지난 시점부터 1주일간 새로운 Cancelling Day가 연장된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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