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자에 이어>
1. 시작하며
이번 호에서 소개할 사안은 선원이 해양에 오염물질을 배출한 혐의로 기소된 사안에서 선원과 선박관리회사가 함께 기소된 사건이다. 선원의 유죄는 명백했으나, 선박관리회사의 형사책임은 심급마다 판단이 달랐다.
2. 사실관계의 요약
이 사건에서 선원 이모씨 (이하 1항사)는 오염물질을 해양에 배출했고 이것이 적발돼 기소에 이르렀다. 1항사는 물론 선주 소속의 직원이었다. 이러한 행위에 관해 양벌규정이라고 해 그 감독의무자를 같이 기소해 처벌받게 한다. 그런데 검찰은 ‘이 선박의 관리를 포괄적으로 선박관리회사(이하 “관리사”)에 맡겼다’고 하는 선주의 항변을 받아들였는지 양벌규정의 적용을 받을 자를 관리사로 보아 위 선원과 함께 관리사를 기소했다.
관련된 법 조항은 아래와 같다: 해양환경관리법
제22조(오염물질의 배출금지 등) ① 누구든지 선박으로부터 오염물질을 해양에 배출해서는 아니 된다.
제130조(양벌규정)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해 제126조부터 제129조까지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과)한다. 다만, 법인 또는 개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무에 관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3. 사건의 진행
가. 이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서 관리사를 무죄로 보았다.
(1) 1항사가 승선한 선박의 소유자는 관리사가 아닌, 선주인 점, (2) 선박을 이용해 해상화물운송사업을 영위하는 주체 역시 선주인 점, (3) 각종 법규에 따라 국제기름오염방지증서, 해양오염방지검사증서 등을 한국선급으로부터 발부 받은 자는 선주인 점, (4) 해상운송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는 선원 채용이나 선용품업체 선정 등에 있어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시간 및 비용 절감 등을 위해 관리업체에 선원선정 및 관리 업무를 포괄적으로 위탁하는 경우가 있으며 피고인인 관리사는 선주와 선원관리계약을 체결하고 선원의 선발, 추천, 관리업무를 수행했지만, 선원들에 대한 최종 고용 결정권은 선주 측에 있는 점, (5) 선원법 제2조 제9호는 “선원근로계약이란 선원은 승선해 선박소유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선박소유자는 근로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1항사는 선주와 선원근로계약을 체결했고, 그 계약에 따라 이 사건 선박에 승선해 노무를 제공했으며, 선주가 1항사에게 임금을 지급한 점, (6) 관리사는 선주로부터 관리수수료만 지급받고 선주가 지급한 임금을 1항사 등 선원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을 뿐 1항사 등 선원들에게 자신의 비용으로 임금을 지급하지는 않은 점. 즉 1심은 관리사는 관리업무 수탁자(수급인)일 뿐, 선원에 대한 지휘감독을 하는 선주(선원의 고용주)가 아니므로 양벌규정으로 처벌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 이에, 검찰이 위 판결에 항소했고 2심은, 1심과 달리, 아래와 같이 판단했다: (1) 양벌규정의 취지는 선박의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지 혹은 위반행위를 한 사용인과 직접적인 고용계약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위반행위자에 대해 실질적으로 주의 또는 관리, 감독 의무를 부담하는 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어, 해양환경보존을 위한 벌칙규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인 점, (2) 비록 피고인과 1항사 사이에 민사상 고용계약이 체결되지는 아니했으나, 피고인은 당해 선원에 대해 관리 감독의무를 부담하는 자로서 그가 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오염물질 배출행위를 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므로, 그는 피고인의 사용인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점.
2심은 관리사가 1항사를 관리 감독하는 자라고 보아 양벌규정으로 처벌돼야 하는 자로 파악했다. 관리사 측은 이에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심리불속행으로 끝났다. 즉, 대법원이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서 판단한 것은 아니지만 관리사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4. 양벌규정으로 처벌될 자가 선주인지 또는 관리사인지
위 사건에서 선주는 기소되지 않았다. 양벌규정에 있어 감독의무자는 통상적으로 위반행위를 한 자를 고용한 사람(또는고용주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이다. 그런데 법원의 양벌규정에 관한 입장이 반드시 일관된 것은 아니다. 지입차량 운전자가 위법행위를 한 경우 “지입회사가 지입차량의 운전자를 직접 고용해 지휘·감독을 한 바 없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지입차량의 운전자를 지휘·감독할 관계에 있는 사용자로서 그 지휘·감독의 소홀에 따른 책임을 진다”고 했다.
또, 직원의 불법행위가 있을 시 고용주가 질병으로 입원해 그 불법행위를 저지할 수 없었던 때도 양벌규정으로 처벌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립학교에서 위법한 행위를 한 직원의 행위에 양벌규정을 질 자로 학교재단이 지목된 사건에서 재단이 실질적으로 교직원을 감독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선주의 대리인 내지 수탁자 격인 관리사를 양벌규정으로 처벌한 이 사건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선주가 관리사에 선박 관리를 맡겼다는 이유로 기소하지 않은 게 합당한지 더욱 의문이 든다. 선박에 대한 감항성 유지 등 안전관리의무는 공법적으로 선주에게 부과된 것이다. 영미법에서는, 안전관리의무 부담자가 상사적으로 타인에게 그 업무 수행을 위탁(도급) 줄 수 있으나, 공법적으로 부과된 선주의 안전관리의무가 타인(관리사)에게 넘어가지 않음이 인정된다. 그러한 의무는 불가양의 의무(Non-delegable duties)로서 위탁과 무관하게 선주에게 남는다. 이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볼 때 당연하다.
5. 마치며
이 건에서는 선주가 기소되지 않아, 선주 자신의 유무죄가 명시적으로 판단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관련법령의 취지를 오판을 해 그리 된 것으로 보이고, 결과적으로 이 선주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근래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인해 업무관리를 관리사에 맡긴 경우 원청의 책임이 강조되는 추세에 비춰 이 건처럼 선주가 양벌규정이 있는 사안에서 기소조차 안 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건 선주는 용케 처벌을 면했고, 관리사는 유무죄가 엇갈리면서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본건은 양벌규정에 관해 수사기관과 법원의 일관된 태도 정립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끝>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