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7 09:07

판례/ “빗나간 기상예보”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2.13자에 이어>
 
④ 이 사건 사고 이전인 2015년 12월14일 실시한 피고 측 선체 및 기계조사(한국해운조합의 선박공제에 가입하기 위해 선박검사를 받음)에서 이 사건 선박의 상태는 측면 외판의 경우 페인트로 도장돼 배의 운항에 제공될 수 있고, 노천갑판의 경우 양호했으며, 화물칸의 울타리 판은 만족스러운 상태였고, 빈 공간의 경우 강철재에 녹이 존재하나 구조적으로 배의 운항에 이용될 수 있는 상태였으며, 방수의 경우 모든 문과 맨홀 덮개는 일반적으로 잘 관리돼 물이 들어올 수 없는 상태였고, 방벽의 강철재는 만족스러운 상태였으며, 정박 및 계류 장치, 기계장치, 항해표시등은 양호한 상태로 이 사건 선박의 목적한 이용에 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⑤ 이 사건 화물은 이 사건 선박의 신규 제작된 철재 펜스로 이루어진 선창에 고르게 선적됐고, 선적 결과 출항 당시 이 사건 선박의 높이는 선수가 2.08m[= 선박 높이 5.10m - 선수 흘수(draft) 3.02m], 선미가 0.9m[= 선박 높이 5.10m - 선미 흘수 (draft) 4.20m] 됐다.
(나) 이 사건 사고 당시 기상에 관해
① 이 사건 선박의 출항 직전인 2016년 4월15일 11:00경 기상청은 “2016년 4월16일 밤부터 4월17일 새벽 사이에 강한 남서풍이 불겠고, 시간당 10mm 이상의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으며, 서해중부해상의 물결은 먼바다 1~3m로 높게 일겠다”는 내용으로 일기 예보를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사건 사고 해역에 호우 특보와 강풍 경보가 발령됐고, 2016년 4월16일 17:00경부터 사고 발생 시점인 2016년 4월17일 6:30경까지의 풍 속은 초속 10.1~17m, 파고는 2~6.7m, 시계는 0.4마일에 이르렀고 강한 비가 동반됐다.
② 한편, 2015년 4월의 연근해 기상통계에 의하면, 서해 남부 먼바다에서 위 기간 동안 초속 10m 이상의 풍속이 분포될 확률은 3.7%로 집계됐다.
(다) 이 사건 사고 해역의 상황 및 사고 원인 조사
① 이 사건 사고 장소의 해저는 평평했으며 가는 진흙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곳이다. 만조일 경우에는 깊이가 11m, 간조일 경우에는 깊이가 8m이다.
② 이 사건 선박의 수직면에 1미터 정도를 제외하고는 균열이 발견됐고, 선박이 V자로 굽어져 해저에 접촉해 있는 면은 안으로 굽어져 있었다. 이 사건 선박의 평평한 선저 부분에는 균열이 발견되지 않았다.
③ 이 사건 사고 발생 원인에 대해 원고 측 모든해상손해사정 주식회사는 검정보고서에서 “선체의 결함 또는 항해 중 누적되며 선체에 집중된 피로(fatigue) 또 는 주장돼진 악천후나 좌초로 인한 바지선의 파손”을 원인으로 적시했고, 한국해운조합의 의뢰를 받은 한바다손해사정 주식회사는 손해조사보고서에서 “악천후에 의해 좌초돼 사고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기재했다.
④ 한편, 이 사건 수재 슬래그가 물과 접촉해 액상화가 진행됨으로써 무게가 증가할 가능성과 관련해, 원고 측의 의뢰를 받은 한양대학교 화학과 이휘건 교수는 “슬래그를 적시는 최소량의 수분에 노출된 경우 약 70시간이 경과한 후에도 적재한계선인 117.8%(= 7,653 / 6,846)를 초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슬래그의 수분 흡수에 의한 무게 변화는 일반적인 대기 조건에서는 슬래그와 물분자간 화학적 결합이 아닌 슬래그 표면과 물분자 사이에 물리적인 흡착 특성에 기인한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3) 해상물품운송계약에 있어서 운송인은 선박이 당해 항해에 있어서 통상의 위험을 감당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는 능력(협의의 감항능력)뿐만 아니라, 특정의 화물을 그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할 능력(감화능력)에 관해 주의를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바다를 예정된 항로를 따라 항해하는 선박은 통상 예견할 수 있는 위험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선체를 유지해야 하므로 발항 당시 감항능력이 결여된 선박을 해상운송에 제공한 선박소유자는 항해 중 그 선박이 통상 예견할 수 있는 파랑이나 해상부유물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돼 침몰했다면 불법행위의 책임조건인 선박의 감항능력유지의무를 해태함으로써 운송물을 멸실케 한 과실이 있다 할 것이며(대법원 1985년 5월28일 선고 84다카966 판결 참조), 운송인이 불가항력에 의한 사고라는 이유로 그 책임을 면하려면 그 풍랑이 선적 당시 예견 불가능한 정도의 천재지변에 속하고 사전에 이로 인한 손해발생의 예방조치가 불가능했음이 인정돼야 한다(대법원 1983년 3월22일 선고 82다카1533 판결 참조).
 
(4)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해 본다. 먼저 이 사건의 사고 원인에 관해 살피건대, 이 사건 사고 해역에 암초가 발견되지 않았고, 선체 측면 및 선저 부분에 구멍 등 암초에 충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 선박이 암초와 충격해 좌초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한편, 이 사건 해역이 만조일 경우에는 깊이가 11m, 간조일 경우에는 깊이가 8m인데, 이 사건 선박의 선수 흘수(draft)가 3.02m, 선미 흘수(draft)가 4.20m에 이르렀고, 이 사건 당시 최대 6.7m의 강한 파고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위와 같은 강한 파도로 인해 선체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선저 부분이 딱딱한 해저에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사건 선박이 당시 강한 파도에 동요돼 심각한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움직임)과 롤링(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움직임)현상을 장시간 겪었던 점을 감안하면, 선체에 집중된 피로(fatigue)로 인해 선체가 V자로 파손됐을 가능성이 있다.
 
(5) 다음으로 피고가 감항능력 주의의무를 준수했고, 이 사건 당시 예견 불가능할 정도의 천재지변이 있어 해상에서의 위험 또는 불가항력의 면책 사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보건대, ① 이 사건 선박은 2004년 건조돼 이 사건 당시 선령이 12년 정도 된 선박으로서 오래된 선박으로 볼 수 없고, 2014년의 정기검사 및 2015년의 중간검사를 정상적으로 통과했으며, 2015년경 추가로 실시한 예인 및 선체 검사에서도 목적한 이용에 적합한 선박으로 조사된 점, ② 이 사건 선박은 파고가 3m를 초과하는 경우 예인을 개시하면 안 되는데, 발항 당시 기상청은 이 사건 해역의 파고를 1~3m 정도로 예보했으므로 이 사건 선박의 선장이 발항을 결정한 데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볼 수는 없고, 이 사건 당시 예보와 달리 2~6.7m의 강한 파고가 장시간 덮치자 선장은 이 사건 선박을 이전의 정박 장소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닻을 내렸는바 이는 당시 상황에 비추어 적절한 조치라고 보이는 점, ③ 이 사건 사고 해역의 경우 같은 기간에 초속 10m 이상의 강풍이 불 확률이 3.7%에 불과하고, 서해중부상 먼바다의 파고가 1~3m로 예보됐음에도, 실제로는 최대 풍속 초속 17m, 최대 파고 6.7m의 예견하기 어려운 기상현상이 발생한 점, ④ 이 사건 선박은 무게가 2,876톤에 이르고 닻까지 내렸음에도 장시간 이어진 강한 바람과 파도로 인해 약 0.3마일이나 밀린 후 V자로 파손된 점 등 이 사건 사고 당시의 기상 상황, 침몰 원인 및 경위를 종합하면, 이 사건 선박은 발항 당시 항해에 대한 감항능력을 구비했고 항해 중 통상 예견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
 
(6) 다음으로 피고가 이 사건 화물의 선적, 운송 등에 관해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에 관해 보건대, 원고 측에서 “슬래그가 수분에 노출된 경우 적재 한계선을 초과하고, 액상화가 진행된다”는 취지의 실험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위 실험상의 슬래그 및 수분의 양, 주위 환경 조건이 이 사건의 실제 상황과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수제 슬래그가 액상화를 일으키는 물질인지 여부에 관해 아직 확립된 견해가 없는 점, 이 사건 선박으로 41회나 비슷한 양의 슬래그를 같은 방식으로 운송했음에도 액상화 등의 문제가 보고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의 위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가사 이 사건 사고 당시 슬래그가 액상화를 일으켜 침몰 원인 중의 일부를 제공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슬래그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SY기초소재 주식회사가 피고에 대해 이에 대한 아무런 고지를 하지 않은 점 및 앞서 살펴본 사정들을 감안하면, 피고는 이 사건 화물의 선적, 운송 등에 관해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판단된다.
 
(7) 따라서 피고는 상법 제794조의 감항능력 주의의무를 다했고, 상법 제795조의 운송물에 관한 주의의무를 다했으며, 이 사건 사고는 해상 고유의 위험 내지 불가항력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는바, 결국 피고는 상법 제796조 제1, 2호에 의해 면책된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관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있다[운송인의 면책사유에 관한 규정은 운송인의 불법행위책임에도 적용되므로(상법 제798조 제1항), 원고의 불법행위청구 또한 이유 없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같이해 정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황기선, 판사 이미선, 판사 이준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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