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동남아항로 운임 담합 혐의를 받는 12개 국적 컨테이너선사에 5000억원을 웃도는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심사보고서를 낸 가운데 해운서비스를 이용하는 무역업계에서도 공정위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해운협회와 무역협회 주최로 2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선화주 상생협력 세미나에서 무역협회 김병유 회원지원본부장(
아랫사진 가장 왼쪽)은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되면 선사들이 과징금을 납부하려고 선박을 매각하게 될 거”라며 “이는 곧 한국시장의 선복량 축소와 운임 추가 상승 등으로 이어져 수출업계에 피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 패널로 참석한 김 본부장은 “특히 추수감사절 광군제 크리스마스 특수로 수출 물동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정위 조사가 물류대란을 가중시켜 우리 수출업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며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본부장은 “이번 공정위 조사가 자칫 동남아 국가 경쟁당국의 연쇄 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공동행위 요건과 절차의 개선이 일부 필요하고 선화주 상생 절차를 더욱 활성화하고 우수선화주인증제도 화물안전운임제 공동대응, 장기운송계약 확대 등 다양한 협력활동이 추진돼야 한다”고 희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해운대란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출입 물류차질이 심각한 상황에서 공정위의 운임 담합 판단이 한국 해운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올 거라고 한 목소리로 우려하며 공정위에 심사보고서 재검토를 촉구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김영무 해운협회 부회장은 “최근 무역업계와 해운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해운대란에 따른 수출차질과 해운기업 공정위 조사 두 가지”라며 “공정위가 수천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최종 결정한다면 해운산업 재건 작업 차질은 물론 외교마찰과 보복조치, 선박의 대량 매각 등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부회장은 “해운업계가 수출화주의 애로를 해소하려고 산업부 해수부 주도로 대책반을 가동하고 동원 가능한 선복을 총동원해 임시선박을 대거 투입하는 상황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면 선사들이 안정적인 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돼 수출입화주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며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해운법에 따라 인정하고 규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해운대란 극복과 화주’을 주제로 발표한 양창호 전 인천대학교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정기선사들의 운임 미신고와 협의 미준수 등을 이유로 부당한 공동행위로 심사한 건 해운법의 공동행위 입법 취지와 공정거래법 제58조의 취지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과징금을 부과하면 외국선사들은 독금법 리스크를 운임에 전가해 국내 수출입화주에게서 회수할 우려가 있는 데다 국내 항만 기항을 기피해 부산항이 변두리항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토론자로 나선 성결대 한종길 교수와 중앙대 우수한 교수는 EU(유럽연합)가 지난 2008년 독금법 규정을 개정해 얼라이언스(해운제휴)는 허용하되 운임공동행위를 금지한 결과 머스크 MSC CMA-CGM 등 유럽 3대 선사의 시장지배력이 막강해진 점에 주목했다.
한종길 교수는 “유럽선사가 시장을 장악하자 오히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해운 독금법 적용 제외를 유지하는 현상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수한 교수는 “EU의 운임 공동행위 금지로 유럽 3사의 시장지배력이 시장 질서를 좌우할 정도로 확대된 점에서 공동행위가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주장으로 각각 공정위 조치를 비판했다.
한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김태일 해운물류연구본부장은 최근의 해운대란을 두고 “아시아-미주 및 유럽항로의 운임폭등은 컨테이너선복량과 공컨테이너 부족 현상이 가중되는 가운데 미국 독일 등의 선진국에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고 코로나 의료‧방영용품과 재택근무가 불러온 가구‧가전제품가 늘어난 게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 본부장은 “향후엔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가처분소득 하락, 코로나19 진정에 따른 보복적 소비 발생 등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은 올해보다 시황이 약세를 보이겠지만 여전히 공급자 주도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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