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기자, 이번에 군산에서 중국 스다오(석도)까지 카페리타고 취재 한 번 다녀와.”
선배기자들은 한 번씩 누렸다는 승선 취재 기회를 얻게 됐다. 입사 후 첫 해외취재인 만큼 기대감이 컸지만 사실 중국 카페리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다. 과거 TV스크린으로 접한 중국 카페리 배경의 영화가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해운을 취재하는 기자임에도 ‘중국행 카페리 승선’만큼은 꺼려졌다. 그런가하면 서울에서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갈 거리를 군산까지 내려가 배편으로 반나절 이상 허비해야 하는 점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중시켰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출항일인 13일이 됐다. 특히 이날은 군산에서 스다오까지 카페리를 단독 운항하는 석도국제훼리가 신조선 <군산펄>호의 취항식을 가지는 특별한 날이었다. 현장 분위기는 지난해보다 활기찼다. 지난해 4월 이 선사의 첫 번째 신조 선박 <뉴씨다오펄>호를 취재할 때만 하더라도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이날 군산항은 중국인 단체 여행객(유커)과 보따리상(다이공)들로 한층 활기가 넘치고 분주했다.
▲<군산펄>호가 군산항을 떠나 스다오를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
바다위의 궁전
오후 5시, 군산항국제여객부두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군산펄>호에 들어섰다. 카페리를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카페리는 바다 위를 움직이는 하나의 궁전 같았다. <군산펄>호는 총톤수 1만9988t, 길이(L) 170m, 선폭(B) 26.2m, 높이(D) 14.2m의 규모다. 총 4개 층(5~8F)으로 구성된 이 선박은 5층에 안내데스크 편의점 면세점 레스토랑 게임룸 노래방 등을 갖추고 있으며, 6층부터 8층까지는 모두 승객들이 머무는 객실로 구성돼 있다.
객실은 로열(2인침대), 1등실(접이식 4인침대), 2등실(고정식 4인침대), 3등실(6인침대, 10인 다다미, 17인 다다미) 등으로 구분된다. 기자가 머문 1등실은 2인용 객실이지만 최대 2명을 추가 수용할 수 있는 접이식 침대가 설치돼 있다. 유휴 정원이 발생하면 침대를 접어 위아래 공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휘둥그레 객실 내부를 둘러보던 사이, <군산펄>호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점점 군산항에서 멀어졌다. 승선 취재를 함께한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갖던 사이 스마트폰의 통신신호가 사라졌다. 항상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기자로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8층에 위치한 라운지. 주류 커피 음료 등을 이용할 수 있다. |
하지만 불안함도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긴 항해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커다란 통유리창이 설치된 8층 라운지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여유로이 동료기자와 담소를 나눴다. 그동안 여행길에서 누리지 못하던 색다른 묘미였다. 시원한 칭다오 맥주는 여행의 재미를 한층 배가했다. 항공편에서는 누릴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여유로움’이었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시간은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터그선(예인선)이 <군산펄>호의 스다오항 접안을 돕고 있었다. 요즘말로 ‘시간순삭’이었다. 객실에 있던 중국인 관광객들도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며 하나둘 하선 채비를 서둘렀다.
▲중국 스다오항에 장치된 컨테이너. 스다오항은 컨테이너터미널과 여객터미널을 혼용하고 있다. |
해상왕 장보고의 혼이 남아있는 적산법화원
이번 취재의 마지막 행선지는 스다오지역 최대 관광지인 적산법화원이었다.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세운 이 곳은 영성시 석도구 북부 적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당나라의 고대 사원이자 산둥성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천여년의 세월이 흘러 곳곳이 훼손되자 1988년 현재의 법화원이 새로 세워졌다.
바다를 다스리는 해신(海神) ‘적산명신’의 보호 아래 장보고 동상이 위엄 있게 서있다. 장보고는 이사도의 반란을 평정한 후 적산포(현 스다오만)를 중심으로 무역에 종사하며 큰 부를 모아 적산에 법화원을 세우고 신라인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적산포는 당나라 시대 핵심 무역항으로, 신라와 해로가 가장 가까워 ‘황금항로’의 종착지로 꼽혔다. 장보고는 이곳을 핵심 무역거점 및 화물중개장소로 삼아 중국-한국-일본을 연결하는 해상무역을 개척해 동아시아 해상왕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적산법화원에서 해상왕 장보고의 기운을 가득 얻고 다시 군산으로 향하는 <군산펄>호에 몸을 맡겼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잘못된 편견을 말끔히 없앨 수 있었다. 일상에 찌들어 피곤함에 시달리던 찰나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로움이었다. 중국 스다오를 비롯한 산둥성 일대 여행을 준비한다면 배편을 이용해보는 게 어떨까.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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