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중항로 개방이 뒤로 미뤄지게 됐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4~5일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열린 제26차 한중 해운회담에서 화물적재율(소석률)을 기준으로 한중 컨테이너선항로 선박 추가 투입을 결정하기로 중국정부와 합의했다고 9일 밝혔다.
해양수산부 엄기두 해운물류국장(
아랫사진 왼쪽)과 중국 교통운수부 수운국 양화슝(楊華雄) 부국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한 이번 회담에서 한중 양국은 항로 개방 현안을 집중 논의했다. 양국은 지난해 해운회담에서 한중항로를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데 합의하고 세부방안을 1년 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나라는 화물적재율을 기준으로 개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지난해 한중항로 컨테이너선사 권익단체인 황해정기선사협의회가 실시한 연구용역 내용이 주장의 근거가 됐다.
연구용역을 맡은 중앙대 우수한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항로 개방을 결정할 화물 적재율 기준을 환적화물이 많은 부산권 항로에선 60%, 수출입화물이 많은 경인권 항로에선 80%로 각각 제시한 바 있다.
반면 중국 측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3년 내 전면개방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항로 개방을 기필코 성사시키겠다는 각오로 회담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5일 오후까지 이어진 마라톤 회의에서 양국은 기존 항로에 선박을 추가 투입하는 사안은 화물적재율을 기준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하고 세부 기준은 내년 회담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제안이 대부분 반영되는 선에서 회담이 마무리된 셈이다. 황정협은 지난해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항로 개방의 세부 기준을 도출해 연내로 양국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황정협, 연내 세부기준 정부에 제출
신규항로 개설의 경우 황정협과 한중카페리협회 등 양국 민간협의체와 정부에서 협의해 기존 항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판단될 때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카페리선이 취항하는 인천-중국 간 항로에 컨테이너선 항로 신청이 접수될 경우 카페리협회와 황정협이 낸 의견을 검토해 정부가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양국은 이와 별도로 서산시가 제안한 대산-웨이하이 카페리항로를 신규 개설하는 안건에도 합의를 이뤘다. 현재 대산-웨이하이 항로를 두고 한국 측 두우해운과 중국 측 웨이하이항무국이 항로 개설을 추진 중이다. 양측은 지난해 중국 현지에서 협약서를 교환하고 항로 개설을 타진한 바 있다. 웨이하이항무국은 평택-웨이하이노선을 운항하는 교동훼리의 대주주다.
다만 두우해운 측에서 해당 구간의 수출입 불균형이 심하다는 이유를 들어 항로 개설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터라 사업자 선정이 원활하게 이뤄질진 미지수다.
이로써 신규 개설이 확정된 카페리노선은 총 4건으로 늘어났다. 앞서 2016년 인천-좡허, 지난해 대산-룽옌(룽청) 인천-웨이하이 노선 개설이 각각 합의된 바 있다.
이 중 아직 사업자 선정이 안 된 인천-좡허와 위동항운이 추가선박 투입을 추진하는 인천-웨이하이 노선은 배가 입항할 수 있는 선석이 확보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인천항 여건상 항로 신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성카페리가 사업자로 선정된 대산-룽옌 노선의 경우 신조선이 아닌 어린 나이의 신예 선박으로도 항로 신설이 가능하도록 양국 정부가 조건을 대폭 완화해줬음에도 배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경인항-칭다오 컨노선 재개
양국은 또 아라뱃길 경인항과 중국 칭다오를 잇는 컨테이너선항로를 한국 선사에서 재개하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경인항-칭다오 노선은 과거 한진해운이 천경해운 선박을 빌려 법정관리 전까지 운항해왔다. 취항 당시 근해 국적선사들이 선복 임대(슬롯차터) 방식으로 서비스에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 2016년 9월 한진해운 사태로 뱃길이 끊긴 이후 경인항 운영을 맡고 있는 수자원공사는 지속적으로 항로 재개를 정부에 요청해왔고 이번 회담에서 의제로 상정됐다.
노선 재개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경인항 터미널을 확보한 SM상선과 인천-칭다오노선을 운항 중인 팬오션 등이 운영사 후보 물망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과거처럼 한 선사가 선박을 운항하고 나머지 선사들이 선복을 빌려 서비스에 동참하는 방안도 모색될 가능성이 크다.
양국 정부는 이 밖에 안전 확보를 위해 한중항로 카페리선 나이를 30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에 합의하는 한편 항만 내 장기 적체된 화물을 신속히 처리하고 주말 통관 지연을 해소하는 데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해양수산부 엄기두 해운물류국장은 “한중 해운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수출입화물의 해상수송 서비스가 원활하게 제공되고 한중 카페리선을 통한 양국 간 관광교류가 더욱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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