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절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가 올 들어 반등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탱크선과 컨테이너선, 여기에 액화천연가스(LNG)선까지 발주량이 늘어난 덕에 상선 건조기술력이 우수한 국내 조선사들은 호재를 맞고 있다.
다만 업황회복의 바로미터인 신조선가는 아직도 바닥수준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선박제조용 후판가격 인상과 인건비 상승도 모처럼 수주증가로 웃고 있는 조선사들에게 찬물을 끼얹었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와는 달라’ 조선 빅3 누적수주량 50척 돌파
올 들어 국내 대형조선사들이 선박 발주증가로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빅3’의 올해 누적 수주량은 어느새 50척을 돌파했다. 2016~2017년 1분기 6척 16척을 각각 수주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성과다.
조선사들의 곳간을 채우고 있는 선종이 다양하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일감절벽을 실감케 한 2016년, 극심한 수주가뭄에 시달린 조선사들은 유조선을 중심으로 물량을 확보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LNG선에 이어 올해는 초대형컨테이너선까지 수주리스트에 이름을 연이어 올리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3월 초 현재 29척의 선박을 20억달러에 수주, 지난해 1분기 수주액인 15억달러를 넘어섰다. 가스선 11척, 탱크선 10척, 컨테이너선 6척, 초대형광탄운반선 2척 등 수주선종이 다양하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두 달만에 LNG선 4척, 탱크선 5척, 특수선 1척 등 총 10척의 선박을 수주함으로써 지난해 연간 30억달러의 40%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도 컨테이너선 8척, LNG선 2척, 탱크선 2척 등 총 12척의 수주고를 올린 상황이다.
연초부터 수주낭보가 연이어 울리자 조선사들은 당초 계획했던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다. 삼성중공업은 수주 목표를 77억달러에서 82억달러로 높였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55달러로 잡았던 목표를 최근 73억달러로 끌어올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상선 부문에서 2017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132억달러를 수주목표로 설정했다. LNG선과 컨테이너선 발주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여 조선사들의 목표 달성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선주들은 신조선가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자 고효율 엔진과 연료절감 등 최신기술이 적용된 선박 발주를 늘리고 있다. 낮은 신조선가는 발주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선주들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켰으며, 상선 건조 기술력이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 조선소로 발주 문의가 집중됐다.
中 조선 저가공세에 신조선가 최저수준
선가가 저렴한 시기를 틈타 선주들은 선박 발주를 잇따라 진행하고 있다. 조선사들은 건조계약을 따냈어도 선가 하락으로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조선사들의 주력 건조선종인 컨테이너선 탱크선 LNG선 신조선가는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는 지난해 3월 저점인 121포인트를 찍은 이후 올해 2월 127포인트로 상승했지만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조선사들의 먹거리 선종인 탱크선 신조선가는 해를 거듭할수록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1억5000만달러에 달했던 VLCC(초대형유조선) 선가는 2015년 9700만달러에서 올해 1월 8200만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조선업계가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8500만달러와 비교해 300만달러 낮은 수준이다. 중국 조선소의 저가공세에 VLCC 신조 가격은 크게 하락했다.
지난해부터 발주가 늘어나고 있는 컨테이너선 건조 단가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09년 1억6600만달러에 달했던 1만4000TEU급 선가는 올해 1월 1억7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1억달러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18만t급 벌크선 역시 2009년 8800만달러에서 2018년 4400만달러로 반토막났다. 기술력에서 국내 기업들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LNG선은 선가하락이 그나마 더딘 편이다. LNG선(174K급)은 2015년 1월 2억500만달러에서 올해 1월 1억8200만달러로 내려앉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신조선가는 선주가 고사양의 선박 건조를 요구하면 높아지지만, 사양이 떨어지면 평균 시장가보다 낮은 신조선가가 나올 수 있다. 들어가는 부품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면서도 “과거 호황기에 비하면 현재 선가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조선사들의 수익개선을 위해서라도 선가상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가 하락은 원가 상승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사들에게 악재로 작용한다. 국내 철강사들은 올 상반기 후판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조선사들의 적자 요인 중 하나는 후판가격 상승이었다. 선박 건조비용에서 후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판 가격이 10% 오르면 조선 빅3는 1000억원 안팎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철강기업들이 추가적인 후판가격 인상에 성공할 경우 조선사들의 영업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조선사들 “해양플랜트 불확실성 해소중”
대형조선사들의 해양플랜트 잠재위험은 어느 정도 해소된 모습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미청구공사 부담은 자본 대비 20% 수준으로 과거와 비교하면 크게 낮아졌다. 잔여 해양공사가 NASR(나스르) 1기에 불과, 관련 채권 잔액도 미미한 상황이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시추·생산설비 수주잔량은 각각 12기 7기로 현대중공업에 비해 높은 편이다. 삼성중공업은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으로 진행 중인 해양플랜트 공사가 5건에 달한다. 그나마 올해 미인도 해양플랜트 1기를 매각하고 드릴선 1척의 수주계약을 취소하며 잠재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나머지 7건은 공정률에 따라 돈이 입금되는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위험도가 적은 편이다.
대우조선은 현재 남아있는 6개의 해양프로젝트가 헤비테일로 진행되고 있다. 대우조선은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해양플랜트를 인도할 계획이다.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공의 대손충당금을 미리 반영하며 해양플랜트에 대한 불확실성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올해 먹거리는 LNG선 컨선…관건은 선가상승
올해는 가스선 컨테이너선 발주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는 유조선이었다면, 올해는 다른 선종들이 조선사들의 먹거리가 될 거란 분석이다. 따라서 상선 종목이 주특기인 국내 조선사에게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중 국내 대형조선사들이 가장 군침을 흘릴 만한 선종은 LNG선이다. 타 선종에 비해 선가가 높고 발주량이 많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LNG선 발주 전망은 밝은 편이다. 오일메이저인 셸(Shell)은 글로벌 LNG 생산능력이 2016년 2억6400만t에서 2019년까지 3억7800만t으로 1억1400만t(43%↑)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해양플랜트는 발주가 이뤄져도 중소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뤄질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굵직굵직한 해양프로젝트와 달리 스케일이 작다보니 계약단가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건비 부담이 덜한 중국 싱가포르가 수주전에 뛰어들면 계약금액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결국 상선과 마찬가지로 해양플랜트도 높은 단가를 받아내는 게 필요하다”며 “기술력에선 앞선 국내 조선사들이 하루빨리 수주잔고를 채워 선별수주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이창희 교수는 “최근 수주되고 RG가 발급된 프로젝트는 모두 최소 이익률 2% 이상을 유지한 프로젝트임이 분명하다”며 “철강사는 후판가격을 내리고, 조선소는 합리적인 원가 선박을 건조해 해외에서 철광석 석탄 유연탄 등과 같은 광물자원을 경쟁력 있게 국내 해운사들이 운송하는 건전한 산업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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