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급 김연태 팀장
최근 몇 년간 국제해사업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선박평형수관리협약과 선박황산화물배출규제협약의 이행시점에 대한 논의였다.
장기불황으로 인한 해사업계의 재무적 압박이 심해진 최근 몇 년 동안 두 협약의 이행시점은 해사산업계의 주요 정책결정 및 재무적 부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에 산업계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각자의 목소리를 높여왔고, IMO 회의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다.
먼저 결론이 난 것은 선박평형수관리협약이다. 2017년 7월3일부터 7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71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선박평형수관리협약의 현존선 적용일이 2년 유예됐다. 선사들이 협약적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기 검사일을 조정, 과도하게 많은 선박의 정기검사가 짧은 기간 내 집중돼 협약 적용의 어려움이 발생했고, 새롭게 개정된 규정에 적합한 선박평형수처리장치를 보다 많은 선박에 탑재시키기 위해 부득이하게 미뤄지게 됐다.
이로 인해 결국 그동안 협약을 잘 준수하고 IMO의 방향에 따라 미리 선박평형수처리장치를 설치했던 선사는 기술적으로 설익은 기기를 탑재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여전히 USCG 형식승인 등 리스크를 안고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선사는 그런 시행착오 없이 오히려 보다 유리한 조건에 개선된 기기를 설치하는 이득을 얻게 됐다.
이제 세계 해사업계의 관심은 2020년에 도래하는 선박황산화물배출규제협약 (Sulphur Cap 2020)에 집중돼 있다. 협약 발효가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시장 전반에 과연 협약이 2020년에 계획대로 이행될까? 라는 의구심이 만연해 있다.
또한 동 협약관련 IMO 규정은 협약을 어떻게 적용하고 시행할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운항 중 스크러버(Scrubber, 배기가스 세정설비)가 고장이 났을 때, 입항지까지 고황연료유(HFO)를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항상 한 항차를 위한 충분한 저황연료유(LSFO)를 선적하고 있어야 하는지 등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정해지지 않았다.
산업계의 준비 역시 미진한 상태이다. 정유업계는 선사의 동향을 주시하며 저황연료유(LSFO) 추가 생산에 필요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고, 해운은 오히려 정유업계의 동향을 주시하며 저황연료유를 사용할지 혹은 스크러버를 설치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 모두가 엄청난 자본이 투자되는 사안이기에 산업계는 정책결정에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해운업계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협약 발효를 2년 앞두고 있지만, 관련 준비는 미흡하고,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해사업계는 협약의 이행에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동 협약은 IMO에서 승인될 때부터 진통의 연속이었다. 2016년 10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70차 회의에서 승인될 당시, IMO에서 참고한 타당성조사보고서에는 2020년 1월1일이면 협약을 시행하기에 시장의 준비는 충분할 것으로 판단한 반면, 발트국제해사협의회(BIMCO)와 국제유류산업환경보존협회(IPIECA)에서 제출한 보고서(EnSys/Navigistics)는 시장의 준비는 불충분할 것으로 결론지었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가중됐었다.
이듬해 2월 해양오염방지대응 전문위원회(PPR) 4차 회의 및 7월 해양환경보호위원회 71차 회의에서 페루, 브라질, 인도 등이 동 협약 이행의 어려움을 어필해 많은 개발도상국과 산업계의 지지를 받았지만, 유럽의 선진국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협약연기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래도 산업계가 아예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금년 하반기부터 일부 정유사들의 저황연료유 증산을 위한 투자계획이 조금씩이나마 발표되고 있다. 국내 정유업계로 보면 SK에너지, 에스오일, 현대오일뱅크가 2018년 완공을 목표로 약 6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8월엔 지중해연안에서 가장 큰 벙커링 업체인 Cepsa에서도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BP의 경우 지난 9월 인터뷰를 통해 ‘2020 Sulphur Cap 대응에 문제가 없으며, 연기할 필요도 없다’라고 이야기했고, Shell 역시 투자를 위한 타당성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됐다.
필자의 생각으론 선박평형수관리협약과 달리 동 협약이행의 연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우선, 스크러버는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려운 장비가 아니고, 이미 육상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기술이어서 본선 탑재 후 예상되는 문제점이 선박평형수처리장치만큼 많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스크러버 수요의 증가로 본선 설치하는데 몇 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저황연료유를 사용하면 협약이행에는 문제가 없다. 사실 스크러버를 이용하는 것은 보다 깨끗한 연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유황연료유를 사용하는 것이 IMO의 방향성과도 일치할 것이다. 지역적으로 저유황연료유 수급부족이 예상되고 있기는 하나, 이 경우 현 협약규정(MARPOL Annex IV/18.2)에 따라 일시적으로 협약 적용에서 제외되므로 이 역시 협약 이행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선박평형수관리협약 연기 후 또 다시 선박황산화물 배출규제협약 이행을 연기한다면, IMO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질 것이고, 앞으로 원활한 협약 이행에 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IMO 입장에서도 웬만한 명분으로는 미루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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