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운시장의 본격적인 회복세는 2020년이 될 거란 전망이 나왔다. 전 세계 교역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선사들이 초대형 선박 발주 경쟁에 나서면서 해운시황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해운시장은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부터 선박 대형화와 얼라이언스 재편, 선사들의 인수합병(M&A) 등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가고 있다. 이 가운데 전 세계 주요 항만들도 선사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다. 주요 항만당국 및 업계 관계자들은 항만간 동맹인 ‘체인포트’를 구축해 해운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5회 부산국제항만콘퍼런스(BIPC)가 지난 16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부산시 김영환 경제부시장, 부산진해자유구역청 진양현 청장,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박광열 청장 등 정부 관계자부터 덴마크 해운분석기관인 시인텔의 알란 머피 공동대표(CEO), 글로벌물류연구소(GIL) 키에란 링, DP월드의 사이먼 피타웃 영업총괄부사장 등 세계 유수의 해운항만업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부산항만공사(BPA) 우예종 사장은 “전례 없는 대규모 선사 인수합병 및 얼라이언스 재편에 대비해 이에 대한 대응전략이 심도 깊게 토의되면 좋겠다”며 “기존의 판을 뒤엎을 수 있는 혁신사례를 발굴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 항만간 동맹 ‘체인포트’ 활성화
전 세계 주요 항만·터미널업계 관계자들은 항만 동맹체인 ‘체인포트’ 결성에 열띤 논의를 펼쳤다. 체인포트는 선박 대형화, 얼라이언스 재편 등 급변하는 해운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주요 항만들이 운영 정보를 공유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함부르크항만공사와 GIL이 체인포트를 도입했고, 현재 부산항만공사 LA항만청 앤트워프항만청 싱가포르항만청 상하이항운그룹(SIPG) 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날 패널들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시대 도래로 전 세계 항만이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며 '체인포트'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함부르크항만공사 옌스 마이어 사장은 “함부르크항은 스마트기술 개발로 선사 터미널운영사 도선·예선사들이 서로 자료를 공유하면서 선박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2021년까지 지능형 신호등을 구축하고 바지선에 모바일 안전센서를 부착하는 등의 노력으로 지금보다 10배 이상 빠르고 안전한 항만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CMA CGM의 프랭크 마가리안 항만터미널계약총괄부사장은 “글로벌 선사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선박 대형화나 운임 표준화에 나서면서 비용의 상당부분은 하역료가 차지하게 됐다”며 “선사의 요구에 항만이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느냐가 분수령인데 항만들은 체인포트를 결성해 난관을 해쳐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박 대형화에 따른 항만터미널의 변화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해운시장의 변화에 맞게 항만도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DP월드 사이먼 부사장은 “터미널운영은 서비스업인 만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 터미널운영사 주주 항만공사 선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CMA CGM 프랭크 부사장은 “선박 대형화가 언제까지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선박 대형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은 현재 추가 투자여부를 가릴 민간시장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인텔 알란 머피 대표는 “오션얼라이언스가 올해 구주항로에 초대형 선박을 대거 배선해 해운시장은 회복되기 어렵다”고 평가하면서도 “항만과 터미널입장에선 이들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시설 부족으로 하역요율을 대거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항의 올해 목표 물동량인 2000만TEU 달성이 가시화되면서 긍정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DP월드 사이먼 부사장은 “10년전 대비 세계 교역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교역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해운항만시장 전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단적인 사례로 올해 2000만TEU를 달성하게 될 부산항을 들 수 있다”며 “터미널운영사 선사 항만당국 등이 제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면 새로운 도전과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왼쪽부터 CMA CGM 프랭크 마가리안 항만터미널계약총괄부사장, DP월드 사이먼 피타웃 영업총괄부사장, 시인텔 알란 머피 대표 |
오션얼라이언스, 亞-구주노선 최강자 등극
세계 해운시장은 올해 낙제점을 면했지만 아직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아 낙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시인텔 알란 머피 대표는 “올해 아시아-오세아니아 항로를 제외하면 전 세계 주요 항로의 해상운임은 급락세를 보였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이 올해 선사들의 영업이익이 50~60억달러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는데 우리는 25~3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세우면서도 “조금씩 수급균형이 맞춰지면서 올해 2개 선사를 제외한 나머지 선사들은 모두 영업이익을 실현했다. 특히 대형 선사들은 영업실적이 우수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얼라이언스 선복량 경쟁에선 초대형 선박을 대거 인도받는 오션이 구주항로 최강자가 될 거란 전망을 내놨다. CMA CGM 프랭크 부사장은 “현존하는 글로벌 선사들의 행동을 눈여겨봐야 한다. 구주항로에 신조를 투입하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결정이다. 화주가 요율압박에 나서는 게 리스크로 작용하지만 CMA CGM은 앞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판단해 초대형 선박을 추가 투자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인텔 알란 머피 대표는 해운시장 회복세가 더딘 이유로 초대형 선박 발주 경쟁에 따른 과잉선복을 꼽았다. 특히 아시아-구주노선은 수요보다 공급이 크게 추월해 선사들이 서비스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란 머피 대표는 “초대형 선박 발주 경쟁은 2011년과 유사하다. 당시 모든 전문가들이 추가 선박 발주가 해운시장을 초토화시킬 것이라며 안 좋은 분석들을 연일 내놨다. 예상 선박 발주량은 120척에 달했다. 하지만 선사들은 구주항로에 초대형 선박을 배선하면 40%의 비용경쟁력을 갖출 거란 장밋빛 희망에 사로잡혀 실제 137척의 선박을 발주했다”고 전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선 “하파크로이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사가 초대형 선박을 갖추게 됐고 2011년보단 시황이 개선될 거로 전망된다. (추가 선박 발주는 필요 없지만)향후 2만5000~2만6000TEU급 선박도 시장에 나오게 될 텐데, 중동항로에는 1만5000TEU급 선박이 전환배치(캐스케이딩)될 거로 보인다”고 밝혔다.
선사들의 항로 서비스는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내년 교역량이 5%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선복량 기준 3개 서비스를 폐쇄해야 한다. 그는 “많은 분석가들이 올해 선복 대비 화물적재율(소석률)을 95%로 예측하고 있지만 시인텔은 85%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아시아-구주노선은 선복과잉 탓에 저운임이 계속되고 있다. 한때 소석률이 7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선사들의 임시결항(블랭크세일링)은 4분기에 몰려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로별로 아시아-북유럽노선에 평균 12항차, 아시아-지중해노선에 12항차, 아시아-미 서안노선에 34항차, 아시아-미 동안노선에 25항차의 블랭크세일링이 4분기에 각각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CMA CGM의 프랭크 부사장은 “블랭크세일링으로 선박이 항구를 기항하지 않으면 하역할 컨테이너가 없어 경제적 피해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며 “선사들은 선박 가득 화물을 실어 날라야 한다”고 말했다.
SM상선 등판…美 PNW서 10% 점유율 확보
항만업계는 해운시장 수급이 이르면 2019년, 늦어도 2020년께 균형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선사들이 여러 전제조건을 따라야 시황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추가 선박 발주를 멈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CMA CGM이 2만2000TEU급 선박 발주에 나서면서 MSC도 신조발주 경쟁에 불을 지피는 등 초대형 선박 배선이 불가피해졌다. 다행인 점은 머스크라인이 초대형 선박발주 경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고, MSC 디에고 아폰테 CEO도 2만TEU급을 초과하는 선박이 공급망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초대형선박 발주경쟁이 다소 완화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세계 교역 성장률에 따라 수급 균형시기도 달라졌다. 시인텔 알란 머피 대표는 2017~2020년까지 교역량이 4% 성장하면 2020년에 선복이 수요와 균형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2017~2019년 교역량이 5%의 성장률을 보이면 2019년 후반, 2017~2019년에 성장률이 6%를 기록하면 2019년 초에 각각 수급 균형 달성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SM상선과 같은 신규 선사의 등장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SM상선은 미국 롱비치까지 9일만에 주파하는 서비스로 손님 끌어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환태평양 1.5%, 미 서안 2.25%, 미 서안남부(PSW)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미 서안북부(PNW)에서도 10%의 점유율을 거두고 있다. 알란 머피 대표는 SM상선이 내년 4월에는 환태평양 3.0%, 미 서안 5.0%, PSW 3.0%, PNW 9%대의 점유율을 확보할 거라고 전망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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