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때이른 폭염에 펄펄 끓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탓에 ‘역대급’이라는 표현도 이젠 일기예보에 등장하는 단골 수식어가 됐다. 현재 상황을 보면 지구를 함부로 사용한 인류의 행보에 대자연이 화를 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 온난화 가속화로 덩달아 뜨거워지고 있는 이슈가 있으니 바로 북극항로다.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운하를 이용한 아시아-유럽항로보다 20일 이상 운송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북극권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북극 프로젝트에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2013년 북극 이사회 옵서버국으로 가입한 뒤, 매년 2회 정례적으로 북극항로와 관련한 회의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글로비스 CJ대한통운 SLK국보 팬오션 등이 북극해 운항을 수행한 바 있다.
정부의 행보와 달리 기업들이 품은 마음은 따로 있는 듯하다. “정부가 예전에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하는 둥 마는 둥 참여하는 시늉만 보였다.” 북극항로 진출이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될까봐 발을 뺀 기업들의 입장이다. 과거 시범운항 당시 참여기업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화주와 물량 끌어오기에 강제 동원됐다. 정부의 눈칫밥을 먹는 기업으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대응했을 게 눈에 선하다.
해운물류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경제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북극항로는 프로젝트나 단발성 화물만을 실어나르는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기 노선 구축이 어렵다는 얘기다. 기항지가 많은 전통 컨테이너 노선과 달리 북극에서는 출발지와 종착지만 존재한다. 1년 내내 화물을 운송해도 수익을 내는 게 쉽지 않은 판에 북극항로 운항으로 ‘살얼음판’을 걷길 원하는 기업은 없다.
북극항로 선점은 정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운송에 참여하는 선사와 화주의 몫이 크다. 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 운송기간 단축이란 장점 이면에 물류비가 비싸다는 맹점이 존재한다. 물류비가 비싸면 북극을 통해 화물을 실어나르겠다는 화주의 의지 또한 꺾일 수밖에 없다.
전 세계 해운업계가 어렵다고 한다. 국내 해운사들은 더 큰 불황에 직면해 있다. 대형 컨테이너선 확보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글로벌선사들의 공세로 풍전등화에 놓인 국내 해운업계가 북극항로 개척에 나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는 상업운항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기업들이 진출하기 위한 북극 비즈니스 여건을 갖춰야 한다. 북극해 운항 허가권을 가진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강화도 선결과제 중 하나다. 남들이 다할 때 뛰어들면 레드오션에서 헤매는 건 불보듯 뻔하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개척해야 블루오션을 맛볼 수 있다. 해운물류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든든한 서포터’ 역할이 필요하다. 아울러 연구기관의 정확한 경제성 분석과 선·화주를 위한 인센티브 등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북극항로 선점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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