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위기에 몰렸던 대우조선해양이 채무조정안을 통과하며 기사회생했다. 대우조선은 다섯 차례의 사채권자집회 끝에 신규자금 2조9000억원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수혈받게 됐다. 2015년 투입된 4조2000억원을 더하면 총 7조1000억원을 하나의 기업이 빨아들인 셈이다.
온갖 비리로 곪아터진 대우조선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채권단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차가웠다. 추가지원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던 채권단이 1년 반도 채 안 돼 또다시 지원에 나서자 국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혈세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것이 아니냐” 등 매스컴에 올라온 기사마다 비리로 얼룩진 대우조선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인 정부와 채권단을 향해 날을 세운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채권단은 벼랑 끝에 선 대우조선을 구제하기로 결정했다. 대우조선과 거래를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의 줄도산 우려도 이번 결정의 배경이 됐다. 대우조선이 문을 닫으면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거제시에 미치는 피해금액이 59조원에 달한다는 금융위원회의 분석이 나왔다.
대우조선의 상황은 올해 2월 파산 선고를 받은 국내 1위 해운사 한진해운을 떠올리게 한다. 한진해운은 채무재조정에 성공하지 못해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해운시장에서 아웃됐다.
거센 후폭풍도 잇따랐다.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의 환적물량은 크게 감소했으며, 화주로부터 선적을 의뢰받은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들도 실적 감소에 울어야만 했다. 이밖에 예도선, 줄잡이, 검수, 래싱, 컨테이너 수리, 운송사, 해운대리점, 화주 등에게도 동시다발적으로 피해가 나타났다. 나란히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지만, 선사는 자취를 감춘 반면 조선사는 정부 지원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대우조선 살리기에 가닥이 잡힌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최근 우리나라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일본 조선사들은 각자도생이 아닌 M&A(인수합병)를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이합집산으로 한국 조선의 독주를 막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주절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우조선은 경영 정상화와 일감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수주 전망은 어둡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조선사들이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한 척의 건조물량 유치가 절실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경쟁 국가들과 비교해 뛰어난 건조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몇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토대로 세계 톱 자리를 굳게 지킬 수 있었다. 이러한 자부심을 갖고 수주활동에 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을 통해 일단 퇴출만 막아보자는 땜질식 구조조정은 더 이상 안 된다. 구조조정 시 회사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산업에 대한 방향성, 철저한 계획이 뒷받침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정부와 채권단, 대우조선이 자구 노력을 통한 정상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노사가 똘똘 뭉치고 정부와 채권단이 고심해 대우조선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 어설픈 땜질식 처방은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정성립 사장이 강조한 ‘사즉생의 심정’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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