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수출입항로의 선복부족 현상이 좀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럽발 수출물동량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공급부족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수출입 운임도 전년대비 급등하고 있다.
영국 해운조사기관 드류리에 따르면 13일자 상하이발 로테르담향 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FEU)당 1544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날 로테르담발 상하이향 운임은 FEU당 1570달러를 기록해 수출항로 운임을 앞질렀다. 지난해 수입항로는 수출항로보다 훨씬 저렴하게 화물을 선적했지만 최근 선복부족으로 운임이 고공행진하면서 화주와 물류기업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북유럽항로의 선복부족 현상은 ▲ 정기선사들의 선복감축 ▲ 한진해운 사태 ▲ 춘절 연휴에 있었던 블랭크세일링(임시결항) ▲ 얼라이언스(전략적 해운제휴그룹) 재편에 따른 선박 전환배치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북유럽발 수입항로의 운임은 현재의 20% 수준에 불과해 이 항로를 기항하는 선사로선 수익성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북유럽발 상하이향의 소석률도 평균 60%에 불과할 정도로 선복이 남아돌았다. 선사들은 자체적인 선복감축 등 공급을 건드려 운임을 올리는 전략을 구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하면서 북유럽항로 선복이 대폭 줄어들었고 운임은 폭등했다. 경쟁 선사들이 대체 선박을 제때 투입하지 못 했을 뿐더러, 컨테이너와 섀시 등 장비확보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또 물동량의 3~4배에 달하는 컨테이너가 출발지와 도착지에 절반씩 있어야 적기에 원활한 수송이 가능하지만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공컨테이너 수급이 상당히 어려워졌고, 경쟁 선사들이 이를 다 처리하지 못하면서 선적 지연이 야기됐다.
2월 중국 춘절(설) 연휴에 단행된 임시결항은 북유럽항로 선복부족 현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춘절이 있던 2월에만 아시아발 북유럽향 노선에서 9항차의 임시결항이 있었고, 3월엔 북유럽발 아시아향 노선에서 운항 스케줄이 펑크를 일부 냈다.
시기상 춘절에 아시아에서 출항해야 유럽에서 돌아오는 선박들이 4월부터 화물을 선적한다. 하지만 많은 선박들이 중국에서 임시결항에 나서다 보니 수입항로의 선복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라이언스가 재편되면서 북유럽에서 아시아로 기항하던 선박들은 중동이나 미주항로 등에 배선됐다. 부산항 직항 서비스를 제공했던 한진해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급작스런 수요 상승에 선적예약 5월까지 꽉차
선사 관계자들은 5월 이후에도 선복 부족 현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공급 부족이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중국의 수출입물동량도 상당하다보니 한국의 선복할당량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수입물동량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고운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입화물 선적 예약은 6월, 수출화물 선적 예약은 5월부터 각각 가능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유럽으로부터 폐지를 대거 수입해 소비재 포장지로 재수출하고 있다.
디얼라이언스에 소속된 한 선사 관계자는 “5월 초 한국과 중국에 연휴가 있어 일부 얼라이언스들은 임시결항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디얼라이언스는 5월에도 임시결항 없이 기항할 예정이지만 선복이 부족한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덧붙여 “디얼라이언스 체제로 재편되면서 북유럽항로 선복이 늘어났지만 선복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수입물동량이 예년대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내 물류기업들은 한숨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류기업 관계자들은 이 항로의 선복부족 현상이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연초부터 북유럽발 부산향 선복을 못 구해 아주 죽을 지경이다. 언제까지 선적을 미루게 될지 고민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북유럽항로의 선복 확보가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북유럽항로 수출입이 지연되면서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와 콘솔(소량화물혼재)업체 등 물류기업들은 납기일에 쫓기는 실화주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선사들이 운임을 올려도 개의치 않는다. 선사들이 선적예약이라도 받아 정해진 날짜에 수송해주면 다행이라는 것.
선사들이 성수기에 적용하는 추가비용(PSS)도 물류기업들이 눈 여겨 보는 요소 중 하나다. 최근 몇 년간 유명무실했던 성수기 할증료가 최근 대거 적용되는 현실에서 최근의 심각한 선복난을 맛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물류기업은 선사가 고운임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거둘 수 있을 때까지 선복 추가 할당에 소극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FCL화물 ‘막막’…LCL화물은 ‘차분’
하지만 LCL화물(소량화물)과 FCL화물(만재화물)을 수송하는 업체들 간 체감하는 차이가 있었다. LCL화물은 해외 파트너사가 선사와 맺은 직계약에 따라 매주 선적이 이뤄지고 있어 수입항로에서 선복 구하기가 그나마 쉬운 편이다. 콘솔화물 운임이 일반 FCL화물 운임보다 비싼 점도 선적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반면 FCL화물은 매 모선마다 선적하지 않고 수송할 화물이 있을 때만 선적하다 보니 예약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 콘솔업체 관계자는 “요즘 실화주들도 선복 부족 현상을 인지해 운임이 높거나 선적이 늦어져도 불만사항이 덜한 편”이라며 “일부 실화주들은 FCL화물을 계획대로 못 싣다보니 콘솔서비스로 해줄 수 없냐는 문의가 몇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콘솔업체들의 분위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직항 수입항로 노선들이 대거 중국에서 환적하는 스케줄로 변경되면서 수송할 모선이 변경되는 경우도 잇따라 발생했다. 한국향 직기항 노선은 한 달 전부터 선적예약에 나서야 겨우 화물을 실을 수 있다.
수출도 예약이 지연되고는 있지만 수입항로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많이 지연되더라도 일주일이면 선적이 가능하다. 또 중국에서 화물을 한 번 더 혼재하지만 콘솔서비스 특성상 빠른 수송이 보장돼야 해 큰 애로사항은 없는 상황이다.
리퍼(냉동·냉장) 화물을 수입하는 포워더는 북유럽항로 선복부족에 가장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한진해운의 리퍼컨테이너와 장비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선적 예약이 들어와도 예약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환적서비스도 이들에겐 썩 반갑지 않다. 납기일이 정해져 있는 화물일 경우 환적수송이 이뤄지면 중간 기항지에서 화물을 하역하고 부산항까지 수송할 선박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서다. 특히 리퍼컨테이너를 환적하면 간혹 컨테이너의 플러그를 중간 기항지에서 실수로 꼽지 않아 화물이 훼손되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한국에 도착해도 당장 유통되지 않는 일반화물들은 환적수송이 나을 수도 있지만 리퍼화물처럼 위험요소가 상당한 화물은 한 번에 직기항 서비스로 하는 편이 낫다. 북유럽에서 한국으로 직기항노선을 제공하고 있는 2M얼라이언스와 현대상선의 서비스가 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다.
하지만 얼라이언스 재편으로 항로 서비스의 운송기간은 더 늘어났다. 가령 머스크라인의 독일발 한국향 수송기간은 약 30일 초반대에서 42일까지 늘어났다. 이렇다보니 긴급한 화물일수록 항공으로 수송해야 한다.
선복부족 현상 해소 언제쯤
재편된 얼라이언스의 한국발 유럽향 선박은 5~6주가 지난 5월 중순경 현지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때 화물을 선적하지 못하면 하염없이 다음 모선이 기항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물 생산과정에서 1개월, 수송에 40여일, 통관 및 검역하는 데 적게는 일주일에서 많게는 3주 이상 걸리다보니 대략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며 “화물을 적기에 수송하려면 생산업자에게 3개월 전에는 수요량을 공지해줘야 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북유럽항로 선복은 5월 초 중국 노동절과 우리나라의 연휴로 임시결항이 예고돼 있어 선복부족 현상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6~7월쯤부터 얼라이언스가 안정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때부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여름 성수기에 맞춰 밀어내기 물량이 쏟아질 시기다. 그렇다보니 일부 물류기업 관계자들은 선복부족 현상이 짧게는 6월, 길게는 연말까지 계속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