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7 22:19

한진해운, 아주·미주항로 패키지 매각…멀어지는 회생의길

해운업계, 국민기업으로 회생하는 방안 제시

법원이 한진해운의 아시아역내항로 및 미주항로 매각을 공고하면서 회사 회생에 대한 가능성도 불투명해지는 모습이다. 해운업계는 국민기업으로 다시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매각주간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한진해운 주요 사업에 대한 매각 공고를 지난 14일 냈다. 공고에 따르면 매각은 이달 28일 오후 3시까지 인수의향서를 받은 뒤 3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예비실사를 진행하고 3일 후인 다음달 7일 인수제안서를 접수받는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양도 대상은 한진해운의 아주항로와 미주항로다. 구체적으로 두 항로의 영업망과 해외네트워크,인력 및 화주정보를 비롯해 66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을 넘기게 된다.

미주노선은 한진해운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띠어온 사업이다. 미국 항만조사기관인 피어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재 한진해운은 북미항로에서 점유율 7%로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매물 명단에 오른 6655TEU급 컨테이너선은 모두 아시아-미주동안노선인 AWH(All-Water Hanjin)를 취항해 온 선박들이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전까지 동급 선박 8척을 사선으로 갖고 있었다. 모두 2006~2008년 사이 지어진 것들이다. 도입 방식은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BBCHP)이었다. 한진해운이 뱃값을 모두 갚으면 비로소 소유권을 넘겨받는 선박들인 셈이다.

이 가운데 7척은 AWH를 운항해왔고 1척은 미주-지중해노선인 MEN을 취항 중이었다. AWH를 취항하던 선박은 <한진부다페스트> <한진뭄바이> <한진충칭> <한진톈진> <한진포트켈랑> <한진브레머하펜> <한진샤먼> 등이다.

현재 <한진부다페스트> <한진톈진> <한진포트켈랑>은 부산항, <한진뭄바이>는 상하이항 인근 공해상에 각각 계류 중이다. <한진충칭>은 지난달 27일 부산을 떠나 미국 뉴욕을 향해 운항 중이다. 이날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지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한진브레머하펜>과 <한진샤먼>은 각각 파나마운하와 부산항에서 채권자 측의 요청으로 가압류된 상태다.

MEN을 취항하던 <한진선전>호는 최근 채권자 측에 반선됐다. 이 선박의 등록소유자는 파나마 소재 제이오지쉬핑이다. 이 같은 상황에 미뤄 AWH 투입선박 중 가압류 되지 않은 5척이 매각 명단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한진과 체결한 아주항로 매매계약 취소

미주노선과 함께 아주항로도 매물에 포함됐다. 원양항로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아시아역내항로 영업권까지 일괄 매각함으로써 인수 후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진해운은 앞서 (주)한진과 체결한 아시아역내항로 매각 계약을 이날 취소했다. 한진해운과 (주)한진은 지난 6월24일 아시아역내 일부 노선 영업권을 621억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대상은 한중·한일 4개, 동남아 4개 등 총 8개 노선이었다. 9월 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던 이 거래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진행을 멈췄고 결국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법정관리 전까지 한진해운이 운영 중이던 아시아역내항로는 30여편 정도다. 이 가운데 한진해운이 직접 선박을 투입해 운영한 노선은 9개였다. 한일셔틀항로 2편, 한중셔틀항로 3편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거점으로 한 중국·인도네시아항로, 태국·베트남항로, 베트남호찌민·말레이시아항로, 베트남하이퐁·홍콩항로 각각 1편씩이다.

주간사 측은 매각가격의 경우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했으나 원활한 입찰 진행을 위해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현재 인수 후보로는 세계 1~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라인과 스위스·이탈리아 MSC, 우리나라 현대상선 등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2M 소속이다. 이중 머스크라인은 한진해운 선박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현대상선도 당초 금융당국에서 한진해운 우량자산을 인수토록 한다고 밝힌 만큼 긍정적으로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은 현재 이들 선사와 사업 매각을 위한 어떤 접촉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법정관리 이후 인력이 대거 퇴사하면서 영업력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은 매각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달 초 한진해운 미주법인은 180명을 정리해고했고 중국법인은 600명의 직원 중 30%를 감원했다. 한진해운은 매각 대상에 포함되는 인력은 500여명 정도라고 밝혔다.
 

100만TEU 선단 국적원양선사 출범시켜야

한진해운의 핵심사업 매각이 추진되면서 온전한 회생을 바라는 해운업계의 기대도 무너지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한진해운 회생과 한국해운 재건에 대한 아이디어가 모색되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한국해양산업총연맹 주최로 열린 마리타임코리아 오찬간담회에서 선주협회 김영무 부회장은 ▲법정관리를 통해 한진해운으로 회생시키는 방법 ▲새로운 국민기업으로 회생시키는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1안의 경우 한진해운의 브랜드 가치와 네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하지만 회생계획안을 채권단이 동의해야 하며 7억달러의 미불금을 정리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회생 과정에서 우발채무나 화주가 클레임을 제기하는 등 어려운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

2안은 한진해운 신인도 하락의 위험을 회피하고 각종 채무와 클레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란 브랜드를 쓸 수 없는 데다 한국해운에 채무를 갚지 않는 이른바 '먹튀' 이미지가 덧입혀질 가능성이 크다는 건 단점으로 지목된다.

김 부회장은 이날 한국해운산업 재건계획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특히 원양선사는 100만TEU 이상, 근해선사는 30만TEU 이상의 선대를 가진 단일판매·운영회사 체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럴 경우 원양선사는 세계 5위, 근해선사는 세계 15위권 기업으로 도약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견해다.

세제 금융 등의 한국해운 경쟁력 강화방안도 제시됐다. 세제 부문에선 제주선박등록특구와 톤세제도의 영구화, 선박금융에선 신규 선박건조 자금 연간 55억달러 지원, 시중금리의 절반 수준인 저리의 선박금융, 선박금융시 설정한 초기 LTV(담보가치인정비율) 변경금지 등이 지적됐다.

김 부회장은 또 국적선의 적취율을 컨테이너는 20%에서 50% 이상으로, 대량화물은 75%에서 9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물류자회사의 국제물류주선업 금지 조치로 3자물류를 활성화하는 한편 근해선사를 위한 전용부두 확보와 항만 인센티브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원 분야에선 승선근무 예비역제도를 확대하거나 해기사들을 위한 해양대학군단(N-ROTC) 제도 도입이 긴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김 부회장은 마지막으로 화주는 해운에 짐을 싣고 해운은 조선에 배를 발주하고 금융은 해운을 지원하는 국내 연관산업간 상생방안이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들, 한진해운 회생 간절히 호소

한편 이날 한진해운 육해상 노조는 행사장 입구에서 "한진해운 살려주세요. 해운은 국가기간산업"이라는 내용의 팻말을 하나씩 들고 참석자들을 맞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장승환 육상노조위원장은 "한달여 물류대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한진해운에 근무하는 직원에 대해서 아무도 생각을 안 해주는 것 같다. 한진해운은 침몰하고 있지만 직원은 해운업계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인재인 만큼 능력을 사장시키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해 행사장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그는 또 "유능한 직원,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만든 한진해운의 양질의 해운시스템, 현재의 싼 용선, 외부의 금융지원을 통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면 한진해운 직원의 30~40%를 승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시간이다. 조속히 선사를 설립한다면 디얼라이언스에도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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