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양플랜트 부실여파로 사상 최대의 적자 성적표를 받아든 국내 대형조선사들이 올해는 일감확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국내 조선시장은 역대 최저 수준의 수주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선사들에게 건네진 대안은 조직 규모를 슬림화하는 ‘구조조정’이다. 정부는 조선사에게 자구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향후 전망도 어두워 자구안을 받아든 조선사들의 근심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4월도 월별 수주실적 ‘제로’…올들어 두번째
올해 국내 조선시장에는 ‘사상 최저’를 나타낸 통계가 잇따라 출현했다. 사상 최저 수주, 수주잔량 바닥 등의 말들이 매스컴에 연일 오르내리며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연초 들어 조선시장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는 ‘월별 수주량’이었다. 한 달에만 수십 척의 선박을 수주했던 조선 호황기와는 달리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1월 국내 조선사들의 월간 수주량은 사상 처음으로 0척을 기록했다. 매분기 수백 척의 일감을 따내며 선주들과 포토타임을 가졌었던 조선사들은 올해 1월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표를 받으며 울상을 지었다.
1월의 악몽은 또다시 재현됐다. 지난달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량은 단 1척도 없었다. 특히 수주소식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는 삼성중공업의 올해 첫 수주계약은 아직도 성사되지 않았다. 올 들어 지금까지 조선사들이 수주한 선박은 총 5척에 불과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각각 3척 2척의 선박을 수주했다.
지난해에는 저유가 장기화로 유조선을 수주하며 반사이익을 노렸던 조선사들이지만 올해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경쟁국인 중국의 상황은 그나마 우리나라보다 낫다. 올해 1분기까지 중국은 114만CGT(수정환산톤수·35척)로 전 세계 선박의 절반을 수주하며 세계 1위를 차지했다. 1분기까지 17만CGT를 수주한 한국보다 훨씬 많은 선박을 쓸어 담았다.
기록적인 수주 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은 줄고 있는 일감을 바라보기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수주잔량 부문에서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3월 말 기준으로 세계 1위인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수주잔량은 118척(782만CGT)이다. 2위는 95척(450만CGT)의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이며, 3~4위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81척·439만CGT)와 현대삼호중공업 (84척·341만CGT)이 자리하고 있다.
수주잔량에서 세계 1~4위를 기록하고 있는 조선사들이지만, 일감 감소 폭이 커지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룹별 수주잔량에서 3월 말 기준 현대중공업그룹은 198척(864만6천CGT)을,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137척(836만5천CGT) 96척(476만3천CGT)의 수주잔고를 보유 중이다. 5년 전인 2011년 상반기(현대중공업·191척(725만CGT), 삼성중공업·207척(923만CGT), 대우조선해양(187척·849만CGT)과 비교하면 3사 모두 일감이 줄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5년 전과 비교해 일감이 반토막 난 상태다.
우리나라의 수주잔량이 3000만CGT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1분기와 같은 상황이 내년까지 지속된다면, 최소 2~3년이 지난 이후에는 조선소 ‘독’이 텅텅 빌 것으로 보인다. 조선소 일감이 크게 줄어든다면 수만명 가량의 인력감축을 피할 수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내년까지 업황 전망이 좋지 않아 일감을 확보해야 하는 조선사들 입장에서는 인력감축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툭하면 취소’되는 해양플랜트 공사, 올해도 여전
엎친데 덮친격으로 해양플랜트 취소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말 삼성중공업은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 셸로부터 약 5조3000억원 규모의 FLNG(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 3기에 대한 건조계약 취소를 통보받았다. 다행히 삼성중공업이 아직 공사에 투입하지 않아 직접적인 손실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삼성중공업의 수주잔액은 348억달러에서 300억달러로 줄었다. 현대중공업 역시 최근 노르웨이 선주인 에다어코모데이션으로부터 2억달러 규모의 선박호텔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선주 측은 납기지연(지난해 6월 인도)을 해지사유로 들며, 인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현대는 선주 측의 잦은 설계변경으로 인도가 지연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사는 현재 런던해사중재협회에 중재를 신청한 상황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일 메이저들의 해양플랜트 계약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유가하락이 장기화되자, 굳이 시추작업을 해도 채산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선주들은 인도를 기피하고 있다. 최근 대형 조선사들이 선주에게 해지통보를 받은 해양플랜트 계약 취소는 총 7건에 달한다. 현대 3건, 삼성 2건, 대우 2건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총 90억달러에 달한다. 계약 취소로 인해 올해 선박 수주량을 확보해두지 못한 조선사들의 수주잔량은 점점 깎이고 있어 향후 실적개선에 대한 부담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플랜트 위험 또한 내년까지 도사리고 있어 조선업계는 가시방석에 앉은 꼴이다. 아직도 선주사에게 인도되지 않은 해양플랜트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곪은 상처가 또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올해 8월 말 기준 대형 조선사의 해양플랜트 수주잔량은 모두 200억달러 이상이다. 모두 70여기에 달하는 규모다.
공정 진행률이 아직까지 낮은 해양플랜트가 꽤 있어 내년까지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16년까지는 저수익 구조를 탈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공정에 따른 추가손실 가능성이 커 조선사들의 원가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 빅3, 정부 주도로 합병 못해”
상황이 좋지 않자 정부는 국내 5대산업 구조개혁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정부는 국내 대형조선사를 대상으로 인력감축과 자산매각 등 추가 자구계획을 요구했다. 지난달 열린 ‘제3차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논의 이후 금융위원회 임종룡 위원장은 조선 대형 3사가 자구계획을 수립해 각자 살아난 다음에야 채권단 협의아래 합종연횡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빅3’ 대형 조선사간 정부 주도로 합병을 강제하거나 빅딜을 추진할 수 없으며, 우선은 조선사들이 자구노력을 펼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선박 건조량이 크게 줄어든다면 조선사들의 인력감축은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가 된다. 현재 국내 조선업계는 고강도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주 임원 25% 감축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안을 내놓았다. 이밖에 사장단 급여전액 등 모든 임원의 50% 급여반납 등 비용절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9년까지 인력 2300여명을 추가로 감축해 전체 인원을 1만명 수준으로 줄이는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삼성중공업 역시 주채권은행과 협의 하에 조만간 자구계획을 꺼내놓을 계획이다.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산업은행은 국내 조선업계의 올해 수주량이 920만CGT로 1년 전과 비교해 15.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은행은 “선가하락 및 물량부족 이중고가 2분기에도 이어져 저조한 수주실적을 지속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수출입은행도 올해 1분기 조선업 수출업황 평가지수를 지난해 4분기 89포인트 대비 -11포인트 하락한 78포인트로 부정적 전망을 제시했다.
그나마 이란 경제제재 해제조치로 어느 정도 발주 물량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계약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란에서 상선과 해양플랜트를 발주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물량 확보에 혈안이 돼 있는 국내 조선사들, 더 나아가 중국과 일본이 합세하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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