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14년 만에 해제됐다. 미국과 EU의 대이란 제재가 해제되며 핵을 둘러싼 갈등이 종식되고 이란의 원유 수출이 재개될 예정이다.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이란 정부는 중기적으로 8%에 이르는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연간 300억~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란 정부는 1월1일 이란의 주요 수입원인 원유 생산량을 두 배로 확대해 225만 배럴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정유산업은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데다 현재 유가가 2013년 이래 최저를 기록하고 있어, 이란의 투자 능력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8천만 내수시장 진출 파란불
하지만 이란의 국제 시장 복귀는 국내 기업에게 자동차, 전자 및 IT, 8000만 이란 인구를 겨냥한 소비재 시장의 판로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그동안 제한적으로 허용됐던 이란과의 교역이 자유로워지면서 차량, 철강, 기계류 및 부분품 및 프로젝트 화물(기계, 건설장비)을 중심으로 교역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수년간에 걸친 제재로 이란 경제는 황폐해지고 이란 내 소비재나 자동차, 기계, 의약품, 발전소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 내 수요 충족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한-이란 교역 증가를 위해 여러 안을 내놓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우리 해운사의 안정적인 해상운송과 영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연내에 이란과의 해운협정 체결을 추진할 계획이다. 해운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선사들은 이란 항만에 입출항하거나 화물모집 등 영업활동에서 이란 선사와 똑같은 대우를 받게 돼 이란 내에서 영업여건이 크게 개선된다.
이란은 전체적으로 항만시설과 운영시스템이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데다 그간 서방의 경제제재 등으로 인해 항만인프라 개선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해수부는 이란과 항만투자 개발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선진 항만개발 및 운영기법을 전수하고 우리기업의 이란 진출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란 항만의 연간 처리 물동량은 2013년 기준으로 약 1억4000만t이며 전체 하역능력은 1억7200만t 가량이다.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이란의 최대 무역항 샤히드라자이(반다르아바스)항은 자국 및 주변 내륙국가 물량을 세계로 수송하는 주요 물류거점항이다. 지난 2011년 276만TEU(20피트 컨테이너)를 처리해 세계 44위에 올랐던 이 항만은 2012년 232만TEU(59위), 2013년 176만TEU(76위) 등 경제제재 여파로 물동량 하락세를 띠고 있다.
이란의 원유 천연가스 생산 및 수출이 본격화됨에 따라 해양플랜트 등 관련 시설에 대한 투자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존의 노후화된 해양플랜트를 개량하고 유지·보수하는 프로젝트가 대거 발주될 것으로 전망돼 해수부는 중소형 틈새시장에 우리 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빗장 풀린 이란시장 진출 경쟁 가속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가뭄의 단비같이 등장한 이란 제재 해제에 화주들과 물류업체, 선사들은 일제히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발길을 끊었던 선사들도 이란 기항을 속속 재개했다. 이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국적선사들은 지난해 6월부터 이란 반다르아바스항에 기항을 시작했으며 CMA CGM 에버그린에 이어 PIL 완하이라인 MSC와 UASC도 서비스를 재개했다.
물류기업도 이란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기존에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로 들어가던 수출물량이 현지 화폐가치 하락과 소비침체로 급감하자 물류기업들은 이란으로 눈을 돌렸다. 해상운임이 내려가면서 이란의 반다르아바스항을 통해 중앙아시아 러시아로 화물을 보냈던 이들이 이란 내수 시장에 주목한 것이다.
북방물류 전문업체인 서중물류도 이란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서중물류는 2004년도부터 반다르아바스항을 통한 우즈베키스탄 화물 운송을 해오다 중앙아시아가 침체를 겪자 이란 서비스에 주력했다. 서중물류측은 “직접 이란 내에서 운송할 수 있는 트럭운송 라이선스와 터미널 사업 등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유가로 인해 이란제재 해제 이후 물동량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증가는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란 시장이 열리자 경쟁국들의 이란 진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중국과 신 성장 시장으로 지목되던 러시아, 브라질 경기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이제까지 이란 내 영업 재개를 위해 물밑 작업을 벌이던 각국 기업들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 국가들이 경제개발부 장관 및 외교부 장관, 보험·금융·자동차·의약 분야 기업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란을 찾고 있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작년부터 이란 서비스를 제공해왔는데 이번 경제제재가 해제되면서 물동량 증가는 예상되지만 그만큼 경쟁선사들의 취항이 늘어나 상황은 지켜봐야할 것”이라며 “전 항로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이란이 그나마 떠오르는 시장이다”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이란의 빗장이 풀리면서 중동은 희망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은 경제제재로 꽁꽁 얼어붙었다.
러 수출물량 ‘반 토막’ 지속
1월21일 국제 유가가 배럴당 26달러대까지 떨어지면서 러시아의 루블 환율은 1달러당 86루블을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2014년부터 시작된 루블화 가치 하락은 국제유가와 함께 하향곡선을 형성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 수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경제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국제유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제조사들은 제품 가격을 계속 상향 조정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구매는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한러항로 취항선사 관계자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러시아 현지 바이어의 구매력이 줄어든 데다 환율이 기존보다 3배 가까이 뛰어 미수금이 쌓이면서 수출 화주들도 주문이 들어와도 바로 화물을 보내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한러항로 소석률도 한국발 물량으로는 3분의1 수준도 못 싣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1월 한국-극동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보스토치니)물동량은 주당 2700TEU 수준에 머물렀다. 러시아 경기 침체전 비수기에도 주당 5천TEU를 처리하던 때와 비교하면 반 토막에 가까운 수준이다. 물류기업 한 관계자는 “화주들이 러시아 현지 사무소를 축소하거나 없앴고 수십 명이 일하던 한 수출업체는 주문이 끊기자 1년 새 직원이 2,3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유럽비즈니스협회(AEB)자동차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러시아 신차 판매시장은 2014년 대비 35.7% 감소했다. 2014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 경기 침체와 소비자의 구매력 감소가 영향을 미쳤다. 2015년 러시아 신차 판매순위 20위에 드는 현대차는 작년 한 해 전년대비 10% 가량 판매가 줄었으며 대우차는 46%나 감소했다. 현재 대부분의 외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실제 달러/루블화 환율보다 40~50% 낮게 환율을 책정해 제품 가격을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향 수출물량이 줄어들었고, 현지 소비도 얼어붙었다”며 “지난해 근근이 버틴 업체들은 올해 좀 나아지지 않겠나 싶었는데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올해 호재가 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러시아의 경기침체는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도 전이됐다. 카자흐스탄의 2015년 전체 교역량은 3분기 기준 전년대비 38.5% 감소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유가 하락, 현지화 평가절하, 최대 교역국인 러시아의 경기침체 등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 CIS 경기 악화 및 우즈베키스탄 외환, 화폐가치 문제 등에 따른 수출량 감소로 2015년 1~11월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35.8% 감소한 12억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사실상 13년 만에 하락세로 전환된 것이다.
한 물류 업체 관계자는 “작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지역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매출이 감소했는데,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가가 올라야 현지 소비가 늘어날 텐데 올 한해 사상최저의 저유가를 기록하는 등 전망이 어두워 험난한 한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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