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5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 9차 APSF 회의(The 9th General Assembly for APSF : Asia Pallet System Federation)와 TILOG(Thailand International Logistics Fair 2014)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솔직히 군사 쿠데타로 불안한 태국을 방문해도 좋을지 떠나기 전, 걱정을 많이 했는데 회의를 주최하는 TNSC(Thai National Shippers’ Council)가 준비를 잘한 덕분인지 아니면 태국정부에서 통제를 잘 한 탓인지 전혀 그런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회의장과 견학을 간 기업체에서 만난 사람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른 동남아 어느 나라보다도 더 세련되고 국제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회의를 마치고 환영행사(Welcome Party) 장소인 차오프라야 강으로 가는 고가도로는 교통정체가 매우 심했다. 삼십분이면 갈 수 있다는 선착장을 두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는데 야간 선상파티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던 불안한 모습은 사흘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 번도 확인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간 일행 모두는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를 산 탓인지 태국의 정국이 궁금하여 한국인 가이드에게 물었다. 태국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상징적인 왕을 모시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탁신이라는 재벌이 총리가 되었다가 쿠데타로 영국으로 도망을 가고, 군이 정권을 잡았다가 선거를 통해 쫓겨난 탁신의 여동생이 총리가 되었고, 다시 쿠데타로 군인이 정권을 잡는 소설 같은 과정을 보면서 태국의 정치에 대해 모두가 궁금했던 것이다. 태국의 국왕은 국민들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지만 모두 왕 덕분에 이정도 먹고 산다고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어루만져주는 왕의 선행이 그런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고 한다. 국왕과 왕비의 생일엔 축제가 열리고 옛날 우리나라 극장에서 애국가가 상영되었듯이 영화 상영 전에 홍보물인 「국왕 찬가」가 상영될 때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전 국민의 각 가정이나 오피스 빌딩, 상점과 포장 마차에 이르기까지 국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한다.
왕실을 중심으로 지위와 부가 세습되는 나라, 그래서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개혁적인 정치인이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에 의해 쫓겨나는 나라, 겉모습은 민주주의이지만 모든 권력은 왕과 그 측근들이 갖고 있으며 서민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 평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나라가 태국이란다. 6.25때 참전해 가장 늦게까지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나라인 태국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민주화의 길은 매우 멀고 험해 보여 안타까웠다.
또 한 가지 이번 여행을 통해 확인 한 것은 태국과 일본의 밀접한 관계이다. 이번 행사 중엔 방콕 수완나폼(SUVARNA BHUMI)공항 화물터미널의 프리존(FREE ZONE)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7개국의 회의 참석자들이 심한 통제를 받으며 방문했는데 함께 했던 일본파렛트협회 야마자키 회장은 얼마 전에 일본국토교통성 직원들과 함께 우리 일행의 출입을 통제하였던 시설 곳곳을 모두 자유롭게 둘러보았다며 자랑을 한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에 비하면 건물만 컸지 보잘 것 없는 설비와 운영시스템이었지만 대단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양 통제하는 그들이 섭섭했고 자랑하는 야마자키 회장이 얄미웠다. 그리고 물류전시회장에서도 일본과의 밀접한 관계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이후크 등 일본 물류업체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었고 JPR(Japan Pallet Pool)이 현지 업체들을 초청하여 개최하는 세미나가 바로 옆방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 아지노모토(Ajinomoto, 味の素)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물류전문가는 태국에서 생산된 닭을 일본으로 공급하는 콜드 체인(Cold Chain)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는데 일본의 멕도날드, 롯데리아등 유명한 치킨집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통닭은 태국에서 수입된다고 했다.
방콕 시내는 어느 곳을 가든 일본 일색이다. 일본이 태국의 가장 큰 교역국가임을 보여 주듯 방콕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일본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일제 차량이 많다. 동경보다 오히려 일제 차량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차는 보기 힘들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울긋불긋한 택시는 모두 토요다이다. 시내로 접어 들면 모든 편의점은 대부분 세븐일레븐이고 대형 쇼핑몰엔 일본 스시집이 즐비하다. 슈퍼마켓 일본식품 코너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매콤한 와사비과자까지 진열되어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다녀가서 유명해 졌다는 ‘Surawong’이란 씨푸드(Sea food) 음식점엔 일본사람들의 큰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태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왕실 간 교류를 중심으로 100년이 넘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300개가 넘는 일본 기업이 진출해 있고 태국이 유치한 외국인 투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와 태국의 관계는 모든 면에서 많이 뒤떨어진다. 그러나 탁신총리 시절 방영된 ‘대장금’을 계기로 한류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이제는 일본을 앞서고 있다고 한다. 대장금을 보면서 태국사람들이 놀랐던 것은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을 수 있는가와 한국에도 자신들과 같은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태국의 국왕은 나이가 많이 들었고 후계 구도도 불투명하며 정국은 불안하다. 앞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태국도 우리처럼 민주화의 홍역을 앓으며 경제발전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가 말해주듯이 그 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한류와 더불어 우리가 피땀을 흘리며 경험한 많은 것들은 그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지표가 될 것이다. 태국은 지금 더 크게 발전하기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앞으로 태국과 우리가 더 가까워져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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